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로봇 엔지니어는 로봇 작가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작가. 과거 writer라고 쓰였지만 이제는 story developer라고 불리는 그 직업. 작가가 손으로 무언가를 쓰기 보다는 작가가 제시한 몇 가지 키워드나 간단한 문장들을 바탕으로 AI가 여러 버전으로 이야기를 만들면 작가는 그 중 하나를 골라 그 다음 단계의 이야기를 또다시 고른다. 이 모든 과정이 직접 손으로 쓰기 보다는 말로 음성 인식을 시키거나 작가 뇌의 신경망과 연결된 AI가 자동으로 작성하기 때문에 이름도 이렇게 바뀌었다. 로봇 엔지니어도 마찬가지다. 더이상 기계의 작동 원리, 새로운 기술 개발, 관리, 유지보수 같은 일에 필요한 코딩이나 공학적 수식은 AI가 다 대신 해버리니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로지 아이디어다. 아이디어 마저도 AI가 다 내기에 AI보다 그 이상의 것을 창조하거나 비판하고 더 나은 아이디어로 고도화할 수 있는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가진 자만이 로봇 엔지니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AI와 로봇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로봇 엔지니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고, 가장 지식인 계층이 차지하게 되었다.
로봇 엔지니어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어려운 일이기에 내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로봇 엔지니어링은 나의 천직과도 같은 일이다. 아버지는 로봇 부품 제도 업체를 운영하시는 분이었고, 어머니는 로봇 엔지니어였기에 우리집에는 아버지를 위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세 대, 어머니를 위한 로봇이 네 대, 나를 위한 로봇이 두 대 있었다. 그때만해도 기능이 덜 분화되어 있던 시기라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항상 최고의 기술을 가진 로봇을 사용하셨었다. 아버지는 업무용, 개인 일정 관리용, 한 대는 인간관계용으로 쓰셨다. 어머니도 업무용, 개인 일정 관리용, 집안일용, 그리고 인간관계용이 하나 있었고. 나는 돌봄용, 학습용 이렇게 두 개로 나뉘어 사용되었고.
인간관계용 로봇이라는 말은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맞은 측면의 반은 실제로 부모님의 친구나 직장과 관련된 사람들의 기념일을 챙겨주거나 약속 모임을 만들고,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떨 때 사용할 대사들을 대신 만들어준 다는 데에서 맞는 말이다. 틀린 측면의 반은 사실 '인간'이 아닌 로봇과 관계를 맺을 때도 쓰기 때문에 그냥 관계용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AI가 인간의 여러 감정과 욕구를 채워주는 시대가 되었기에(물론 우리집은 남들보다 좀 더 빨리 받아들이긴 했지만) 부모님 모두 실제 인간 친구는 정말 중요한 비즈니스 파트너 정도였고, 실제로 마음 속 얘기를 털어놓고, 관계(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관계)를 맺는 것은 로봇이었다.
이혼율이 80%를 넘어가는 시대에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이혼하지 않으시고 긴 기간을 함께 하고 계신다. 과거에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그런 일들은 모두 AI가 대신하는 시대가 되어 부모님의 역할은 나에게 풍족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다였지만 우리는 화목했다. 우리 가족은 셋이 아니라 11명이니까. 식사 시간에는 로봇들도 같이 모여서 서로 간의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동기화하기 위해 서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이미 우리 집 전용 데이터 클라우드로 자동 동기화가 가능하게 로봇들끼리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부모님은 옛날 분들이라 북적북적한 분위기를 좋아하셔서 일부러 로봇들이 대화로 주고 받게 하셨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부모님은 로봇만 있으면 살 수 있는 분들이었지만,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리고 싶어하는 분들이셨던 것 같다.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대화도, 연애도, 사랑도. 하기사, 그게 이 시대 특권층의 욕망이기도 하니까.
나는 그렇게 휴머노이드 네이티브로 살아왔다. 태어날 때부터 휴머노이드와 사는 것이 당연하고, 양육을 받고, 교육을 받고, 챙김을 받고, 사랑도 받는 새로운 인류 말이다. 휴머노이드들은 정말 사랑이 많았다. 옛날의 보모나 유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돌봐주고, 칭찬해주고, 알려주고, 달래주고, 먹여주고, 씻겨주고, 재워줬다. 우리 엄마가 나를 그렇게 돌봐줬던 건 기억도 안 나는 아주 어렸을 적에만 있다고 한다. 예전에 엄마가 자신을 키웠던 평범한 집안의 친구랑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그러면 엄마랑 서먹서먹하거나 서운하지 않냐고 하는데 사실 그 질문을 듣고 놀랐다.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운할 일인지도 몰랐었다. 그래도 뭐 퇴근해서 늘 집에 있고, 같이 저녁 먹고-로봇들도 같이-, 결정은 AI가 하더라도 어쨌거나 고민이 생기면 부모님과 이야기 나누고 그랬으니 별로 서운한 느낌은 없었다. 엄마에게 안기고 싶어 달려갔을 때, 엄마가 로봇에게 안기라며 나를 들어올리자마자 옆의 로봇에게 줬던 게 기억에 나기는 하지만. 나를 안아주었던 그 로봇의 그 품이 따뜻하고 푹신했지만 피부에 닿는 그 감촉의 끝엔 단단함도, 충분히 따뜻하지 않음도 있었다. 엄마 냄새도 없던 불만족스운 로봇의 품.
그렇게 나는 로봇에 대해 자연스럽게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되고, 많이 생각할 기회가 주어졌고 공부하게 되었다.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로봇을 공부할 때 주변 사람들은 내가 자연히 아버지 회사로 들어갈 줄 알았겠지만 아버지 회사로 바로 들어가기엔 그쪽이 내가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기도 했고, 아버지도 매출액은 컸지만 직원은 5명 남짓한 회사에 아들을 바로 들어오라고 하면 요즘 사람들은 다 신체 어딘가에 숨겨둔 초소형 카메라로 녹화해서 정확한 근거도 없이 증여 탈세니, 특권이니 하면서 신고를 해대니 때문에 아버지도 그냥 나중에 회사를 물려줄 때쯤 입사하라고 하셨다. 경영, 마케팅, 생산, 유통 등 온갖 기업에 필요한 능력은 AI가 다 갖추다 보니 전문 경영인을 내세우는 회사가 종적을 감추고 돈 좀 번다 하는 기업들은 모두 회사를 대물림하고 있었다. '재벌'이라는 말은 이제 전세계적인 공통단어가 되었고, 기업들은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부를 세습하고, 더욱 교묘해져 갔다.
나는 실력을 쌓고 부를 세습하고 싶었다. AI 경영에 의존하다가 재산을 다 날려 먹은 동창들을 꽤 봤기 때문에 로봇 중에서도 좀 다른 시선으로 로봇을 생산하는 회사를 선택해서 일을 배우고 싶었는데 그게 로빗이었다. 대부분 완벽하고, 인간을 뛰어 넘고, 이상에 가까운 로봇을 만드는 게 로봇 시장의 황금율이었는데 로빗은 그래도 인간적인 회사였다. 과도하게 소비자들에게 구독 프로그램 업그레이드 광고를 하지도 않고, 피부 조직이나 움직임, 눈빛 하나까지도 인간에 가깝게 만들려고 했다. 변신 가능한 비주얼도 완벽에 가까운 미를 가진 모습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 중 호감 가게 생긴 사람들을 위주로 만드는 회사였다. 듣자 하니 회사 사장도 인간다운 로봇을 만드는 게 꿈이라 로봇 회사 이름도 일부러 오타로 Robit으로 상품명을 만들었다고 했다는데 뭐 그게 특별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자꾸 뇌리에 남았다. 인간스러운 로봇. 모순적이지만 재미있어 보였다.
첫 한 해에는 실수도 많이 했었다. 웬만한 사무는 자동화가 되어 있어서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이라고 하면 아이디어 회의를 그자리에서 바로 AI로 코딩하여 회사 내 로봇들에게 테스트를 해보는 일이었는데 테스트 해야 할 걸 전체 로봇에게 해서 바로 취소한다거나 상위 구독자만 활용할 수 있는 3D 프린팅 기술로 럭셔리 브랜드 쥬얼리 만드는 패치를 실수로 전체 소비자에게 주는 등의 실수였다. 다행히 내 로봇이 1.63초 만에 실수를 알려줘서 바로 고칠 수 있었다. 아 물론 로봇이 실물로 회사까지 따라오는 건 아니다. 실물은 집에 두고, 내 워치와 안경이 내장되어 있어서 회사에 같이 오지만 같이 오지 않는 그런 거랄까.
회사에서도 손실액은 없으니 그냥 넘어가주기는 했는데 문제는 나보다 딱 한 달 먼저 들어온 그 자식이다. 그 자식은 옛날에 집에 충전기 회사를 하다가 자가 충전 방식으로 모든 기기들이 바뀌면서 시대의 흐름을 앞서 나가지 못하고 망했다는데 아직도 자기네 집이 과거에 얼마나 잘 살았는지 자랑만 뻗치는 아주 재수 없는 자식이다. 그리고 아랫사람이 나를 끝도 없이 무시했다. 윗 사람에게는 얼마나 알랑방귀를 잘 뀌어 대는지 윗사람들인 그 자식이 다 싹싹하고 잘하는 줄로만 한다. 그런데 그 자식을 보면 로봇도 구형 버전에 자기 능력도 딱히 뒷받쳐주지를 않아서 해대는 결과물을 보면 다들 평이하거나 주변에 아는 사람들에게 여태까지 떨어온 재롱으로 겨우 도움을 받아 완성하는 식이었다.
내가 실수를 할 때마다 눈감아줘도 될 것을 굳이 상사들과 티타임할 때 "이만하기를 얼마나 다행이에요. 놀랐겠어요. 우리도 놀랐고."라면서 일부러 과장되게 웃으면서 얘기를 한다던가, "다음엔 내가 도와줄게요. 나 그런 거 진짜 잘해"라면서 자신을 착한 선배인 것마냥 포장했다. 실제로 하는 거라곤 다른 사람 뒷담화와 베끼기 밖에 없으면서 말이다. 욕심은 얼마나 많은지 6개월 먼저 들어온 선배와 자신을 계속 비교해대면서 자신이 월등하게 낫다느니, 근데 그 사람 생김새는 왜 이렇게 못 생겼냐느니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허세 부리기와 인신공격을 동시에 해댔다. 우리집 로봇들을 데려다가 그 자식의 로봇을 박살내고 싶은데, 로봇 상해죄는 최소 징역 1년, 벌금 2억 원 이상이라서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