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스페인 국제커플의 쉽지 않은 신혼집 구하기.
스페인에서 온 남자친구와 진지하게 연애를 시작한 지 겨우 6개월. 우리는 함께 할지, 힘들더라도 장거리 연애를 할지 선택해야 했고, 결국 오랜 고민 끝에 함께할 수 있는 결혼을 선택했다. 혼인신고와 비자까지는 장장 6개월이 소요가 되었고, 결혼식 준비는 막 시작이 되었을 무렵. 또 하나의 난관에 봉착했다. 바로 신혼집 구하기. 사실 그전부터 부모님의 동의 하에 함께 지낸 지는 꽤 되었으나, 잠깐 살고 옮길 집이 아닌 조금 3-4년을 바라보고 정을 붙이고 지낼 괜찮은 집이 필요했다. 둘 다 재택을 하는 날이 많은데, 9평 남짓의 작은 집이 불편했기도 했고.
하지만, 남들은 쉽게 구한다는 전셋집을 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못 찾아서가 아니라 전세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집을 구하던 2023년 3월은 이미 물가는 치솟고 이자 역시 내려올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34세 이하의 청년이라면 꼭! 이용해야 한다는 전세 대출 프로그램을 찾아보기로 했다. 원래 월세를 75 - 80 정도 내다가 (10평 미만)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서 최소한의 이자만 내고 사는 친구들이 많았기에 희망에 부푼 것도 잠시. 리스트를 정리하며 결혼 페널티는 정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받을 수 있는 대출 리스트]
1) 디딤돌 대출: 4억 한도, 이자 2.50 - 3.55%의 전세 대출 프로그램으로 신혼부부 연간 소득 합산 7천만 원 (현재 8,500만 원)
2) 버팀목 대출: 4억 한도, 이자 1.50 - 2.7%의 전세 대출 프로그램으로 신혼부부 연간 소득 합산 6천만 원 (현재 7,500만 원) | 청년일 경우에는 연 소득 3,500만 원 이하 (부부 합산은 5,000만 원)
3) 중소기업취업 청년 전월세보증금대출: 1억 한도, 이자 1.2%의 전세 대출 프로그램으로 청년일 경우에는 연 소득 3,500만 원 이하 (부부 합산은 5,000만 원)
청년, 신혼부부의 경우에는 위와 같이 아주 낮은 금리의 전월세 프로그램이 있었으나 우리를 위한 선택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1인 가구였다면, 아니 같이 살아도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것에 해당이 되었을 것이고, 이자 부담을 훨씬 덜었을 텐데. 2인 = 1인 x 2가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이상하고 어이가 없었다. 외벌이 기준인 건가.
답답하기도 하고, 집 값이 너무 비싼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로 가면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여 찾아본 경기도 신혼부부 전세 대출도 역시나 부부 합산 6천이었다. 부부 합산 5천 - 6천 사이면 둘 다 최저 시급을 받고 일하는 건데, 말이 되나?
나는 스타트업의 주니어 마케터로 일하고 있어 월 소득이 최저 시급보다 아주 조금 넘는 상태고, 당시 남편은 이제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서 돈을 저축하기 시작할 때였다. 20대 중후반의 우리가 모아놓은 돈은 약 5천만 원 정도. 그 안에서도 결혼식 자금과 가구 구매 비용을 빼놓아야 했기 때문에 넉넉잡아 당장 넣을 수 있는 돈은 3천만 원 정도였다. 우리의 소득이 결코 많은 것도 아니고, 이제 막 자리를 잡을까 말까 하는 직장인 국제 커플인데 그 어떤 곳도 우리를 환영해 주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 마지막 희망이 될 서울시 신혼부부 대출을 발견했다. 연 소득 9200까지 지원 가능하며 보증금의 90%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는 조건.
물론 다른 청년 전월세 대출 프로그램보다 높은 이자율을 자랑했지만, 그래도 일반 대출에 비해서는 정말 땡큐베리감사한 수준이었고, 아이가 없을 경우에는 최대 4년까지 연장을 할 수도 있었다 (아이가 있을 경우 최대 10년, 단 소득 기준 맞아야 함). 참고로 서울시 신혼부부 대출은 cofix 6개월 가산 금리를 적용하고 있고, 현재 우리는 3.48%의 금리로 매달 57만 원에서 59만 원 사이의 이자를 내고 있다. 월세로 하면 100만 원이 넘는 집을 60만 원 이내의 돈으로 거주할 수 있으니 나름 큰 혜택이다.
고난과 좌절의 연속이었던 신혼집 구하기. 혼인신고까지도 정말 힘들었는데 그 모든 것을 다 무르고 싶을 정도로 전월세 대출의 빡빡함을 느꼈던 나날들을 보냈다. 결혼 페널티를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는지 수많은 분들의 비판 속에서 디딤돌과 버팀목 대출 같은 경우에는 지난 10월 6일부로 1500만 원씩 소득 요건을 완화했는데, 여전히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진짜 신혼부부를 위해서, 머리를 들 희망도 보이지 않는 출생률을 올리기 위한 정책을 만들고 싶다면 계속해서 빚을 내게 하는 것이 아닌 작은 집이더라도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데 도와주는 게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부모님의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아니하고 싶지 않은 20대 신혼부부에게는 청약 혹은 낮은 금리를 통한 매매도, 전세 대출도, 작은 투룸에 거의 100만 원 가까이 지불해야 하는 월세도 큰 부담이기에.
그래도, 약 한 달에 걸친 집 찾기 > 집 계약 > 확정일자 받기 > 은행 전세대출 서류 확인 신청 > 대출 진행 > 이사 당일 대출 실행 및 전입 신고 & 확정일자라는 정말 복잡한 과정은 끝이 났고, 은행의 돈을 빌려 2년간 머물게 된 집이지만 내 맘에 쏙 드는 집이 생겨 기뻤다. 물론 2억의 빛이 생겼지만 말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할 무렵, 대출을 담당했었던 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 정말 죄송해요. 신청해 주셨던 전세보증보험이 조건에 맞지 않아서... 가입이 어려울 것 같아요."
우리가 이사했던 날은 4월 27일. 5월 1일부터 바뀐 전세보증보험 가입 기준에 맞춰 원래 살던 집에 2달치 월세와 관리비를 주고 날을 당겨 왔었고, 전입신고의 효력이 생기는 다음 날 아침 은행 오픈런을 해서 신청한 전세보증보험이었는데 은행에서 우리의 서류를 신청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2020년부터 2년 동안 이어져오던 부동산 버블이 꺼지고 인천 미추홀구를 시작으로 전세 사기가 바이러스처럼 퍼져가는 시기, 내 또래의 청년들이 그 좌절감을 이기지 못해 세상을 등지고 있던 시기였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