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의 부당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 화가의 그림은 경매에서 아주 비싸게 팔린다.

입찰자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의 가장 잘 그린 작품은 얼마인가요?"

화가가 답했다.

"그건 팔지 않아요. 벽에 걸어두고 제가 볼 겁니다."

아끼는 작품은 돈을 받고 팔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성매매가 잘못된 이유도 이렇다.

사람의 성은 소중해서 돈으로 사고팔 수가 없다.


다만 두 상황에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그림을 팔지 않기로 결정한 건 화가다.

반면 성매매는 몸의 주인인 우리가 결정할 수 없다.

파는 것은 나쁜 것이고 처벌의 대상이 된다.


사람의 가치관은 모두 다르다.

가치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건 개인의 자유다.

그렇다면 내가 정하지 않은 소중함에 동의해야만 옳다는 데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매매 가능한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성의 가치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성매매를 두둔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양심이 설명할 수 없는 데에 동의하는 건 나쁨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다.

그래서 다양한 형태로 성을 대한다.

혼전순결을 지키거나 연인 간의 사랑을 확인한다.

반면 술과 분위기에 취해 가볍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성은 은연중 바라는 것을 관철시켜 줄 때도 있다.

어느 것도 타인이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


한데 우리 성적 결정권의 일부가 우리에게 있지 않다.

권리리면 거부할 수도, 행사할 수도 있어야 한다.

할 자유를 빼앗는 것은 안 할 자유를 빼앗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


만약 가난한 화가가 그림과 하룻밤 중 선택을 해야 한다면 말이다.

아끼는 작품을 팔지 않겠다는 그에게 한 번 설명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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