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의 다지 Oct 30. 2021

좋은데 왜 바보같이 망설이는 거야?

두 번째 국제연애,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그를 처음 만난 건 두 달 전 집 근처 주민센터 앞이었다.  

갓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해방된 그는 아직은 부족한 한국어 실력을 올리고 싶어 했고, 나는 멈춰버린 스페인어를 공부할 이유를 간절히 찾고 싶을 때였다. 


드문 드문 한 연애에는 신물이 났고, 언어교환 어플로 만난 두 명의 남자에게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고백을 받은 이후에는 연애 포기 선언을 하기도 한 나였기에 그를 만나는 자리가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이 마음은 2시간도 채 가지 않았다. 


간단히 밥을 먹고 부처상이 있는 굉장히 이색적인 카페에 가서 마주 앉은 우리는 서로의 한국어 그리고 스페인어 실력을 체크했다. 그는 한국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며, 왜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어 하냐고 물었다. 나에게는 거창한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스페인어로 된 노래가 굉장히 매력적이게 들렸으며, 내가 스페인어로 말을 할 때 나 역시도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느껴진다는 대답을 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그의 에어 팟으로 함께 스페인어 노래를 듣고, 함께 해석을 하며 한참 동안 그곳에 앉아 있었다. 최선을 다해 뭔가를 알려주려는 그의 모습에 뭔가 스며들었던 것 같다 아주 천천히, 나도 모르게. 

 

소개팅을 하거나, 그래서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들은 나의 취미와 나의 꿈 이야기를 듣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 그것에 대해 나의 언어로, 나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면서 똑똑한 여성으로 살아가고 싶은 나를 '완벽주의자' 혹은 '사서 고생하는 변태' , '한국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20대 청년'으로 칭하면서 나 스스로를 검열하게 하고 성장을 하는 것을 멈추게 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이 모든 것을 '열정'과 '특별함'으로 봐주고 응원을 해 주었다. 수많은 질문을 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와 이야기를 할 때면 실타래처럼 엉켜있던 머릿속의 계획들이 하나의 타임라인으로 그려졌고, 이상하리만치 안심이 됐다. 


일주일에 3번씩 한 달을 만난 후 그는 나에게 고백을 했고, 그렇게 나의 두 번째 국제 연애가 시작되었다. 


그가 너무 좋았고 지금이라도 당장 내 남자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한참을 망설였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 안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첫 국제연애를 시작했을 때 나는 미국에 있었고, 3살이라는 나이 차이는 있었으나 그곳은 미국이었다.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고 우리는 그냥 '학생'이라는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공부만 신경 쓰면 되는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나는 멋모르는 교환학생이었던 23살이 아니라 한국의 취업전선 끝자락에 있는 27살이고, 열심히 마케팅 수업을 듣고는 있지만 마지막 실업급여 수급만을 남겨둔 백수다. 또, 수면제는 끊었지만 여전히 불안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보다 4살이 어리고 학생이지만 이미 개발자로서 2년이라는 경력과 함께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다. 나의 불안정한 상태가 어쩌면 내가 그를 부러워하고 또 그게 우리의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까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시한부 인생처럼 언젠가 돌아가야 할 그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건 상상이 가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어쩌면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를 놓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너는 나에게 너무 과분해'라는 천하에 바보 같은 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용기가 생겼다.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매우 짧았지만 적지 않던 연애 경험으로 나에게 꼭 맞는 인연을 찾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그 어떤 이유로든, 그와 함께 하는 선택을 한 것은 올해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떠나 그를 보면서 나도 더 열심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와 더 얘기하기 위해 스페인어 공부에 다시 시동을 걸었으며 무엇보다도 불안했던 내 마음이 잔잔한 바다로 변했으니까. 


얼마 전 그가 남은 학기 살아갈 집을 계약하는데 동행하면서, 앞으로 9개월 후면 그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6개월 이상 누군가와 만나본 적이 없는 나지만 이상하게 그 자리에서 눈물이 차 올랐다. 나의 힐링 스팟, 가장 좋아하는 술친구, 그리고 스터디메이트. 싸울 일도 생기고 문화 차이 역시 있겠지만 그럼에도 오래오래 그 옆에 남아있고 싶다. 


브런치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조금은 부끄럽지만 내 인생의 소중한 존재가 된 그와의 추억을 이렇게 종종 기록을 해 보고 싶다. 


물론, 이 글은 그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