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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뒤적거리는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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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김지연 Nov 12. 2017

스위스가 가장 좋았어, 뮈렌-쉬니케플라테

오늘, 인터라켄을 떠나야한다. 짧았지만, 넘치게 아름다웠던 날들이었다. 루체른으로 향하기 전 뮈렌-김메발트를 다녀오기로 했다. 짐을 미리 싸 놓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한적했다. 간간히 하이킹하는 사람들이 보이곤 했지만 빠른 걸음으로 나를 지나쳐갔다. 나무 밑동이라든지 벤치라든지 걸터 앉을 수 있는 곳들이 길 위에 종종 나타난다. 그럴 때마다 그 곳에 앉아 앞을 바라본다. 매일 지나치는 풍경들이 이 모습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 그저 그런 풍경 처럼 느껴질까. 오랫동안 변함 없는 모습이라는 게,지루함으로 다가올수도 있을 것 같다.

깎아진 산과 그 위를 덮는 나무와 주변을 둘러싼 들판 뿐이다. 세세한 부분은 다르겠지만 어쨌든 대부분 이런 풍경이다. 난 왜 이토록 이런 풍경들을 좋아하는걸까.

처음 보는 풍경에 갖는 신기함 때문인 걸까, 나를 압도하는 웅장함 때문인걸까, 나를 둘러싸는 포근함 때문인걸까. 이렇게 좋은데, 이렇게 좋은 이유를 아직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이 모든 것이 좋다는 것, 계속해서 보고 싶다는 것 이었다.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같은 풍경인 듯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어제보다 더 따스한 햇살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곳이 보여주는 것과 내가 느끼는 것을 작은 핸드폰 화면으로 전하기는 어려웠다. 오늘도 역시 다음에 꼭 같이오자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이 느낌과 감정을 어떤 말로 전달하기보단, 그저 같이 바라보고 싶다. 그래서 각자 무언가를 느꼈으면 좋겠다. 그 무언가가 햇살의 따스함에 눈을 감게 되는 기분좋은 느낌이었으면, 드넓게 펼쳐진 광경에 가슴 뻥 뚫릴만한 시원함이었으면, 주변을 둘러싼 모습에 느끼는 벅찬 감정이었으면, 이 드넓은 곳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깐, 행복 비슷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루체른으로 가는 일정을 미루고 쉬니케 플라테로 향했다. 인터라켄에서 5분정도 떨어진 곳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는 곳이었다. 빨간색, 초록색의 작은 산악열차는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내가 가야할 곳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듯 했다. 어떤 요정이 사는 곳으로 데려다 줄 것만 같은 그 열차는 덜컥 덜컥 거리며 끊임없이 위로 올라갔다. 올라갈 수록 인터라켄의 모습이 한 눈에 담겼다. 호수의 사이라는 이름의 뜻이 여실히 느껴졌다. 작게 난 창문으로 보이는 것은 그 어떤 것 보다 광활했다.

오래된 산악열차가 이렇게 가파른 곳을 오를 수 있다는 것에 신기한 것도 잠시, 내가 탔던 열차에 문제가 생겨 다시 되돌아갔다. 그만큼 시간이 지체되면서 나중에 쉬니케 플라테에 도착한 뒤 하이킹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열차를 기다리면서, 그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기차안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어 아쉬웠던 곳을, 직접 걸을 수 있었다. 이런 풍경에 잠시 시간이 지체되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시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갔다.

쉬니케 플라테에 도착해서 대부분 위로 올라갈때, 나는 융프라우,아이거 산들과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의 벤치에 앉았다. 땅이 아닌, 파란하늘 속에 자리한 산과 호수처럼 보였다. 푸르른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했다.

다행이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이, 쉽게 바뀌지 않을 풍경들이라. 그래서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일때도, 지금과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
어쩌면 먼 훗날 내가 들려준 옛날이야기를 듣고 이곳을 찾을 누군가도 알아볼 수 있는 오래된 아름다움이라.

어쩌면 이 곳을 바라볼 '나'가 달라져서 지금과는 다른 느낌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결국은 아름다움일 것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할 필요가 없는 그런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다.

숙소에 맡긴 짐을 찾고 다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인터라켄에서 루체른을 잇는 구간은 골든패스라인으로 불린다. 그곳을 이어주는 기차 밖의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만해도 5번 넘게 기차를 탔다. 급하게 달린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루체른으로 향하는 2시간 동안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눈을 깜빡이는 순간 조차 아까운 그런 풍경들이 끊이지 않고 창문밖을 지나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