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트루 Aug 28. 2019

결국 우리는 다시 아이가 된다

부모님과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5층짜리 건물을 덮는 큰 현수막이 하나 펄럭인다. 도저히 안 보고는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큼지막하게 무언가 쓰여있다.


'축 어르신 유치원 개원'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다시 아이가 된다.



엄마가 냄비를 태운 날, 가족들은 다들 눈칫밥을 먹느라 이미 저녁을 먹기도 전에 배가 한껏 불러있었다. 계속해서 엄마를 위로하고 갖은 이유를 들며 다독여도 소용이 없었다. 깜빡 잊은 냄비 밑이 시꺼멓게 탄 것처럼 엄마 마음도 이미 시꺼멓게 타들어갔나 보다.

"늙으면 다 그런가. 자꾸 요새 깜빡깜빡한다."


애써 덤덤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속아 무기력한 엄마의 표정을 지나칠 뻔했다.


"뭘 늙으면 그래. 나도 요새 핸드폰 어디다 뒀는지 맨날 찾아. 바빠서 깜빡한 거지."


나도 애써 덤덤하게 말해본다.

느끼곤 있었다. 부모님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시간이 흐를수록 두 분이 점점 변해간다는 걸.
산처럼 커 보이던 아빠는 어느새 나와 얼추 눈높이도 맞았다. 엄마는 이렇게 작았나 싶을 정도로 내 품 안에 들어왔다. 나를 안아주고 업어주던 엄마를 이제는 내가 들어 올린다. 동화책을 읽어주던 아빠를 대신해 이제는 내가 작은 글씨의 문자를 읽어준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느려진 걸음걸이와 이젠 손 쓸 수도 없이 많아진 흰머리, 결혼 한 딸의 집보다 더 자주 드나드는 병원.


모든 것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있다.



그래서인가. 자식들은 이상하게 커갈수록 부모님을 챙기게 된다. 우리는 이제 그들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슈퍼맨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이라도 보내는 날엔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이것저것 다 챙겨주게 된다. 혹 공항에서 게이트는 못 찾는 건 아닌지, 입국 심사서는 제대로 쓸지, 도착해서 밥은 잘 먹을지, 숙소는 제대로 갈지. 뭐하나 걱정이 안 되는 게 없다.

어릴 적 소풍날이면 내 도시락을 챙겨주던 엄마의 끼니를 이제는 내가 챙기고, 날 어깨에 무등 태워주던 아빠를 이제는 내가 내 어깨를 내어주며 부축한다.


"밥은 먹었어?" 


하루에 꼭 묻는 끼니 걱정.


"요새 잠은 잘 자?"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엄마 걱정.


"허리는 좀 어때? 병원 다녀왔어?" 


수술 후에도 여전히 아픈 아빠 걱정.


이제는 내가 그들의 안부와 건강을 먼저 챙긴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위치가 바뀌어간다.



결국 우리는 다시 아이가 되어간다. 기억 못 하는 짧은 유년시절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우리는 그렇게 다시 아이가 되어간다. 막을 수는 없지만 굳이 막고 싶지도 않다. 다 돌고 도는 인생의 물레바퀴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나를 돌봐주었듯이 이제는 내가 그들을 돌봐줄 차례가 온 거라면 언제든 두 팔 벌려 환영이다.


그래서 그런가. 부모님께 드리는 안부 전화가 내 일상이 되고, 내가 보고 싶다는 부모님의 투정이 귀엽게 느껴지는 이유가.

 

난 조금 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나물 반찬, 너만 상하는 게 아니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