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까지 했는데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어렵다한다.
4월 27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세 대출을 받고 남편과 함께 이사를 왔다. 12평 남짓의 작은 빌라였지만 세운 지 7년이 된 것 같지 않게 굉장히 깨끗하고 모던했다. 몇 개의 부동산과 함께 수많은 집을 봐 왔지만 이렇게 마음에 꼭 드는 집은 없어서 바로 가계약을 하고 왔던 집이었다. 소득 기준 때문에 결국 이자율이 조금 센 (2-3년 전에는 1%대라고 했지만 지금 우리는 3.62%를 낸다) 서울시 신혼부부 대출을 이용했고, 무사히 이사를 마친 후 결혼식 준비만 남았다고 생각했을 때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5월 3일이었다.
"정말 죄송해요... 전세 반환 보증보험 드신 거... 가입이 어려울 것 같아요."
전세 반환 보증보험은 전세 계약을 맺고 계약기간만큼 살다가 이사를 나가게 되었을 때 집주인의 사정으로 그 금액을 받지 못하게 되면 보증보험기관에서 이를 대신 변제해 주는 제도고, 전세 사기가 판치는 당시에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보험이었다. 우리가 대출받은 상품의 경우에는 HF(한국주택금융공사)에 보증보험을 가입해야 했고, 5월 1일부터 가입기준이 공시가의 140%에서 126%로 내려간다고 해서 이사도 2달이나 앞당겼었다. 물론 126% 집이 안전하기는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올해 공시가 책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2016년부터의 전세가가 변하지 않는 것, 집주인의 세금 체납, 가지고 있는 건물, 근저당 관련해서 깨끗한 것을 확인한 후였기 때문에 집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 빠른 이사로 결정을 했었고.
전입신고가 효력을 발휘하는 데에는 하루가 걸린다고 하여 (이 점도 전세사기에 악용된다고 하니, 빠르게 시스템을 손봐야 할 것 같다) 이사 당일에 이삿짐만 밀어 넣어두고 동사무소로 달려 확정일자와 전입신고를 받았고, 다음날 아침인 28일에 대출을 받았던 은행으로 오픈런을 해서 가입한 보증보험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안된다니?
다리가 풀리고 눈물은 멈추지 않았지만 목소리를 가다듬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담당자가 말하길 "사실 28일에 신청을 해 주셨는데, 어제 신청을 하려 보니 가입 요건이 바뀌었더라고요. 미리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너무 바빴어요."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며, 혹시 전세를 반전세로 바꿔서 126%라는 요건을 맞출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미 생각보다 높은 이자율에 전세 대출 신청을 할 때도 손이 파르르 떨렸던 나는 그럴 수는 없다며 선을 그었고 다른 방법을 묻자, HF 측에 전화를 해보는 건 어떠냐고 했다. 자그마치 2억이라는 돈을 우리에게 2년간 빌려주면서 한 달에 걸쳐 20개가 넘는 서류를 확인했으면서도 바로 HF 접수를 하지 않은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갔었는데, 끊임없이 사과를 하며 사실은 5월 1일에 기준이 바뀌는지 몰랐다고 했다.
이런 것이 있으면 본사에서 지침이 내려왔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며 살짝의 억울함을 토로했는데, 그 점이 더 어이가 없었다. 당시 대부분의 친구들도 이 점을 알고 있었고, 관련된 뉴스레터에서도 계속 이 주제를 다루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국내 탑 은행 중 하나인 곳의 개인 대출 담당자가 이걸 모를 수 있나 싶어서.
너무나 화가 많이 났지만, 우선 HF에 전화를 해서 빌어보기로 했다. 28일에 은행에서 작성한 신청서가 있는 것을 위안 삼아서 말이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10번을 넘게 연락을 해도 콜 센터는 받지를 않았고, 결국 그다음 날 간신히 11번째 연락에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는데... 내가 원하는 답변이 아니었다.
"저희는 전세 반환 보증보험에 대해 모든 권리를 은행에 줬어요. 그래서 신청을 하셨다고 해도 저희 쪽에 접수된 게 없으니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어 다시 한번 호소를 해 보았다.
"제가 은행을 통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상품으로 2억을 빌렸어요. 요즘 전세 사기가 너무 심해서 만약 이 돈을 받을 수 없을 때를 생각하면 너무 무섭습니다. 혹시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신청서를 보내드리면 될까요? 번거롭게 해 드려 정말 죄송해요..."
은행이 한 실수에 대해 내가 왜 사과를 하고 이렇게 억울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구제를 받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답변은 "안된다니까요. 저한테 말하셔도 소용없어요. 일반 개인이시잖아요. 은행에서 연락을 한 것도 아니고요. "
너무나도 차갑고 날카로운 대답에 다리에 힘이 빠졌지만,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무엇이든 협조하겠다는 은행 직원의 약속을 받아냈기에 "은행 직원분이 연락하실 거래요. 혹시 담당자분 연락처나 메일 알려주시면 전달드릴게요! 이 번호로 다시 연락드리고 싶은데 잘 닿질 않아서요." 라 답변했다.
그녀는 또 한 번 신경질을 내며 "안된다고요. 방법이 없어요. 은행에 물어보세요."라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은행 담당자에게 다시 연락을 했고, 그는 자기도 열심히 방법을 찾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너무 기대는 말라는 아주 아주 찝찝한 말을 덧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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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주일에 4번 이상 담당자와 달갑지 않은 전화를 하며 거의 한 달이 지나간 시점. 회사의 세컨드 브랜드 팝업 행사에 지원 나왔을 때 그의 전화가 왔다. 가파른 숨을 고르며 그는 평소보다 2배는 큰 목소리로 "됐어요! 접수 됐어요! 어제 비슷한 사례를 다 모아서 정식으로 HF 측에 접수했고 오늘 따로 서버 열어줘서 신청 완료되었습니다. 빨리 등본 사본만 보내주세요. 2시간 안에 보험금 빠져나가면 성공이에요."라고 말했다.
그 기쁜 소식에 한 달 동안 그에 대해 가득 쌓여 있던 미움이 눈 녹듯 사라지며 내내 긴장하고 있던 다리가 나도 모르게 풀렸다. 소식을 전하는 그가 어쩐지 나보다 더 신나 보였는데, 아마 드디어 나랑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 것 같다. 등본을 보낸 후 약 50분이 지난 후 2년 치 보험금 92,000원이 계좌에서 빠져나갔고 그렇게 우리는 드디어 발을 뻗고 편안히 숙면에 취할 수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이체 알람이었고, 가장 행복한 밤이었다.
그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나 현재, 또다시 전세 사기 관련 소식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오고 그때마다 우리는 이 한 달을 생각하며 습관처럼 몸을 부르르 떤다. 그리고 누군가는 전세 제도를 없애고 다 월세로 돌려야 한다, 누군가는 그래도 내 집마련의 사다리가 되어주는 전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찬반 토론 역시 계속되고 있는데, 무주택자, 20대 국제 부부,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는 청년으로서 나는 사실 전세를 유지하는 쪽으로 마음이 간다. 하지만, 이걸 유지하게 된다면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돈을 빌려주면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양이 되지 않는 시스템이 구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사히 전세 대출을 받고 집주인을 만나 안전한 집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에도 여전히 나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1년 반 후의 우리가 너무 걱정이 되니까. 일도, 사람도, 가족도, 미래도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불안한 시기에 그래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집만큼만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너무나 미워했지만 결국 본인의 실수를 해결한 은행 담당자분께도 고맙다고 말하며 이 글을 마친다. 생각해 보니 다른 담당자였다면 자기 실수였어도 이렇게까지 했을까 싶어서. 이제는 우리 모두에게 좋지 않았던 그 기억을 훌훌 털어버리시기를. 그래서 1년 반 후에는 웃으며 만날 수 있기를.
흉흉한 시대에 홀로 고군분투하고 계실 모든 분들께 응원과 위로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