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얼떨결에 보게 된 스크리닝 인터뷰
이직 준비 1편: https://brunch.co.kr/@wlsdk6977/6
드디어 전 회사에서 아무 전문분야도 대변하지 못하는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벗고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성장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가장 치명적인 이유는 역시 디자인팀의 부재였다. 내가 소속된 팀은 나를 제외한 모든 팀원이 PM이었기 때문에 디자인 피드백과 인사이트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한창 커리어를 변경하고 이 롤에 대해 차근차근 배워나가야 할 시기에 제대로 된 디자인 프로세스를 밟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조직이 각자 처한 상황이 있기에 모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디자인 프로세스를 밟는 것은 어려울지라도, 적어도 디자이너가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해낼 수 있는 역할을 기대했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애초부터 부재했던 조직 특성 탓에, C 레벨 혹은 PM들이 원래는 디자이너들이 일부 맡았어야 할 역할을 이미 수행 중이었고 그 구조 자체를 뒤집어엎는 것은 무리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어떤 테스크를 진행함에 있어서 우리가 이걸 왜 해결하려 하는지, 타깃 유저는 누구인지 등등의 컨텍스트가 거의 주어지지 않고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여지없이 그저 위에서 주는 업무를 쳐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지, 이러다가 전과 비슷하게 UI 디자이너로 나의 스콥이 한정되어 버리는 게 아닌지 두려움이 몰려왔다. 결국,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내 커리어 발전을 위해 다른 기회를 탐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처럼 너무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레쥬메와 포트폴리오, 그리고 인터뷰에 필요한 영어실력을 더 다듬어서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싶었다. 2023년 하반기에 온라인으로 포트폴리오 스터디와 영어 인터뷰 스터디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관심이 가는 회사 공고 몇 개에 시험 삼아 지원을 해보았다. 올해 초에 여러 회사로부터 리젝을 받은 뼈아픈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는 별 기대 없이 넣어본 거였는데, 얼떨결에 그중 세 군데에서 연락을 받아 스크리닝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A사:
이메일을 통해 연락을 받았고 가장 처음으로 인터뷰 요청이 왔던 곳이다. 1차로 리쿠르터와 조금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20분 정도 1차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랜만의 인터뷰라 꽤 긴장하긴 했지만, 나에 대한 질문보다 인터뷰어가 이 회사에 대해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에 면접 자체는 평이하게 흘러갔다. 좀 흥미로웠던 질문은 UI와 UX 디자인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를 묻는 거였는데 사실 나에겐 답하기 조금 까다로웠던 질문이다. 비록 지금까진 유아이 디자이너에 가까웠어도 앞으로 하고 싶은 건 유엑스니까^^....ㅎ 당시에 조금 애매하게 답변했던 것 같은데 리쿠르터가 우리 팀은 유엑스에 포커스 할 팀원을 찾고 있다고 해서 뒤늦게 나도 유엑스를 좀 더 열정이 있어서 이직하는 거라고 뒤늦게 어필했다. 이 인터뷰를 계기로 그 뒤로는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때 UX를 하고 싶다고 좀 확실히 표현하려고 했다.
문제는 이 회사가 아직 신생기업이라 디자인 팀이 따로 없었고 앞으로 빌딩할 디자인팀을 리드할 수 있는 시니어 디자이너를 찾고 있다고 했다. 이미 여기서부터 내 짧은 경력으로는 안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팀이 아직 작아서 C 레벨과 다이렉트로 일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이전 회사에서 이런 방식으로 업무를 자주 하다 보니 프로덕트 이해도가 월등히 높은 C레벨이 대부분의 디자인 결정을 하게 되었고, 그런 분위기에서 내 의견을 피력하거나 주도적으로 역할을 해나가기 어려웠다. 이직을 하게 되면 탑다운 방식에서 조금 벗어나서 좀 더 팀원들과 다 같이 협업할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래도 여기서 혹여 시니어 타이틀을 얻게 되면 전보다는 더 많은 기회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니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당시 인터뷰를 진행하던 때가 12월 연말이었고, 대부분의 유럽 회사들이 그렇듯이 대부분의 직원들이 휴가를 가면서 답변을 2주 넘게 받지 못했다.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12월 셋째 주가 되니 아무도 이메일에 답장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다 ^^...) 이 회사는 인터뷰에선 다음 날까진 답을 주겠다고 해놓고 몇 주 동안 결과를 알려주지 않으니 괜히 초조해져서 팔로업 메일도 보내봤다. 몇 주 간의 애타는 기다림 끝에 예상대로 좀 더 시니어 레벨의 디자이너를 찾고 있어 함께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메일이 왔다. 아쉬웠지만 기다리는 동안 스트레스를 은근히 받았기 때문에 차라리 떨어지니 마음이 후련하긴 했다.
B사:
A사와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인터뷰 요청을 받은 곳이다. 처음엔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더니 "안녕 너 (&*$+%)에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지원한 거 맞지?"라고 묻는데, 사실 통화 음질이 너무 안 좋아서 회사 이름은 알아듣지도 못한 채 얼떨결에 스크리닝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렇게 예고 없이 전화로 면접을 보게 된 건 처음이라 전혀 준비가 안되어있었고, 음질 때문에 질문을 100%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최대한 열심히 대답했다. 현재 회사에서 맡고 있는 업무, 비자 상태, 이직 사유 등의 일반적인 질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갑작스러운 폰 스크리닝 치고는 꽤 다양하고 깊은 질문을 해서 약간 당황했다. (물론 안 그런 척하려고 애썼다^^...) 그래도 어찌어찌 다음 인터뷰 스케줄을 잡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C사:
앞선 두 회사와 인터뷰가 잡히고 일주일 뒤에 리쿠르터로부터 전화가 와서 폰 스크리닝을 진행했다. 네덜란드에 본사가 있는 스타트업으로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회사이다. 프로덕트도 이미 다 안정적으로 구축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꽤 탄탄해 보이는 스타트업이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망설여지는 곳이었다. 리쿠르터가 상한선으로 제안한 연봉이 당시 받고 있던 연봉보다도 낮았고, 디자이너를 이번에 처음 채용하는 거라 조직 내에서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도 전반적으로 떨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회사에서 나는 거의 1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고 그것은 전체 구성원 수 대비 굉장히 적은 비율이었다. 이 회사 또한 전체 직원은 200명가량 되었지만 내부에 프로덕트를 직접 담당하는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없었다는 것. 결과적으로 전 회사에서 맘에 안 들었던 측면을 갖고 있는 데다 돈까지 덜 받는 셈 (.....) 그래도 일단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에 연봉은 조정할 의향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실무진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남은 두 회사와의 실무진 인터뷰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