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 주말
도착하고 정신없이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시차적응이 아직 안돼 눈 떠보니 오전 10시.
우리가 예약한 두 번째 숙소(코퀴틀람)로 옮겨야 해서 짐을 정신없이 챙겨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흔하게 있는 패스트푸드점 Wendy's.
어마어마한 짐을 우리 차에 실으며 땀을 뻘뻘 흘리고 정신없이 나왔지만,
화창한 하늘과 따뜻한 커피로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메뉴는 10시 30분까지 가능했는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10시 40분..
아침 메뉴 대신, 귀여운 사이즈의 프렌치토스트와 시저 샐러드.
밴쿠버 시내가 가까운 동네를 떠나서 조금 벗어난 코퀴틀람으로 가는 길.
달리다 보니 숲이 가득하고 예쁜 집들이 군데군데 모여있는 예쁜 동네가 나타났다. 생기기 시작한 지 13년 정도 된 신도시(?)라고 들었는데 조금 달리면 편의시설이 가깝고.. 조금 달리면 숲이 가득한 조용한 집들이 모여있있다. 캐나다에서 운전은 크게 스트레스가 없어서 한국에서와 같은 거리, 같은 시간을 운전해도 피로감이 훨씬 덜하다. 신호가 자주 바뀌는 탓에 사람들도 급하지가 않은 듯하고(아무도 경적을 울리지 않음)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게 여유 있게 운전해서 어렵지 않다.
숙소에 짐을 풀고 주변 구경과 장보기에 나섰다.
그때...!
차 창 밖으로 보이는 검고 복슬복슬한 정체가 집 앞을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엔 큰 개인가 싶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곰이다!!!
다행히 차 안에 있어서 겁나진 않았지만 깜짝 놀라 정신없이 영상을 찍고 우리끼리 흥분해서 소리쳤다. 한두 블록 떨어진 곳엔 사람들이 여유롭게 걸어 다니고 있는데 저 사람들과 마주치면 어쩌지? 놀라고 걱정됐다.
나중에 이 동네에 오래 사신 분께 듣고 보니.. 원래 자연이었던 이곳의 나무를 베고 집을 짓고.. 곰의 집에 사람이 살고 있으니 함께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것이라 생각하셨다. 회색곰의 경우, 사납기 때문에 발견되는 즉시 신고해야 하고 갈색곰의 경우, 음식 냄새가 나거나 음식쓰레기를 밖에 두면 나타나는 경우가 있지만 사람을 먼저 공격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곰도 사람 조심. 사람도 곰을 조심. 서로서로 조용히 지나가며 공존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요즘 이 동네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곰 두 마리가 인기 스타이고, 자주 나타나는 큰 곰 한 마리는 태어난 지 좀 된 틴에이저 곰돌이라 하셨다. ㅎㅎ(곰도 사춘기엔 엄마 말을 안 듣고 자꾸 위험한 곳에 가는 걸까 ㅎㅎㅎ)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크게 무서워하진 않아도 되겠다 싶었지만... 내가 갈 시골마을엔 곰이 더 많이 돌아다니지 않을까... 마주치면 얼어붙을 것만 같다... 아직 겁이 나서 곰을 본 이후로 마음껏 숲을 느끼며 산책하기 조금 두려웠다. 차차 적응이 되면 나아... 지겠지...??^^; 하하..
토요일 아침, 맑고 포근한 아침. 우린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밴쿠버에는 Sky train, Bus, Sea bus가 있다. 우리 숙소에서 가까운 역으로 가기 위해 걷기는 멀고.. 역 근처에 주차를 하고 다녀오기로 했다. 캐나다에서는 주차가 가능한지 잘 확인하고 주차하지 않으면 견인될 수 있으므로 잘 확인하고 주차하기! 처음 주차요금을 내보니 어떻게 하는지 우리가 들여다보고 있으니 건너편 집에 사는 아저씨가 우리를 부르며 친절하게 오늘은 요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설명해 주었다.(주말이니깐)
친절한 사람들... 여기 와서 누군가에게 무언가 물어보거나 눈을 마주치면 활짝 웃어주는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곤 한다. 도시도 이 정도면 시골은 어떨지 더 궁금해진다.
밴쿠버는 주말은 오히려 대중교통 요금이 저렴해진다. 주말에 많이 많이 돌아다니라는 뜻일까.
거리에 따라 Zone 1~3으로 구분되고 요금도 비싸지는데 주말엔 어디를 가도 Zone 1 요금! 게다가 Sea bus랑 bus까지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One day pass의 경우에는 하루종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밴쿠버에서 제일 인기 있다는 스탠리 파크 주변만 둘러보고 오자며 Multiple ticket을 끊었는데.....(나중에 알게 됐다.... One day pass를 끊었어야 한다는 것을....ㅜㅜ 아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지하철역마다 있는 화장실을 생각하고 역사에서 찾아보니.... 없다....ㅜㅜ 다시 나가서 화장실을 가고 또 표 끊음....ㅠㅠ One day pass로 끊을걸... 이것도 이렇게 배운다 ㅎㅎ)
역 간 연결도 편리하고, 쾌적했다. Sea bus도 역 간 연결이 잘 되어있고 다음 편이 몇 분 후 출발하는지 떠서 편리했다. 바다 위를 달리는 교통수단이 우리에겐 재미있는 경험이기도 했다.
그렇게 금세 도착한 스탠리 공원. 공원을 걷다 보니 소규모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예쁘고 행복한 모습에 구경하다가 자세히 보니.. 남자. 남자의 결혼식..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인 이곳 캐나다에서 실제로는 처음 목격한 풍경이었다.
트랜스 젠더.. 동성연애.. 에 대해 나는 원래 크게 관심이 없었고 그냥 TV에 나오는 누군가 특별한 사람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몇 해 전 어느 날.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나의 회사의 존경하던 선배님. 그녀의 아들이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그에 대한 다큐였다. 다큐 속에 나온 선배님과 사람들은 사랑하는 자식의 행복을 위해 우리 사회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때부터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누구도 선택으로 그 길을 갈 수는 없고 노력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모두가 같고... 어려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자녀의 결혼을 가족과 친구, 친지들이 온 마음으로 축하해 주는 모습을 그 결혼식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 오기 전, 캐나다는 나라에서 공립학교에는 화장실도 3칸(남자, 여자, 또 다른 성을 위한)이 의무라고 들었고, 대학 원서를 쓸 때도 성별란에 선택하는 성별이 여러 가지라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캐나다 사회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 개방적이고 열린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결혼식이 여기서도 생소한 장면이었던 걸까?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구경하고.. 소곤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편견 없이 보고 대하는 걸 어렸을 때부터 배우는 사회라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래도 어려움이 있는 거겠지..?
캐나다가 동성결혼이나 성전환에 대해 개방적이라 이곳의 분위기가 싫어서 캐나다로의 이주를 꺼리는 경우가 있다고 듣기도 했지만...
나는 반대로 아들이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다양하고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언어치료사로 일하며 우리나라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 고민하고 안타까웠던 적이 많은 것도 한 부분이고...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해 더 배려하는 삶이 어떤 건지 캐나다에서 더 느끼고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