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not!
메신저로 연락을 하던 중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세상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이죠"라는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글은 한 문장의 글로 시작되었습니다.
Why not change the world?라는 슬로건이 멋져 다니게 된 대학은 실망의 연속이었습니다. 자신 하나도 바꾸지 못한 채 세상을 탓하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는 이들을 비판했었습니다. 스스로를 보았을 때도 ‘나’에서 시작하지 않고 남만을 탓하는 게 역겹게 다가왔습니다.
대학의 끝자락이 점차 다가옵니다. 짧으면 1년, 길면 1년 6개월만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가는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농밀하고, 밀도 있게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있는 중입니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 선한 영향력을 끼치겠다는 말은 모호하고 비판받기 쉬운 말입니다. 우리는 악당보다 영웅에게 욕을 내뱉기 더 편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긴 비판의식을 대학에서는 마음껏 표출하지 않았습니다.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찬물을 끼얹기에는 미안했죠, 하지만 글에서는 표출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부족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망각하는 건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사회 교과목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고등학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제가 선생님을 존경하고는 했습니다. 17살,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는 2000년에 개봉된 영화의 한 대목입니다. 이 영화를 실제로 보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칠판에 그려주신 한 그림이 기억납니다.
이 그림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주인공은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한 사람이 도움을 주고 이 도움을 받는 걸 3명에게 도움을 준다면 세상은 아름답게 바뀔 것이다'였습니다. 따스한 이야기기도 하지만 다단계의 시스템 같기도 하죠. 열정 많고 사회에 대한 관심도 높던 저에게는 혁신 같은 이야기처럼 들렸죠. 이후 이 에피소드는 빠르게 잊어버렸고 눈을 뜨니 대학에 왔습니다.
한 사람의 움직임보다 여러 명, 몇 백 명이 큰 힘을 가진다는 건 까먹은 지 오래였습니다. 개인주의로 힘겨워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역행하는 공동체주의인 대학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20살, 새내기 때는 개인주의로 살아온 20년의 인생에 이 대학은 '실수'처럼 느껴졌습니다. Why not change the world?라는 슬로건에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함께라는 가치보다는 '개인'이라는 가치에 중점적으로 생각하던 저에게는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이제 대학을 다닌 지 약 3년이 되었습니다. 20살의 어린 생각은 점점 커졌고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시간 동안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멋진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책을 읽었습니다. 주변 사람과 그리고 대학의 학교 행사의 진행하는 걸 보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주인공의 그림의 뜻을 알아버렸습니다.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보았지만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상담심리를 전공한다고 이야기하면 '잘 들어주는 사람'을 떠올리곤 하지만, '잘 말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상담보다는 강의가 더 잘 맞는 제가 들어주기는 기본 중의 기본인 공감과는 멀기만 합니다. 실제로 남들의 이야기를 듣다 공감하지 못해 붕 뜬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대학에 와서 여러 감정을 느끼고 공감을 배웠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울기도 하고, 친구의 일을 제 일처럼 공감해 화를 내기도 했죠. 이 일이 남들에게는 큰일이 아닐지 몰라도 저에게 있어서는 놀라운 일입니다.
대학생이 토익 850점을 받는 것과 5살 아이가 영어로 apple를 말하고 배운 것 중 무엇이 더 높은 가치일까요. 그건 매길 수 없습니다. 과거보다 성장했고 '변화'했다는 게 중요한 대목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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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변화처럼 보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일이라 속으로 누가 저걸 못하냐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작은 변화는 그렇습니다. 작게 시작하기 때문에 가치가 낮아 보이기도 하고 평가하기도 쉽죠. 그러나 작은 변화가 있어야 큰 변화가 시작됩니다. 공감을 하지 못하던 사람이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공감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고개를 끄덕거리고 남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작은 변화들이 동반한다면 끝에는 어려운 일을 마무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처음 인용했던 문구로 돌아가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세상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이죠"
이 문구에서는 사람은 개인입니다. 그리고 본인입니다. 길을 가다가 지나가는 행인도 아니고, 집에 있는 부모님과 형제도 아닙니다. 철저하게 '본인'이자 '개인'입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는 10-20대에 하기 좋은 이야기입니다. 열정 있는 사람 같고, 멋진 삶을 추구하는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잠시 멈춰봐야 한다. 정말 멋진 삶일까요? 어쩌면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보다 고달플 수 있고 힘든 일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개혁이란 늘 힘든 일이니깐요.
대학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Why not change the world? 에서 Why not change me?로 바꾸어 살아보고자 합니다. 스스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개인이 무너지게 되고 개인이 무너진다면 공동체도 함께 무너지게 됩니다. 제가 바라는 세상은 개인의 내면 외면이 건강한 사회입니다. 세상 이전에 먼저 자신을 계속해서 성찰하고 갈고닦는 과정이 있을 때야만 비로소 자신의 주변에 영향을 미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why not chang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