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4년 만에 교환학생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캠프파이어를 위해 모인 날, 모두 내 팔목에 있는 커플 팔찌를 보고 놀라 물었다. "언니, 이거 뭐야? 이런 거 싫어하잖아."
그렇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커플 아이템에 반대하던 사람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사귀던 남자 친구가 100일 기념으로 각인 커플링을 선물했을 때 나는 예의상 이틀을 하고 책상 한쪽에 방치했다. 결혼한 것도 아닌데 서로 알아가는 사이에서 수갑처럼 느껴졌다. 이 사실을 발견한 남자 친구와는 한동안 언쟁을 버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다. 그 후의 연애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발생했고, 그 끝은 좋지 않았다.
조금 엄격한 공무원 집안의 첫째 아들 같은 존재로 자라오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내 속내를 드러내는 것에 취약했다. 심지어 부모님께도 힘든 것을 말하지 못하다 고등학교 때 우울증으로 번져 엄마의 팔에 매달려 반 강제로 상담을 받아야 했다. 또, 6살, 13살 때 두 명의 동생들이 생긴 이후로 부모님과의 이렇다 할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 '내 것', 특히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한 욕망이 세졌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아무리 친한 친구와도 똑같은 옷을 입고 한 공간에 있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았고, 믿음이 아직 생기지 않은 생판 남인 남자 친구와 하는 커플 아이템은 더더욱이 꺼려졌다.
그러다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났다. 커플 아이템 문화가 없는 유럽에서 나고 자란 그는 에버랜드에서 사람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띠를 착용하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워했다. 그런 그의 손을 잡으며 '이런 사람이 내 남자 친구라서 참 다행이다. 이런 걸로 싸울 일은 없겠네'라고 안심했다.
하지만 그와 일상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면서 이런 나의 생각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특히, 얼마 전 이사를 한 집의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들을 다 샀다며 그가 보내준 사진에는 모든 것이 두 개였다.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를 같이 먹기 위한 막걸리 잔 두 개, 베개도 두 개, 인형도 두 개, 화장실 슬리퍼도 두 개. 같이 공부하려고 큰 책상을 샀다며 그 작은 방에 나를 위한 의자를 하나 더 주문하자는 그였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나의 취향을 기억해주고 뭐든 두 개씩 준비하는 그를 보며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항상 확신 없이 연애를 시작하면서 남자를 믿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연애를 하면서도 계산을 하고 있는 건 나였다. '조만간 헤어질 관계에 시간과 돈을 굳이 왜 써?'라고 생각하면서. 그것도 똑같은 것을 굳이 2개나 사면서까지 말이다.
그는 나를 바뀌게 했다. 똑같은 것을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알았으니까. 단순히 물건을 전달하고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고르면서 서로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감사한 것인지 배웠으니까.
그래서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위해 각인 팔찌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크리스마스 시즌 때문에 혹여나 제때 배송이 오지 않을까 가슴 졸이면서. 팔찌가 도착한 날, 늦은 퇴근에 내 몸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으나 그에게 달려가는 내 맘은 그 누구보다 설레고 행복했다.
함께 하는 시간만큼, 그 속에서 함께 나누는 것들도 많아지기를. 이번 연애를 통해서 점점 더 성숙해지는 중이다. 역시 연애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