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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Jun 17. 2019

누구에게나 지옥 하나쯤은 있다. <갤버스턴>

브런치 무비 패스#8

*스포일러와 영화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의 후원을 받아 관람한 후기입니다.




아직은 어린 나이에 너무 빨리 세상을 알아버린 여자가 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자신과 닮은 그녀를 도와주고 싶은 한 남자가 있다.

우연이 만들어준 인연으로 둘은 함께 '갤버스턴'으로 향한다. 지옥 같은 삶 속, 그곳에서 잠시나마 낙원을 만난다. 그리고 한 번쯤 제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 친다.

마치 그들의 마지막 낙원인 것처럼.



지옥은 삶 그 자체이다.


누구나 낙원을 꿈꾼다. 고통과 고난의 연속인 현실을 벗어나 잠시만이라도 낙원을 맛보길 꿈꾼다. 하지만 낙원이란 건 참 애석하게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않다. 두드린다고 열리지도, 찾아다닌다고 발견하지도 못한다. 낙원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지옥이다.


그리고 이 지옥 같은 삶을 우연히 같이 걷게 된 두 명의 남녀가 있다.

로이(벤 포스터)는 살인 청부업자로 일하면서 자신의 보스를 위해 일을 하다 함정에 걸려 위험에 처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처럼 의자에 묶여 있는 록키(엘르 패닝)를 만난다.

자신을 처치하려는 상대들을 제압하고 록키를 구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그 후로 상황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 둘은 위험한 동행을 함께한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록키는 한눈에 봐도 평범한 소녀 같아 보이진 않는다. 로이에게 거침없이 다가가며 자신을 맡기려 하는 19살의 그녀는 매춘부다. 심지어 계부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3살짜리 딸인 티파니가 있다.

티파니에게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을 숨기고 언니로 살아가며 몸을 파는 록키는 이미 이 세상이 지옥이다. 그리고 로이와 갤버스턴으로 가던 중, 집으로 돌아가서 티파니를 데리고 나오며 계부를 총으로 쏴 죽인다. 한 번쯤은 제대로 살아보려고 과거의 지옥이란 지옥은 다 끊어버리려는 듯이 말이다.


누가 더 지옥 같은 삶을 사는지 대결이라도 하듯 로이는 병원에서 이미 얼마 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판정을 듣는다. 그리고 보스에게 배신당하고 쫓기는 몸으로 전전긍긍 살아간다. 한 때 사랑했던 여자와도 이별한 그에게 삶은 그냥 살아가는 것뿐이다. 목표도 의지도 희망도 없다. 그저 지금 자신에게 맞닥뜨린 이 두 명의 여자와 함께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뿐이다.


그렇게 로이와 로키는 저마다의 지옥을 안고 갤버스턴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시나마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자 낙원이란 문을 열어본다.



갤버스턴은 정말 낙원일까


<갤버스턴>은 실제 미국의 한 지명 이름이다. 그리고 영화 속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허리케인은 실제로 갤버스턴을 휘몰아쳤었다. 1900년 9월 8일 엄청난 허리케인으로 이미 폐허가 됐었고 당시 수많은 사상자를 불러일으켰다.  로이가 마지막으로 록키를 회상하는 장면의 배경도 역시 허리케인 한복판이다.

해안관광도시로 아름다운 뷰를 자랑하는 갤버스턴, 하지만 로이와 록키에게는 어쩌면 아름다운 바다보단 모든 걸 다 쓸어가는 허리케인이 더 익숙해 보인다.


마치 강풍의 무게에 버티기 힘든 사람들처럼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새롭게 시작해보려고 한껏 멋을 내보고 새로운 장소에도 가보지만 갤버스턴 안에서 꼼짝 못 한다. 정확히는 그들의 처절한 삶 가운데서 더 행복해지지 못한다.

로이가 보스의 부패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제시한 어마어마한 돈을 록키와 그녀의 딸을 위해 쓰고자 한다. 그런 로이에게 고마워하며 그를 전적으로 믿어가는 록키. 이렇게 갤버스턴에서 그들은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역시나 행복은 그들의 편이 아니다.


낙원일 것 같았던 갤버스턴에서 그들은 다시 한번 지옥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낙원을 꿈꾼다.


사람들은 살아간다.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점점 내가 살아가는 건지 버텨내는 건지 점차 헷갈리는 순간이 온다. 니체가 말했다. 산다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고 살아남는 것은 그 고통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일이라고.


로이가 록키에게 한 말이 있다. 아무리 지옥 같은 삶을 살았어도 그래도 살만하지 않냐며. 지켜내야 할 것이 있다면 아직 살아볼 만한 인생이지 않냐며 위로한다.

그렇게 우리는 지옥 같은 삶 속에서도 각자가 원하는 이상을 꿈꾸며 살아가 보려고 한다. 록키가 딸을 내버려두고 매춘을 하며 삶에 대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때 로이를 만나 위로를 받고 제대로 한 번 살아보려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에게나 작은 위로와 말 한마디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누군가에게는 다른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낙원이 될 수도 있다. 낙원은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찾기 힘든 곳도 아닐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더 낙원을 꿈꾸나 보다. 잡힐 듯 잡히지 않아서.



지옥 속에서도 꽃은 핀다.


로이는 결국 보스에게 자신의 위치가 탄로 나 붙잡힌다. 그 과정에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끔찍한 일을 겪게 된다. 누군가의 부재, 지켜내려고 했던 대상의 죽음은 더 이상 그에게 어떠한 희망도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딸인 티파니를 위해 보스의 부패를 고발하지 않고 그대로 20년의 형을 살고 감옥에서 나온다.


그리고 로이는 철저히 혼자 남겨진다. 그리고 그를 찾아온 티파니. 자신은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그녀에게 로이는 진실을 말한다. 그리고 넌 절대 버림받은 게 아니라고 말해준다.

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그 모든 순간들과 결정들이 있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행복했었다고. 그리고 이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고 말해준다.


지옥 속에서도 꽃은 핀다.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지켜야 할 것, 이뤄내 보고 싶은 것,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당신 곁에 존재한다면 어쩌면 지옥 속에서도 꽃 한 송이 정도는 피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게 그런 걸지도 모른다. 행복해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부단히 도 노력하기에 살아가는 것.

당신도 나도 지옥 같은 삶 속에서도 오늘 하루를 노력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미 행복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끝까지 제대로 한 번 살아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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