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참 독특하구나’ 그 문장에 숨겨진 나만의 차별성
이은진 다섯 줄 이력 정리
-블룸버그 통신, 골드만삭스, 바클레이즈 은행 싱가포르 지사 근무
-2021년 Best in Singapore - 메이크업 아티스트 부문 선정
-2020년 해외취업 멘토링 시리즈 - 최우수 멘토 선정
-2019년 존슨앤존슨 주최 K-Beauty 메이크업 강의
-2019년 싱가포르 여성지 Nuyou 메이크업 아티스트 편 인터뷰
-2016년 미스 싱가포르 공식 메이크업 아티스트
바야흐로, 누구나 겸직을 하는 세상이 열렸다.
교사로 일하면서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 유튜버로 활동하고, 활동분야의 내용을 책으로 출간해 작가로 등단하는 시대. 어쩌면, 유튜버, 작가, 컨설턴트는 어떤 일을 하든 병행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겸직 삼형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병행하는 일의 성격이 서로 호환하기 어려울만큼 상당히 다르다면 어떨까? 가령, 은행 법인 영업자와 메이크업 아티스트처럼.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이은진님은 두 개의 일 기둥을 가진 여성이다. 무엇이 본캐이고 부캐라고 구분할 수 없는, 모두 똑같이 온전하고 중요한 그런 일. 두 개의 직업을 나란히 병행하며, 나만의 커리어 함수를 만들어 가는 <이은진 연구원>에 대한 이야기 시작해 보자.
인터뷰이 : 이은진(금융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인터뷰어 : 이재은 여자라이프스쿨 대표(교육공학 HRD 박사)
#금융계종사자 #싱가포르이주여성 #베트남어 #메이크업아티스트 #취업멘토링 #코칭
해외 유명한 금융회사에 취업했다고 하면, 언뜻 일찌감치 해외취업을 목표로 체계적인 취업 준비를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골드만삭스, 바클레이즈 등 글로벌 톱 금융회사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타고난 금수저의 엄친딸인가 싶어, 어떻게 해외 취업을 목표로 해외 거주를 하게 되었는지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국내 회사는 모두 떨어졌거든요. 서류 광탈을 쭉 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게 컸어요.”
에이. 거짓말... 해외 취업이 더 좁은문 아닐까 싶어 재차 정말인지 물었다.
“저는 사실, 베트남어 특기생으로 취업을 하고 싶었어요. 영어를 전공했지만, 베트남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시 드물었기 때문에 대학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베트남어 방송 통역 등을 많이 했어요. 베트남어 통역 활동을 많이 했으니까 특기생 취업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서류가 모두 광탈했어요. 다 떨어졌어요. 하하.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알아보니 베트남어를 잘 하긴 하지만, 베트남어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베트남어로 특화된 경험을 반복적으로 쌓아도, 공식적인 자격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길이 막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하나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국내에서 취업의 문에 잘 열리지 않자, 그녀는 바로 우회했다.
해외로 취업의 길을 모색하기로 한 것. 마침 해외에서 6개월 정도 인턴을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한 번 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한국청년무역인턴 양성과정에 선발되어 국내에서 두 달 동안 연수받고 6개월 동안 싱가폴에서 마케팅 인턴으로 근무를 했던 경험이 있었다.
“당시 했던 일이 한국, 싱가폴, 베트남 삼국을 이어주는 마케팅 업무였는데 그때, 처음 알게 됐어요. 베트남어를 활용해 해외취업을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싱가폴 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던 배경이에요.”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베트남에서 5년 간 거주하며 현지 학교를 다니며 베트남어를 익힌 것. 정부에서 지원하는 해외 취업 인재 양성과정에 도전해 인턴 경험을 쌓은 시간들은 원하는 곳으로 가고자 하는 문이 막혔을 때 새로운 길을 내어주었다.
상대적으로 드문 경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경험을 쌓은 것.
그것이 남과 다른 차별화된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준다는 걸
그때 깨닫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해외 취업을 마음 먹었을 때는, 언론사 근무를 생각했다.
베트남어를 구사하는 무기로 블룸버그 통신사에 지원했고, 취업까지 이어졌다. 본래 홍콩지사 지원을 했는데 <베트남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동남아시아 시장에 적합하다고 판단이 되어 싱가폴에 배정이 되었다. 블룸버그는 언론사 부서, 블룸버그 단말기를 이용하는 주식 매매 거래하는 비즈니스 부서로 나눠져 있는데 그녀가 담당했던 것은 비즈니스 부서였기에 금융사 고객사들을 자주 접하게 되었고, 주식 거래 관련 교육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관심 역시 금융 분야로 이동했다.
오호라! 이거 제법 재미있는데...
고객사 입장에서 일을 배워 보고 싶어.
금융사로 이직을 해봐야겠어
영국계 투자은행 바클레이즈. 첫 번째 이직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변화된 관심사와 의지에 의해 원하는 분야로 이동했던 것. 자발적 이직이었던 만큼 열심히 배우며 뜨겁게 일했다. 그곳에서 2년 정도 일하다가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골드만삭스로 이직을 했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이직 같았지만, 내막은 복잡했다. 비용절감 문제로 근무하던 부서가 인도로 이전하면서 어쩔 수 없는 이직을 선택해야 했던 것. 원치 않는 비자발적 이직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이직이 이루어졌다. 업계에서 가장 치열하다고 하는 골드만삭스로 이동하기 위해 면접 과정만 4개월 동안 진행했다. 정말, 피를 말렸던 시간이었다. 업계 1위는 괜히 1위가 아니었다. 숨 돌릴 틈 없이 치열했고, 수치화된 성과로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했고, 낙오자는 매년 말없이 회사를 떠나야했다. 무한경쟁 체제에 갇힌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분위기가 좋았어요.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위기가 커리어 개발 관점에서 지속적인 자극을 제공받도록 했거든요. 하지만, 또 2년 뒤 일하던 부서가 비용 절감 문제 때문에 전체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했고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를 떠나야 했어요. ”
회사 내부적으로 다른 부서로 이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과거 바클레이즈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가 한국 시장을 담당할 직원이 필요하다고 연락을 해왔고, 과거 직장으로 돌아갔다. 바클레이즈로 다시 돌아가서 3년 정도 일을 했지만, 덫에 걸린 느낌이었다. 또 다시 구조조정을 해야하는 상황이 돌아온 것.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몇 년 단위로 예기치 못한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정든 일터를 떠너야 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커리어가 나의 의지가 아닌 외부 힘에 의해 조정되고, 지배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롤모델로 삼고픈 직장 상사들이 구조조정으로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 뒷모습이 결국, 몇 년 뒤 나의 미래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선발되고, 무한 경쟁에서 생존하며 열심히 일해오며 만들어온 커리어가 나의 의지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절망스러웠다. 직장생활 10년 차, 이제 다른 접근이 필요해 보였다.
그때였던 것 같아요.
나만의 브랜드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것
나라는 브랜드로 독립하기 위해 제일 먼저 고려했던 것은 MBA였다.
금융계를 벗어나 업종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학문이 필요했고 경영 전반을 배우며 몸값 상승에 도움이 된다는 MBA가 가장 유리해 보였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막 첫 아이가 태어나 돌 무렵이었고 학비도 비쌌고, 회사와 병행하며 육아, 학업을 이어가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지금 거길 왜가냐? 남는 장사가 아니야. ROI가 나오질 않잖아.”
주변에서는 만류했다.
하지만,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불가능하다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어느 새 MBA 설명회에 가있는 자신을 보면서, 미련이 남는 것은 사라질 때까지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이것만큼은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해보고 싶다고 협조를 요청했고, 남편은 네가 간절히 원하는 일이라면 도와줄테니 해보라고 격려해줬다. 하지만, 역시나 쉽지 않았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밤이면 막 돌이 된 아이를 보며 대학원 과제를 하는 삶이란 게 정말 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삶이었다.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고생을 하는지 후회스러운 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학원 수업에는 나와 비슷한 여자 동기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동기 중에 아이가 셋, 넷인 분들이 있었어요. 경력이 나보다 좀 많거나 비슷 했는데, 학업을 하는 이유도 저와 비슷했어요. 나보다 육아도 더 힘들고 직장생활 업무도 더 힘들텐데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큰 의지가 되었어요.”
결과적으로 수입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MBA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ROI가 나오지 않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잘 한 일이었다. 후회는 전혀 없다. 세계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기들과 대화를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롤모델이 되어 주었다. 커리어 측면 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또 일을 병행하며 학업을 이어나가는 학생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필요한 자극과 인사이트를 얻었다. 그동안 주변에서 늘 독한 여자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곳에 오니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동질감과 위안이 참 좋았다.
수업을 통해 배우는 내용보다, 수업을 매개로 만난 또래 여성들을 통해 배우는 것이 참 많은 시간이었다. 엄마가 되어도 스무 살 무렵의 그때처럼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시간을 쪼개 하고픈 것을 도전하고 꿈을 꿔도 된다는 것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지각한 시간이었다. 나는 독한년이 아니라 원하는 일을 하며 좇아 살아갈 충분한 존재라는 것을 확신하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ROI를 넘어서는 수확이었다.
“ 동기 중에 아이가 셋인 호주여성이 있었는데, 필리핀 마닐라에서 시티은행을 다니는 상무였어요. 얼마나 일이 바쁘고 할 일이 많겠어요. 저랑 업종도 비슷하고 아이 엄마라는 공통점 때문에 특히 대화가 잘 통했는데 그 여성은 언젠가 아시아개발은행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었어요. 결국, 졸업 후 꿈꾸던 기관으로 이직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경력경로가 많이 있고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도전할 수 있는 것들도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동기를 보면서 내가 속한 세상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현재, 그녀를 설명하는 또 다른 한 축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이다.
처음엔 그냥 좋아서 관심을 갖고 틈틈이 취미처럼, 놀이처럼 메이크업을 공부했다. 그러다 전환점이 일어났다, 싱가폴 남성과 현지에서 결혼식을 준비하며 원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섭외하기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게 됐고, 원하는 스타일의 메이크업을 배워 신부 화장을 직접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 그날의 경험은, 메이크업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증폭시켰다. 그렇게, 언제 제대로 배울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호시탐탐 노리던 중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신청하게 됐다. 절호의 기회였다. 한 손엔 커다란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 다른 한 손엔 유축기를 들고 학원으로 향했다.
남들은, 애 낳고 사서 고생이냐고 했지만 늘 기다려 왔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크게 고생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중간 중간 유축을 하며 9개월 간 메이크업 전문가 과정을 모두 이수했다.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무엇보다 패션쇼 무대 위 모델들의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등의 현장 경험을 쌓으면서 싱가폴 시장에 한국식 메이크업에 대한 충분한 수요가 있음을 확인했다. 수요를 확인하니 더욱 ‘제대로’ 한국 메이크업 배워 싱가포르에 전파하고 싶어졌다.
남은 연차를 모아 한달 동안 장기 휴가를 내고 한국으로 들어와 청담동 메이크업을 1:1 배웠다. 매년, 한국에 올 때마다 메이크업 트렌드와 기술을 업데이트하고 업그레이드 했다. 금융계에서 일할 때와는 다른 재미와 보람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경력단절여성 대상의 취업 메이크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뿌듯했어요. 다시 시작하는 기로에 있는 여성들에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 경험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가치를 제공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경험해 볼 수 있었죠. 내가 누군가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행복감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중독성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계속 나의 능력을 업그레이드 해서 더 큰 만족감을 주고 싶어졌죠.”
더 큰 만족감을 경험하고, 또 제공하고 싶은 마음은, 단순 취미가 아닌 또 다른 직업을 병행하는 배경이 됐다. 계속 공을 들여 반복해서 하는 시간이 쌓이자, 업계에서 조금씩 인지도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재능기부가 아닌 비즈니스 거래 요청이 들어왔다. 적정한 가격을 책정하고, 그동안 진행한 결과물들을 포트폴리오로 만드는 작업들도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에서 커리어를 10년 넘게 쌓은 것. 프로페셔널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경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을 볼 때, 애초 촘촘하게 커리어를 계획하고 주도면밀하게 이뤄내는 스타일일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녀는 늘 ‘애초 계획한 대로 일군 것은 없다’ 고 말한다.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을 향해 시도하고, 경험하며 수정하며 현재 상황에서 나에게 더 적절한 것, 더 가능성이 있는 것, 경제적으로 더 나은 상태를 모색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하다보니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다음 단계의 구체적인 커리어 목표는 역시나 없다. 하지만, 분명한 방향은 존재한다.
“제가 가진 차별성과 무기를 잃지 않고 싶어요. 베트남어를 구사할 수 있는 강점과 금융권에서 오래 일했던 경력을 결합해 동남아시아 지역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한국과 싱가포르, 그리고 베트남을 연결하는 허브가 되고 싶고 그 지역에서 자신의 일을 만들어 꽃피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구체적인 도구가 코칭이나 멘토링이 될지 메이크업과 같은 뷰티 산업이 될지 그것까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희망과 바람은 항상 진화하는 법이니까요. 다만, 그동안의 경험이 토대가 되어줄 것임은 분명해요.”
지금은, 머지 않은 미래 나만의 이름으로 세상에 홀로서는 그날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들이다.
그때를 위해, 틈틈이 최신 기법의 메이크업을 배우고 브랜딩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다양한 플랫폼에 자신을 알리는 글을 쓴다. 여전히 특정 금융회사에 속한 근로자로 월급을 받고, 관련 일을 수행하지만, 또 다른 커리어 축도 녹슬지 않게 회전시키며 X, Y 축의 좌표들을 함께 그려 나가고 있다. 두 개 모두, 현재 소중한 일이고 미래로 나아갈 자원이기 때문이다.
금융업계 종사자이면서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사는 것.
상이한 두 축으로 커리어를 회전시키며 유지한다는 것은 어쩌면 괴이하고 불가능한 일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은진님은 말한다. 다 할 수 있다고, 그리고 해도 된다고.
“지금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보면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직업적 일 이외에 다른 직업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회사를 다니면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고, 국가대표 운동선수 자격을 유지하며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있죠. 과거 직장 동료는 골드만삭스를 다니면서 소설과 시를 쓰며 문학작가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이도 있었어요.”
자신이 몇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인지 드러내는 이들도 있지만, 기존에 해왔던 일 이외에 새롭게 하고싶은 일을 조용히 유지하며 성장시키는 숨은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본캐, 부캐라고 구분하는 일도 이제는 조금 낡은 일의 패러다임일지 모른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일이 본캐,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일이 부캐가 아니라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 활동의 비중에 따라 스스로 인정하는 직업의 수가 생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맥락에서, 풀타임 직장 근로자라고 해서, 아이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하나의 일만 직업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내려 놓으면 어떨까? 여러 개의 일을 모두 메인 잡(main job)으로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이 늘어나고 있고,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한때, 나선형 커리어가 인기였다.
나선처럼 구체적인 한 축을 중심으로 조금씩 외연을 향해 확장해 나아가는 커리어가 시대가 요구하는 커리어라고 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다른 양상의 커리어가 등장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축을 갖고 독자적인 일을 만들어가는 커리어다. 바로, 이은진님처럼. 나는 이것을 (더블유 커리어: W Career pattern)라고 부른다. 과거 했던 일을 토대로, 추가적 확장을 모색하는 것이 아닌 별개의 상이한 '경력 기둥'을 이어 하나의 곡선을 만드는 커리어 양상이 흡사 W 글자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더블유 커리어 패턴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특징은 '차별화'와 '새로운 가능성' 모색으로 정리할 수 있다. 남과 크게 다르기 힘든 직장생활 속에서 추가적인 일기둥을 구축함으로써 달라지기를 희망했고, 훈련과 반복을 통해 기둥을 견고히 하는 것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일기둥 구축을 통해 형성한 '차별화'와 '새로운 가능성'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지름길이 되어줄 것이다. 가고자 했던, 그곳에 이르는 새로운 길 말이다.
글쓴이 : 이재은 여자라이프스쿨 대표 (@wlife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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