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본 적 있나요? 반전 있는 에세이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독서 후기

by 앵날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Peabody Awards)을 수상한 과학 전문기자 룰루 밀러(Lulu Miller)가 쓴 자연과학 에세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에세이 치고는 특이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특이한 형식이란 바로 반전이 숨어있는 것이다. 에세이에 반전이라니. 책 소개를 보면서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읽기 전부터 궁금증이 한껏 달아올랐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전반적인 구성은 미국의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 1851~1931)의 일생을 훑어보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 얼핏 보면 일반적인 평전이나 전기와 다를 바 없는 구성 같지만, 책의 중반부를 지나면 글에 감도는 분위기가 초반과는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이후 내용 반전 스포 주의




책의 중반부를 넘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자신의 부인을 독살했다는 음모론에 휘말리면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이야기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룰루 밀러는 조던에 대한 음모론을 언급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밝히는데, 그것은 조던이 우생학의 열렬한 신봉자였다는 사실이다.


우생학은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하는 것을 목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지는 학문으로, 1883년 영국의 F.골턴이 창시했다. 당시에는 학문으로 분류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사회 이데올로기의 일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우생학은 유대인을 말살하겠다는 목적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히틀러가 적극적으로 이용한 분야이기도 하다.


조던이 열렬한 우생학자였다는 사실은 조던의 스승인 루이 아가시(Jean Louis Rodolphe Agassiz, 1807~1873)의 이력을 보면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되어있던 것이기도 하다. 아가시가 창시한 '계층 사다리 이론'은 생물들 사이에 고귀하고 덜 고귀한 우열이 있을 수 있다는 이론으로, 우생학의 기반이 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후 책의 내용은 분기학으로 넘어간다. 분기학은 생물들의 해부학적 특징을 분석해서 어떤 종이 다른 종보다 진화적으로 얼마나 가까운가를 밝히는 분야이다.


분기학에 대한 내용을 전개하면서 룰루 밀러는 ‘어류’라는 종은 분기학의 관점에서 보면 존재할 수 없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힌다. 책의 제목대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룰루 밀러가 우생학과 분기학을 통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의 후반부에서 룰루 밀러는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데, 이것과 연결해서 저자는 유전학적으로 우월한 종이 있다거나 어류는 존재한다는 등, 인간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개념이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 게 아닐까. 독자에게 생물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동시에 성소수자에 대한 메시지도 던지는 것이다.


저자가 글을 통해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이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라서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그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