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과 관점 중심

진심이 닿지 않을 때,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번역한다.

by Haro adh



나는 그 순간, 그저 진심을 말하고 싶었다.

남편이 물었다.


“우리 아이가 우리를 사이좋은 부부로 볼까?”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절대 사이좋게 보지 않아.”


우리 부부는 의견 충돌이 자주 있었다.

대화 자체가 싸움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우리가 말할 때 텐션이 조금만 올라가도, 아이는 놀다 멈추고 “아빠! 엄마!”를 반복한다.


남편은 아이가

“엄마 아빠는 원래 이렇게 대화하는 게 일반적인 방식”

이라고 생각할까 걱정하며, 앞으로 아이에게 보여줄 부드럽고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결과적으로는 남편의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는 우리의 대화법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이가 불안한 상황이라고 느껴, 우리 부부의 대화를 멈추게 하려 한 것이다.


이 점에서 내가 꺼낸 말은 남편에게는 “불필요한 말”로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가장 핵심적인 관찰이었다.



남편과 나의 관점 차이


• 남편 입장:

결과, 즉 앞으로 아이에게 보여줄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 초점을 두었다.


“어차피 결과는 바뀌는 게 없는데, 왜 굳이 저런 말을 하지?”


• 내 입장:

아이의 지금 행동과 반응—대화를 멈추게 하는 의도와 불안—에 초점을 두었다.


“결과는 바뀌지 않아도,

지금 아이가 어떤 상황으로 판단하고 어떤 감정으로 반응하는지를 이해해야

정확히 대처할 수 있다.”


이건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더 중요한 본질로 보는가의 차이였다.

남편은 미래와 결과 중심,

나는 현재와 아이의 반응 중심이었다.



또, 나의 생각을 표현할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남편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 쓸데없는 말을 한다고 화를 낸다.


그건 단순한 지적이 아니라,

“너의 생각은 믿을 만하지 않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감정과 생각을 엮어 말하는 사람이다.

그 “불필요한 내용”은 내 본질 그 자체였다.

그 부분을 빼면 논리적으로 깔끔할 수 있지만,

‘나’라는 존재가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 든다.



ADHD는 내 말의 속도와 형태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의도와 의미까지 증상으로 환원될 순 없다.

그것은 여전히 나의 진심이며, 아이를 향한 책임감이다.


ADHD를 알고 나서, 나는 매번 스스로를 의심했다.


“이게 내 생각일까, 아니면 증상의 일부일까?”


그 질문은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진심을 꺼내도, 그것이 나의 일부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

나는 아이의 불안과 남편과의 시선 차이를 동시에 느끼면서,

조금 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해지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