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서운 숫자 39, You have a fever

by 김트루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제일 무서운 건 한 밤 중 무심코 만져본 아이의 이마가 굉장히 뜨거울 때이다.

그리고 체온계의 숫자가 39를 보였다면 자, 이제 시작이다.


단순 감기일까 아니면 유행 중인 독감일 것이냐.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육퇴하고 오늘 밤 맥주 한 잔 하고 푹 자려던 어리석은 중생은 급하게 약통에서 해열제를 꺼낸다.

뭐부터 먹이지.


덱시? 아세트?

고열이니까 덱시부터 먹이자.


아이가 잠에서 깨는 건 이제 무섭지 않다.

주방 불을 있는 대로 다 켜서 약병에 해열제를 용량에 맞게 부어주고 부리나케 아이 방으로 다시 간다.


아이를 안아 올리니 갓 꺼낸 군고구마처럼 매우 뜨겁다. 아주 잘 익어서 얼굴도 벌겋고 숨소리도 크게 들린다.


기록을 위해 약 먹이기 직전 다시 한번 체온을 재본다.

그리고 빨갛게 뜬 체온계 화면 속, 숫자 39를 잠시 멍하니 내려다본다.


이게 정말이야? 내가 잘못 잰 거 아닐까.

다시 한번. 그리고 또 한 번.

여전히 바뀌지 않는 숫자에 정신이 다시금 번쩍 든다.


오늘 자긴 글렀다.


"It's mommy. Let's have some medicine."

(잇츠 마미. 렛츠 해브 썸 메디슨.

엄마야. 약 좀 먹자.)


쌕쌕 거리며 자고 있는 아이를 살짝 일으켜 본다.

누웠던 자리가 이토록 뜨거울 정도로 아팠구나.


"Open your mouth."

(오픈 유얼 마우스.

입 벌려보자.)


저도 몸이 평소와 다른 걸 느낀 건지 일어나서는 군말 없이 약을 들이켠다.


"Just a little bit more."

(저스터 리를 빗 몰.

조금만 더.)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은

단 한 방울의 약도 남아있는 걸 허용하지 못한다.


"Good job. All done."

(굿 잡. 얼 던.

잘했어. 다 먹었다.)


이마 위에 열패치를 조심스레 올려놓는다.

자신과 정반대의 차갑고도 낯선 온도로 약간의 칭얼거림과 함께 몸을 둥그렇게 웅크리고는 다시 잠에 청하려고 한다.


얼마 안돼서 아이는 끙끙 거리는 신음소리와 엄마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방으로 뛰어 들어가 아이 옆에 누워서 엄마 손 보다 뜨거운 아이의 몸을 토닥이며

엄마가 옆에 왔음을 알려준다.


"It’s okay. Mommy’s here."

(잇츠 오케이. 마미스 히얼.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아가야, 긴 밤 편히 잘 수만 있다면 엄마가 대신 아파도 좋으니 너의 뜨거운 체온을 엄마에게 조금 나누어주렴.

오늘 밤은 유난히 더 길겠다.


그 긴 밤을 지나 아침이 왔을 때, 오늘보다는 조금은 나아진 얼굴로 다시 눈을 뜨길 바라며

엄마는 오늘도 너의 아픈 밤을 함께 견뎌본다.


tempImage3Hmr69.heic
tempImagezogEMt.heic


이전 07화지킬 앤 하이드가 따로 없네, What's w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