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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na 이나 Apr 01. 2024

[해외취업] 프로덕트 디자이너 이직 여정 (1)

이직을 결심한 이유와 회사에 당분간 남기로 한 이유

내가 사랑하는 도시, 호주 브리즈번. 의도치 않게 합격한 회사의 2, 3차 인터뷰를 여기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화상으로 진행했다. 이 정도면 호주는 나에게 행운의 나라가 아닐까?


지난 2월 중순 경, 호주에서의 꿈같은 한 달을 보내고 한국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인터뷰를 진행하던 회사 중 한 곳에서 최종 오퍼를 받게 되었다. 액티브하게 이직준비를 하지 않은 기간까지 합치면 일 년 넘게 걸린 노력 끝의 결실이었다. 미래를 위해 더 늦기 전에 탄탄한 커리어를 쌓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직 준비였고 돌이켜보니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많은 회사에서 리젝 메일을 받고, 인터뷰를 줄줄이 탈락하는 일이 연달아 이어지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버려서, 한 동안은 회사 지원도 멈추고 틈틈이 포트폴리오 스터디와 영어 인터뷰 스터디를 병행하면서 그저 스킬을 묵묵히 스킬을 쌓는 데만 집중했다. 사실 인터뷰 요청이 왔을 당시에도 좋은 결과를 얻을 거라는 기대는 거의 내려놓은 상황이었기에 이런 상황이 아직도 감개무량하다. 


전 직장에서 이직을 마음먹은 지는 사실 꽤 오래되었다. 그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직함이 말 그대로 그냥 "디자이너"였다.) 1년 반 정도 일했을 시점에, 본격적으로 다른 기회를 찾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위기의식이 생겼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디자이너로서 어떤 커리어를 쌓아야 할지가 매우 불분명했다. 지금 생각하면 직함 이름이 어떤 분야에 특정되어 있지 않고 그냥 디자이너였다는 것이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전 회사는 B2B SaaS 스타트업으로 유럽에 본사를 둔 다국적 회사였는데, 테크업계에서 발전 가능성이 꽤 커 보이는 프로덕트였음에도 디자인 팀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의 롤은 앱의 UI 디자인 및 회사의 전반적인 모든 비주얼 측면의 디자인을 모두 다루는 아주 제너럴 한 잡디(?)가 되었다. 나의 메인 responsibility는 웹디자인과 마케팅용 이미지 에셋 제작, 브랜드 디자인이 주였고, UI 디자인의 비율은 약 30% 정도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마저도 UX를 제대로 다뤄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타국으로 Relocation을 하고 싶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늘 해외취업을 마음의 숙제처럼 남겨두고 있었지만, 전 회사가 한국에도 지사를 둔 회사였기에 비자나 리로케이션 걱정 없이 한국에서 일을 시작하는데 아무 무리가 없었던 점이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해외로 가겠다는 목표를 유보시키게 되었다. 워라밸도 좋고, 한국에서 일하는 것 기준으로는 연봉도 꽤 좋았고, 삶의 질 자체는 이전의 한국 회사에 재직중일 때에 비해 엄청나게 수직상승했다. (덕분에 정신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월요병이 없었다는 것만으로도 말 다했지) 한국에 살면서도 외국 기업을 다니면서 얻을 수 있는 행복한 라이프 스타일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했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내가 언젠간 이 나라를 벗어나 나의 원래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해외에 다른 지사와 본사가 있기 때문에 회사와 그 나라들로의 리로케이션 관련 이야기도 나눠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비자 발급 문제를 포함해 시차로 인해 나와 가깝게 일하는 팀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것이 이유였다.  


프로덕트 디자이너 포지션으로 완전히 커리어를 집중하고 싶었다. 이 업계에서 일을 하면 할수록, 비주얼 디자인을 나의 주 능력으로 한정 짓고 싶지 않아 졌고, 프로덕트에 좀 더 실질적인 임팩트를 주고 싶었다. 어느 순간 무언가를 보기 좋게 만드는 그래픽 디자인이나 UI 디자인 작업이 너무 쉽고 수월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나는 이 사인이 나 스스로에게 주는 일종의 경고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이러다 나에게 익숙하고 편한 일에 갇혀서 영영 성장을 멈추어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직 사유를 얘기하다 보니 단점 위주로 나열했지만, 사실 그 회사에서 만족스러운 면도 상당히 많았다. 어쨌든 코로나 기간 동안엔 한국에 발이 묶여 있었던 나에게 해외취업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준, 지금까지도 정말 감사한 회사이다. 아마 이곳의 오퍼를 받지 않고 당시에 동시 합격했던 한국 회사로 취업을 했다면 전문성은 좀 더 쌓였을지 몰라도 해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는 훨씬 더 늦춰졌을 것이다. 이 회사에서 일한 덕분에 한국에 살면서도 영어를 조금이라도 더 내뱉으며 쓸 수 있었고,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었다. 내가 계속 한국 회사에서만 일을 하다 맨땅에 헤딩하듯 해외로 바로 취업하려 했다면 아마 언어장벽을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느끼고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어려워 죽겠는 마당에...)


그렇게 나의 커리어 발전을 위해 본격적으로 레쥬메와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여러 디자이너들에게 피드백을 받았다. 몇 개 안 되는 UI 디자인 작업물들을 최대한 끌어모은 후 스토리텔링을 했다. 가장 많이 받은 피드백은 역시 예상대로 UX 디자인 프로세스의 결여였는데, 이 부분은 내가 그런 프로세스를 밟을만한 리소스 및 환경이 안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쥐어짜도 보충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직함부터가 회사의 모든 디자인을 죄다 담당하는 롤이었으니까..ㅋㅋㅋㅋㅋ)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자는 생각으로 해외에 있는 여러 회사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난 무조건 주니어 레벨로 들어가서 처음부터 제대로 프로덕트 디자인을 배울 생각이었는데, 그나마 인터뷰 연락이 오는 곳들은 모두 시니어를 뽑는 곳들이라 당연히 나의 어설픈 영어와 허술한 경력으로 인터뷰에서 좋은 결과를 듣기는 힘들었다. 여기서 이 업계는 주니어 채용 공고가 정말 가뭄이라는 걸 몸소 느꼈다(...)


이런 상태로는 아무리 해봐야 진전이 없겠구나 라는 생각에, 나는 네덜란드로 남자친구를 따라 이주하는 것이 확정됐을 시점 겁도 없이 전 회사에 퇴사를 알렸다. 계속 내 커리어에 큰 의미가 없는 작업들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당장 안정적인 수입이 없더라도 작은 프리랜서 일이라도 받아서 프로덕트 디자인 일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상치도 못하게, 전 회사는 내가 UI/UX 디자인에 큰 흥미를 갖고 있다는 걸 알고는 나의 롤을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변경해 줄 테니 그쪽 업무에 포커스를 맞춰서 계속 함께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나에겐 너무나도 감사한 제안이었고, 나의 관심사를 인지하고 배려해 준 회사의 자비를 마다할 수 없었다. 난 그렇게 이직 스트레스를 잠시 묻어둔 채 (?)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아주 손쉽게 커리어를 변경할 수 있게 되었지만, 물론 그것으로 내 모든 갈증이 해소되진 않았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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