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연 Dec 01. 2017

여행 중(반)에



루체른에서 취리히로 넘어가 취리히에서 야간 열차를 타고 프라하로 향했다.


벌써 여행의 반이 지나갔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딱 지나온 만큼의 시간이고, 그 시간들은 순식간에 지나갔으니 앞으로의 시간도 눈깜짝할새 지나갈게 분명했다. 남은 시간동안 그동안 내가 느끼고 얻은 만큼 이상으로는 얻지 못할 것만 같았다.


사실 20일이라는 시간동안 내가 얻은거라곤, 자석따위의 기념품들, 탄 피부, 카메라와 핸드폰 앨범에 담긴 사진들 뿐이었다.


조금 더 보태보자면, 점점 무거워지는 캐리어를 점점 더 잘 들곤 하는 나의 체력이나, 혼자 하는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은 용기 정도이다.


한국과는 달리 걷는 것을 좋아하고, 약속 장소에 아주 이른 시간에 도착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것들이었다. 내가 애써 알아차려야 보이는 것들, 어쩌면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것들, 누군가 물어보면 답하기 멋쩍은 것들 만이 겨우겨우 떠올랐다.




점점 묵직해지는 캐리어에 아마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얻은 어떤 것들이 틀림없이 담겼을 거라고 애써 생각하기로 했다.




당신이 가슴 속에 지니고 있는 세계를 생각하십시오. 당신의 가슴 속에서 솟아나는 것에 대해서 극히 주목하시오. 그것을 당신 주변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보다 우위에 놓으십시오. 당신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당신의 모든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에게 당신의 입장을 해명하느라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용기를 잃어서는 안됩니다.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여행을 하면서 얻어갈 수 있는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럴듯한 무언가가 아니라, 여행 내내 내 가슴 속에서 솟아나고 피어났던 감정이나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 감정과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위해, 오늘도 길을 나서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평가에 비하면 나약한 폭군이다. 자기자신에 대한 견해야 말로 그의 운명을 결정,
아니 암시한다.
/월든



사실 생각해보면 나의 셈은 틀렸다. 프라하에 도착한 그 때, 지나간 시간만큼 남은 시간의 시작이 아니었다. 그저 언젠가부터 시작된 나의 여행이 차곡차곡 쌓이던 시간들 중 한 순간이었다. 그러니깐 여행의 반이 지나간 시점이 아니라, 여행한지 '21일 째 되는 날' 일 뿐이었다. 앞서 만났던 시간들처럼 잊지 못할 추억이 될 또 하나의 날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여전히 그 날이었다. 여행하는 날. 끝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은 그 끝이 아니라, 어제처럼 역시 여행하는 날이라.







매거진의 이전글 스위스가 가장 좋았어, 뮈렌-쉬니케플라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