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완용만 매국노인가

윤덕한, <이완용 평전> 독서 후기

by 앵날



만인의 매국노라고 알려진 이완용의 일생이 담긴 책, <이완용 평전>을 읽었다.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본 이완용은 마냥 악한 사람으로만 보였는데, <이완용 평전>을 읽을수록 이완용이 악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로 보였다.


‘좋은 책’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있다.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선사하거나 미처 몰랐던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면 그건 내게 좋은 책이다. <이완용 평전>은 이들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고 느꼈다. 매국노로만 치부했던 이완용에 대해 내가 몰랐던 사실이 이 책에는 너무도 많았다.


이완용이 죽을 때까지 일본어에 서툴렀으며 오히려 영어에 능통한 원조 친미파였다는 사실, 독립신문의 창설 멤버였다는 사실, 학부대신(오늘날 교육부 장관과 비슷한 지위)에 올라 우리나라 최초로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했다는 사실은 교과서에서는 알 수 없었던 이완용의 행적이었다.




우리는 왜 이완용의 나쁜 점만 들추기에 급급할까. 우리가 이완용에게 부여한 ‘만인의 매국노’라는 낙인이 도리어 우리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이완용 평전>의 저자 윤덕한은 이완용이 매국노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는 동시에 이완용만 매국노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꼬집는다. <대한매일신보>에 의하면 “황족 귀인과 정부대관이 모두 나라를 파는 종”이라고 통탄했을 만큼 한일합방 직전의 대한제국은 이미 매국노들로 득실거리는 매국노 천지였다.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완용의 일부 업적을 외면해서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바로 볼 수 없다. 그동안 역사학자들이 이완용의 업적을 감추기 위해 역사 왜곡까지 감행했다는 사실은 부끄럽지만 직시해야 하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이완용이 학부대신으로서 고종의 재가를 받아 반포한 소학교령 사본이 오늘날 엄연히 역사적 기록으로 명백하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교육사가들은 소학교령을 반포한 학부대신이 '박정양'이라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이겼으면 히틀러가 영웅으로 기록되는 게 역사다.”


역사를 전공한 지인이 했던 말이다. 당시에는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한 말이기도 하다. 이완용은 고려-조선 교체기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새로운 시대의 개국공신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완용은 나름의 도박을 한 것이다.


역사를 향한 그의 도박은 허망하게 실패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완용은 광복 전에 자신의 저택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고,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고 천수를 누리다 갔다. 이런 사실 역시 <이완용 평전>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됐는데, 읽는 맛이 씁쓸했다.


윤덕한은 말한다. 일찍이 매국노 치고 자신의 매국행위를 애국으로 호도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고. 이완용 역시 “세상에서 제일 처신하기 힘든 일이 세 가지가 있다. 쇠약한 나라의 재상과 파산한 회사의 청산인, 빈궁한 가정의 주부가 그것이다”라고 말했지만, 그가 스스로 ‘세상에서 제일 처신하기 힘든 일’을 기꺼이 맡아 그 역할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는 점에서 이는 어디까지나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역사의 아이러니한 점은 되풀이된다는 점이다. 외세에 의지해야만 우리나라의 안위가 보장되는 현실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오늘날에도 언제든지 제2, 제3의 이완용이 나올 수 있다.




망국과 매국의 책임을 이완용 한 사람에게만 묻는다면 그것은 역사의 또 다른 책임전가이며, 이완용을 속죄양으로 삼은 대다수 매국노들의 비열한 이지메라고 윤덕한은 지적한다. 이완용의 묘는 파묘되고 그의 후손들은 외국에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도 다른 친일파의 후손들은 대통령, 대법원장, 육군 참모총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게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예를 들면 이완용과 함께 초대 주미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근무한 이하영은 법부대신으로서 을사조약에 찬성한 매국노다. 그는 을사조약 이후 이토 히로부미에게 한국의 치안이 안정되기 전에는 절대 일본군을 철수하면 안 된다는 말까지 하면서 일제에 아부했다. 그런 그의 장손자가 해방 독립된 대한민국에서 육군 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지내고 ‘참군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종찬(李鐘贊)이다.


이완용과 친구 사이이자 한일합방 당시 궁내부대신이었던 민병석은 합방에 반대하는 여론을 무마하고 황실의 합방작업을 마무리한 매국노다. 그의 아들 민복기(閔復基)는 대한민국의 대법원장을 두 차례나 지냈다.


이완용과 이들은 어떤 차이가 있길래 한쪽은 묘까지 파헤쳐지고 그 자손은 이 땅에서 얼굴을 못 들고 있는데 다른 쪽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가로 이름을 날리는 걸까. <이완용 평전>을 읽으면서, 자국의 국방태세를 타국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국방이 중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과연 친일과 친미의 차이는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역사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과거의 기록을 보면서 무얼 얻을 수 있을까. 역사를 통해 우리는 당연해 보이는 것을 당연하지 않은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친일파 후손들의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저자의 용기에 거듭 놀라면서 책장을 넘겼다. 당연해 보이는 것을 당연하지 않은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싶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싶다. 책을 덮으며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