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연 Oct 24. 2018

할아버지에 대한 단상

분노할 때.












 아흔을 바라보시는 할아버지는 아직도 버럭버럭 화를 내실 때가 있다.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가족들은‘아직 정정하시네’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입을 다물뿐이다. 그런 할아버지가 가장 화를 내실 때는 북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다.


빨갱이라는 단어가 수십 번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가족들의 말에는 귀를 닫고 그저 ‘빨갱이’ 하며 욕을 하기 일쑤다. 할아버지 같은 어른은 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아직도 빨갱이 타령하는 할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정치외교를 전공했다. 지구상에 인류가 탄생한 후 처음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할 권리를 인정한 민주주의가 좋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 이면엔 이념에 눈이 먼 편협한 사람은 되지 않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전공을 배우면서 느낀 건 대부분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이었다. 바쁘고 고단한 생활 때문에 깊은 고민 없이 정치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했다.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진실을 파악하기 어려워,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인 사람들도 이해했다. 한 번 생긴 편견은 확증편향을 거쳐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진다는 사실도 이해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면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행동임을 이해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이해하고 나서야, 나는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한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을 겪었다. 총과 대포 소리와 함께 몇백 명의 생과 죽음이 오갔다. 전우의 죽음에 슬픔과 분노 그리고 자신은 살았다는 안도감까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할아버지를 덮쳤다. 생생한 죽음들 앞에서 생생한 두려움을 느꼈다. 살기위해 들은 총에서 나간 총알이 자신과 닮은 한 사람의 가슴팍으로 날아들었다. 한 번도 자신이 그토록 많은 사람을, 그것도 어쩌면 자신과 매우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를 사람들을 죽이게 되리라 생각한 적 없었다.



매일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때면, 자신이 살 수 있었던 대신 쓰러져간 누군가의 죽음도 동시에 느껴졌다. 숨을 쉴 때마다 숨이 꺼져간 사람들이 생각났다. 자신의 삶과 누군가의 죽음을 동일시했다. 살아있었도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다시 살아가기 위해 그 사람들은 죽어도 되는 사람들로, 괴물로, 자신을 이렇게 만든 원흉으로 여겼다. 그 찌를듯한 분노와 억울함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그때 평생 용서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마음속에 새겼다. 벌써 반세기가 지난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한 그 일을 떠올릴 때면, 그때의 다짐도 함께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의 분노는, 어쩌면 그런 일을 겪게 한 모든 것들에 대한 총체적인 분노이거나, 자신의 통한의 삶을 향한 분노였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를 이해했다. 할아버지가 겪은 일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생명의 존중 대신 파괴가 난무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나는 할아버지의 희생 위에서 인권을 말하면서 할아버지의 그 세월은 외면했었다. 부끄러웠다.


전쟁 중엔 군인 이었던 할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후엔 이산가족이 되었다. 조국과 가족을 지킨다는 일념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할아버지는 70년 가까이가 지난 뒤에도 여전히 가족과 헤어져 있다. 지구상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면서도 가장 긴 이별을 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이산가족이었다. 이토록 잔인한 분단이 전 세계 역사상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있을까.  



할아버지는 이산가족 찾기를 꽤 빨리 포기했다. 혹시라도 나쁜 소식을 듣게 될까 두렵거나, 실망이 큰 기대를 품기엔 너무 지쳐서 였다. 전쟁, 전우들의 죽음, 동생들과 헤어짐, 온몸 구석구석 박힌 인간을 향한 증오까지, 할아버지는 아직도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애타고 기약 없는 이산가족 찾기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던 것 같다.


최근 이산가족 상봉이 오랜만에 진행되었다. 68년 만에 만난 가족들이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박 3일이었다. 그간의 긴 그리움의 세월에 대한 이야기는 출발도 못 한 채, 버스는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향해 출발했다.      


“다 팔자지.”     


할아버지는 그렇게 팔자라는 단어로, 그 시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전쟁과 분단이라는 통증을 묵묵히 견뎌냈다. 그 통증은 잊을 만하면 할아버지를 찾아왔다. 이따금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던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새어 나온 단 말의 신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정치, 이념, 국가. 이 모든 것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고안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떼어놓고 만남을 가로막은 이 상황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가족과 이별하며 그리움과 통한의 세월을 지낸 이들의 죄는 우연히 그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뿐이다. 자신의 삶을 위협받지 않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결핍된 역사를 우린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 와 만나면 뭣 해”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보던 할아버지는 한숨 섞인 말을 토해냈다. 68년. 1년 후나 10년 후는 상상해 봤어도 반세기가 훌쩍 넘는 68년 후는 상상해 본 적 없다. 상상이 가능하리라 생각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생과 죽음을 거칠 시간이었다. 번호가 붙은 동그란 식탁에 모여 있는 이들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 늙었거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신한 처음 보는 자손이었다.


긴 세월의 흔적과 그 세월 동안 하염없이 누군가를 그리워했던 사무침이 깊은 주름 속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그 속엔 여전히 서로 닮은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주름진 얼굴과 그 위로 흐르는 뜨거운 눈물이 같은 그리움의 세월을 보냈음을 보여준다. 빛바랜 사진처럼 빛바랜 노인들이지만, 그들의 눈물은 그 누구보다 뜨겁고 생생하다. 7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보는 낯선이 라도 그가 내 가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리움과 반가움의 눈물을 흘릴 수 있다. 그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이 주는 끈끈함이다.     


‘엄마 없으면 못살아.’

‘우리 ㅇㅇ이 때문에 살지.’

‘부모님 호강 시켜 드리려고요.’

‘나랑 오래도록 살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것도 보러 다니자.’     


누군가에게 가족은 살아있는 이유이며, 삶의 동기이며,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다. 그런 가족을 빼앗긴 사람들은 삶의 이유, 동기, 희망을 빼앗긴 것과 같다. 그래서 이산가족은 평생 채워질 수 없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간다.



버스에 올라서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창문을 향해 손을 뻗어본다. 이제야 만난 가족이건만 그들은 다시 이별을 준비한다. 왜 다시 이별 해야만 하냐고 누구에게 따질 수도 없다. 그저 그동안의 세월이 그랬듯이, 그래야 한다는 이유로 다시 가슴 아픈 이별을 시작한다. 어쩌면 앞으로 더 힘든 하루하루가 될 것 같다. 보았던 얼굴이 이토록 생생하고 어느 하늘 아래 있는지 알고 있는데도 갈 수도 만날 수도 없다는 사실에, 어딘가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막연하게 상상했던 이 전보다 더 괴로운 나날이 될지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가슴에 또 하나의 고통을 얻은 뒤, 헤어지기 위한 만남을 끝냈다. 그들이 긴 세월동안 이런 아픔과 슬픔을 받아들일 동안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감내했을까.


할아버지는 앞으로도 계속 화를 낼 것이다. 이제 무엇을 향한 분노인지조차 불분명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종종 치밀어 오를 것이다. 어쩌면, 이젠 우리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인간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게 큰 아픔을 남기고,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는 모든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분노하며 맞서야 하는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장애아동을 둔 부모님의 눈물일수도, 가족에게조차 손가락질 당하는 성소수자의 눈물일수도, 힘든 시대에 태어나 쪽방촌으로 내몰린 노인의 눈물일수도, 모든 세상이 가해자 같은 피해자의 눈물일수도, 먼 곳에서 여기까지 떠밀려온 지친 난민의 눈물일수도 있다.


누군가의 처절한 슬픔에 공감하고 귀 기울이고 같이 분노할 줄 아는 사회를 바래본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또 많은 것을 뺏기고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자 분노를 위한 분노를 품게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끝없는 어둠 속 끝없이 소중한 것들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