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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Aug 30. 2022

결혼했지만 따로 살라고요?

외국인과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몰랐던 한국의 이상한 비자 시스템

장장 3개월 반. 

남들은 10분도 안돼서 하는 혼인신고를 우리는 3개월 반이나 걸렸다. 왜냐. 나는 한국인이 아닌 스페인 사람과 결혼을 하기 때문이다. 이 3개월 반의 과정을 대략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비슷한 절차를 따르고 있는 것 같다) 


1. 거주지 증명, 가족관계 증명서 등 대사관에서 요청하는 자료를 스페인에 있는 가족들에게서 퀵으로 넘겨받는다. 우리는 지하철역이나 동사무소에서 쉽게 뽑을 수 있는 (그것도 무료로) 이 자료들이 유럽에서는 받는데 기본 2주가 걸린다. 거기에 한국으로 배송하는데도 최소 일주일에서 한 달. 


2. 이제 대사관에서 나에게 요청한 자료들 4가지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 증명서 등)를 뽑아서 양재에 있는 외교부센터에 간다. 아포스티유(공증)를 받는다.


3. 번역가에게 가서 공증을 받은 이 4가지 문서를 번역 및 공증을 받는다. 


4. 대사관에 이 모든 서류를 들고 가서 인터뷰 약속을 잡는다. 일주일 정도 후에 인터뷰 날짜가 잡혔다며 오라고 한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대사관이 날짜를 지네 맘대로 바꿔서 얼마나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모르겠다. 


5. 영어 혹은 스페인어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인터뷰에 통과하면, 증인 1명을 데리고 오라고 한다. 그리고는 또 날짜를 알려주는데 일주일이 걸린다. 이때도 물론 날짜를 지네 마음대로 바꿔서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6. 증인 절차까지 끝나면, 우리 둘 다 미혼이라는 걸 증명하는 혼인 적격 증명서를 준다. 이것을 들고 구청으로 가서 혼인신고를 하는데, 구청 사람들이 스페인 사람은 처음이라 그런지 신고하는데만 약 3시간이 걸렸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날짜대로 딱딱 진행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도 마음대로 월차를 신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4월부터 시작한 과정이 8월 초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힘든 것을 알면서 이 과정을 끝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이유, 바로 남자 친구가 한국에 합법적으로 오래 머무는 게 가능하도록 하는 비자 발급이었다. 지금은 학교에 빌고 또 빌어 학생 비자를 2달 연장한 상태로 있지만, 이 비자로는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일을 구하고 또 매일 성장하고 있어서 기쁘다고 웃는 나를 보면서 남자 친구는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대신 내 옆에 있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는 나만큼 일에 욕심이 있고, 또 경력도 많은 그가 한국에서도 원하는 일을 하길 바랬다. 참고로, 한국에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주 25시간밖에 일을 할 수 없고, 정부에서 정해준 주로 서비스직에만 종사할 수 있다. 




혼인비자를 신청하고 어떤 회사에서 일을 하면 좋을까 (이미 많은 회사에서 오퍼가 온 상태) 행복한 고민을 하던 중, 그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 비자 바꿀 수 없대. 우리가 너희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야 한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다음날  9시 1분, 외국인 출입국 사무소 직원들이 출근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내가 배우자를 초청을 하려면, 최근 1년간 소득을 증명을 해야 하는데 근로 소득만 가능하다는 것. 나는 작년 6월 말까지만 일하다가 실업 급여를 받으며 10개월 정도 정부 프로그램과 취준을 병행했었고 올해 4월이 되어서야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으므로 요구하는 수준의 소득 증명이 불가했다. 몇천만 원 정도가 보증금으로 묶여 있었으나, 이 자산은 5% 즉, 나의 보증금으로는 약 150만 원 정도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나 보다. 부모가 대신 소득 증명을 해 줄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으니. 이 조항 때문에 아직도 외국인과의 결혼을 혼란스러워하는 아빠를 독촉해서 소득증명서를 받아냈고, 사실 비자 신청서에는 그것이 문제가 될 소지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나와 있지 않았다. 그런데, 대뜸 출입국 사무소 직원은 "그걸로도 소득 증명이 불가능하세요."라는 것이 아닌가. 왜인지 물었더니, "그럼 부부가 모두 부모님과 같이 살았다는 증거가 필요해요. 사실 관계를 알기 위해서요." 


아니, 주민등록등본이나 가족관계 증명서나 서류 1개만 떼면 그분들이 내 부모님이라는 걸 다 알 텐데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요즘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당황한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 그리고 1년을 같이 살았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질문 1개를 할 때마다 누구에게 또 질문을 하러 가는 것인지 매번 5분이 지나서야 자리에 돌아와 대답을 해 줬던 한국어가 어눌한 외국인 상담사는 결국 안된다로 1시간의 기나긴 통화의 결말을 맺었다. 다른 방법이 없겠냐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호소하는 나를 그는 한국인 팀장님께 넘겨 버렸고, 그는 한껏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안된다니까요. 그러게 미리 잘 알아보셨어야죠."라고 이 모든 결과를 일찍 다시 일을 시작하지 않은 내 책임으로 넘겨버렸다. 


1시간의 통화와, 그녀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나도 억울함에 짜증이 섞인 마지막 호소를 해 보았다. "만약 제가 지금 당장 일도 없고, 가족도 없으면 결혼을 했더라도 우린 떨어져 살아야겠네요, 맞나요?" 


그는 망설임 없이 "저희가 따로 살라고 말한 적은 없죠. 알아서 하셔야죠 " 라며 뚝 끊었다. 

3개월 반의 시간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 머나먼 한남동 스페인 대사관을 4번이나 찾아갔던 것이 억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제 우연히 본 기사에서 펜데믹 이후 한국의 이민자 수가 최하로 떨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전에도 전 세계에서 아주 낮은 0.1%를 기록한다고 했다. (스위스 12%, 엄격하기로 유명한 미국은 0.6%). 특히, 결혼 이민자 수가 많이 줄었는데 이번 결혼을 준비하면서 줄은 이유는 비단 펜데믹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당장 한국에 있어도, 내가 지금 일을 하고 가족이 있어도 나는 내 남편과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산다. 지금 교수님의 추천으로 일을 하고 있는 한국 회사가 working visa를 스폰을 해 준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출입국 사무소 직원들의 반응은 "조건을 맞췄으나, 안 될 확률이 더 높다. 요즘에는 내국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외국에서 IT 쪽 사람들을 잘 안 데리고 오려고 한다. "라는 이상한 말만 들었다.


게다가 working holiday 비자와 tourist visa는 한국 내에서 바로 혼인 비자로 변경이 불가능해 다시 본국으로 한번 더 들어갔다 와야 한다고 하니, 정말 한국의 비자 시스템... 너무 과하게 엄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소득을 증명할 수 있을 때까지 4개월. 그 사이에 잡힌 웨딩 촬영과 상견례 일정.

그때까지 우리는 떨어지지 않고 함께 있을 수 있을까?


한국 비자 시스템의 자비로움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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