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퇴사를 꿈꿨지만 복직하게 된 회고

나의 10개월의 육아휴직을 돌아보며

‘그새 많이 컸구나’



휴직기간 동안 제 카메라에 담긴 아이들 사진을 살펴봤습니다. 

9개월이 흘렀네요. 그리 긴 시간이 아닌 것 같은데 아이들은 그새 컸습니다. 몸도 컸지만 마음도 많이 컸습니다. 엄마 눈엔 보입니다. 그래서 밤새 아이들 사진을 보고 또 봤습니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아서 큰일입니다.



이번 호엔 육아 휴직의 종료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육아휴직 회고를 해보려합니다.

나의 첫 육아 휴직, 엄마가 된 이후로 처음으로 내려놓았던 워킹맘 타이틀. 육아휴직이 제겐 어떤 의미였을까요? 




퇴사를 고려했지만 다시 복직을 결심하다.



퇴사를 고려했던 제가 왜 다시 복직을 결심하게 되었을까요?

사실 따지고 보면 육아휴직을 하게된 첫 시작점은 단축 근무였습니다. 첫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단축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업무도 육아도 마음껏 집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남편과 충분한 상의 끝에 육아 휴직을 결심했고 온전히 아이들만 바라보는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물론 매순간이 전부 다 좋았던 건 아니었어요. 육아가 어디 처음부터 끝까지 우아하기만 할 수 있나요? 머리 끝까지 화가 나는 날도 있고, 세상 가장 힘들다는 엄마의 인격 훈련이 버거운 날도 있고, 밥 차리고 설거지 하다 다 가버린 하루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런 시간을 겪었기 때문에 저 또한 엄마로서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맵고 짜고 달고 신 모든 순간을 살았기 때문에 충분히 의미있는 육아휴직 이었다고 외칠 수 있습니다.




육아 휴직을 시작할 때 두 가지 큰 목표가 있었습니다.

첫째,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던 딸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일.

둘째, 고유의 장점과 지금까지 만든 경력을 조합해 나의 브랜드를 창조하는 일.



딸의 마음은 많이 단단해졌습니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전에 필요 이상으로 긴장을 하고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기 보다는 자신에게 다가와주길 기다렸던 아이. 퇴근 후 “오늘 하루 뭐가 가장 재미있었어?”라고 물어보면 “잘 기억 안나”라고 대답하던 아이가 우리 집 최고의 수다쟁이가 되었지요.



묻지도 않은 친구들의 근황과 학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매일 얘기해줍니다. 덕분에 전 딸의 친구 중에 누가 가장 개구진 아이인지, 누가 가장 밥을 잘 먹는지, 누가 오늘 선생님께 혼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육아 휴직의 감격스런 순간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딸의 학교는 일반 건물 안에 있는데 아이는 1학년이 끝나갈 시점에도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교실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어느날 아침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더니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교실까지 가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드디어 아이가 해냈습니다! 전 믿고 기다려주는 것만 했을뿐입니다. 교실 앞에서 헤어지던 것을 어떤 날은 3층에서 헤어지고 그 다음 날은 2층에서 헤어지다가 주말이 지나 다시 아이가 교실 앞까지 함께 가길 원하면 교실 앞, 그 다음은 3층, 그 다음날은 2층을 무한 반복했어요. 



자신의 옆에 늘 엄마가 있다는 사실에 아이의 용기는 자랐나 봅니다. 


아이가 어제보다 한 뼘 더 자라남이 보이는 순간을 타인의 입을 통해 듣지 않고 매일 라이브 방송처럼 직접 챙겨 보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육아 휴직의 의미를 찾기엔 충분합니다. 우린 서로를 더 많이 껴안았고 더 많이 싸웠고 더 많이 이해했습니다. 이모님도 할머니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럼 나의 브랜드를 창조하는 일은 얼마나 진전이 있었을까요?

미비하긴 하지만 한 발은 내딛었습니다. 얼마 후면 새로운 일을 위한 첫 번째 펀딩을 시작합니다. 



나의 브랜드를 창조하는 일에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꼭 나여야만 하는’ 소명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깨닫고 찾은 후에는 실행했습니다. 비록 거북이처럼 느릴지라도 조금씩 행동했습니다. 

관련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모임을 만들어 연구하고 적용해보는 일에 진심을 담았습니다. 그럼에도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조급하기도 했습니다. 육아 휴직 중 부캐 하나를 완성하고 싶었고 N잡러에 이름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복직의 시점이 다가올수록 고민의 깊이는 더 깊어가고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이럴 때는 정말 솔직한 내 마음이 뭔지 잘 파악해야합니다. 후회도 걱정도 책임질 사람은 나 뿐이니까요. 몇주간 제 마음을 들여다보며 ‘아직 회사 밖으로 나올 준비가 다 되지 않았음’을 인정했습니다. 남편에게 가감없이 솔직한 마음을 보여줬고 우린 몇 주간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긴 대화끝에 저희가 내린 결론은 저의 복직과 남편의 육아 휴직입니다. 아이들 양육과 엄마의 커리어에 대해 부부가 함께 짊어지고 고민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남편에게 이 글을 빌어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이제 시작 단계이고 계획했던 것만큼 결과물을 만들진 못했지만 휴직 기간 동안 이를 찾고 두들기고 한 발이라도 나아갔다는 점에 의의를 둬야 앞으로의 행보에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회사일과 퍼스널브랜딩을 병행해야 하기에 시간관리, 체력관리, 육아 등등 저의 한정된 에너지를 어떻게 분산해야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 하지만 휴직을 할 수 있었음에, 복직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여유를 한 모금 마셔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 비슷한 고민으로 밤을 지새우는 당신께 응원을 전하며 이번 글은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 누구보다 치열한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장세정

여자라이프스쿨연구원

글로벌 IT 회사 교육매니저

하브루타 강사




작가의 이전글 나를 담은 낱말로 채운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