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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연구생활 Dec 29. 2020

현대판 노예, 의식주의 분업화

feat. 첨단산업


 현재 인류는 전래 없는 역병 창궐에 의한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전에 많은 역병의 기록과 자연재해들이 있었지만, 현재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며 잃을게 많이 생긴 인류에게 더 뼈저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점점 지식의 격차는 벌어지고 있으며, 산업의 발달은 더 이상 우리가 일상처럼 해오던 것을들 하지 않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전문화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더 이상 빨래를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설거지, 청소를 하지 않아도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막대한 량의 부를 가진 전문가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고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바로 조선시대에 한번 찐하게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계급이 나뉘고 그들마다 각기 할 수 있는 일이 나누어져 있었으며, 먹을 수 있고 입을 수 있는 것들이 계급별로 나 뉘어 있었죠. 지금은 조선시대보다 더 심각하게 그 차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조선시대에서 차별은 지금에 차별에 비하면 별것도 아닙니다.


왜냐고요?


 그때는 의식주를 해결할만한 충분한 재화가 존재하지 않아 승자독식으로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 몽땅 가져갔기 때문에 삶이 팍팍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굶어 죽을 걱정은 크게 하지 않습니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인해 먹고살 만한 음식이 조선시대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의류 산업과 건축산업의 발달 또한 눈부신 발전을 이륙하였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기초 생활수준이 삶을 위험하는 수준을 탈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옆 사람을 보며 생사의 기로에 놓이며 악착같이 살아야겠다고 느끼나요? 아니면 부럽다고 느끼나요? 후자일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배불리 먹는 걸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한 잠을 잘 수 있는 곳이 있어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좋은 걸 그리고 비싼 걸 부러워하고 따뜻한 방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닌 그 집이 어디에 (수도권 or 서울) 있는지를 부러워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눈과 귀가 다 어두워져 버렸지요. 지금 돌이켜 바라봤을 때, 조선시대보다 더 잔인한 삶이 우리 대한민국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말이죠.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항상 일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해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죠. 그러나 그러한 전문성이 다른 사람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조선시대의 노비와 다를 게 없는 삶이란 말이죠. 우리는 누군가의 빨래와 설거지 그리고 음식을 해다 줍니다. 그 대가로 재화를 제공받죠.


 우리나라는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하는 자영업 비율이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심지어 선진국 대비도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데 2018년 기준 우리나라는 25%를 기록하였습니다. (EU 16%, 일본 10%, 미국 6%) 누군가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반대로 재화는 갑자기 땅에서 솟거나 하늘에서 쏟아지지 않습니다. 재화를 생산해 내야 합니다. 즉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인데, 우리나라의 제조업은 점점 높은 임금 때문에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기 때문에 많이 축소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고부가가치 산업밖에 남지 않습니다. 연구&개발 그리고 교육, 플랫폼 산업 등 사람의 노동력보다 한 차원 높은 사업에 모든 재화 생산이 쏠려있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AI의 발전 때문에 그렇지요.


그렇다면 25%의 사람들은 무얼 먹고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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