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된장에 스며든 그리운 추억들
전라북도 진안. 우리 외할머니 댁이다. 할머니 댁은 시골이라 마당도 있고 옥상도 있다. 바깥계단으로 할머니 댁 옥상으로 올라가면 다양한 크기의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항아리들은 할머니가 매우 아끼는 보물들이다. 어릴 적 햇볕 쨍쨍한 여름의 어느 날 호기심에 옥상에 올라갔다가 항아리를 처음 보게 되었다. 나는 항아리가 무엇을 담고 있을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벽돌을 내리고 뚜껑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마자 나는 뚜껑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바로 고약한 냄새 때문이였다. 할머니가 아끼는 항아리들 안에는 모두 된장이 가뜩 들어있었다. 아주 고약한 냄새였다. 그때 나는 할머니된장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 같다.
우리가족이 더운 여름날 할머니 댁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물놀이를 위해서였다. 할머니 댁 근처의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면 얼마나 시원하고 재밌는지 모른다.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할머니 댁으로 다시 향할 때 할머니 댁 마당에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난다. 언제 맡더라도 나는 할머니 된장찌개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 저녁노을과 어우러진 할머니 된장찌개 냄새는 너무 구수하고 좋았다. 항아리에서 나던 고약한 된장냄새와는 너무 다른 냄새였다. 이때부터 할머니 된장냄새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할머니는 된장을 풀고 거기에 직접 잡으신 싱싱한 우렁과 호박을 큼지막하게 썰어 넣어 매우 간단하게 된장찌개를 요리해주셨다. 많은 재료도 들어가 있지 않은 묽은 된장찌개가 얼마나 맛있던지. 물놀이 후 얼어있던 나의 몸을 따스히 녹여주었다. 아직 할머니 된장찌개만큼 맛있는 된장찌개는 먹어본 적이 없다. 현재 시중에 파는 된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할머니의 사랑과 정성의 손맛이 듬뿍 담긴 까닭일까.
어둡고 더운 밤에 할머니 댁 옥상에 올라가 문득 달빛에 반짝이는 여러 장독대들을 보면 30년된 장독대들이 나에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할머니의 사랑을 담은 특별한 된장이 구수하게 발효되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줘” 라고.
어느 날은 할머니께 여쭤봤다. “할머니, 할머니 된장은 왜 이렇게 맛있어?”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해주셨다. “그 된장이 몇 살짜리 된장인데 당연히 맛있지” 나는 된장을 사람처럼 표현한 할머니 말씀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할머니는 된장을 만들어 발효시키는데 까지 수년이 걸렸다는 것을 의미한 것 이였다. 그렇기에 할머니는 된장이 다 떨어져 갈 때 쯤 다시 콩을 빻고 메주를 만들고 메주를 몇 달간 말린 뒤 된장을 담그신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 댁에 가면 항상 할머니의 굽은 허리만큼이나 구부정하게 메주들이 걸려있었다.
할머니 댁에 일주일 간 머무르고 다시 서울로 향할 때 할머니는 항상 삼촌,이모,엄마에게 차례로 큰 검정 비닐봉지를 건네주셨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탈 때 차안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는데 나는 그때서야 그 봉지 안에 된장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차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이 너무 싫었지만 할머니 된장의 가치를 알게 된 이후로는 차안에 베어든 구수한 냄새가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집에 와서 할머니 된장을 먹을 때에도 할머니의 구수한 인상이 떠오름과 동시에 할머니와 함께 된장을 먹는 느낌이 든다.
할머니가 된장을 수년간 싸주시면서 우리 할머니의 주름살도 구수하고 진하게 발효된 된장처럼 진해져갔다. 그리고 몇 년 후 할머니는 더 이상 가족들에게 된장을 만들어 주지 못하게 되었다. 평생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할머니의 된장을 이제 다시는 맛보지 못한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할머니 장례식을 마치고 할머니 댁에 갔을 때 가족들은 또 한 번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는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을 위해 옥상의 항아리에 한 단지씩 된장을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우리 할머니는 자식들이 7명이나 있어서 된장을 한번 만들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식들을 사랑하는 만큼 아주 큰 항아리에 된장을 수북이 담가놓으셨다. 할머니는 할머니가 이제 더 이상 된장을 담그지 못할 거라고 예상하셨던 걸까. 할머니의 힘든 몸상태를 제때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너무 저린다. 몇 년 전부터 할머니가 준비해 놓으셨다는 생각에 할머니를 더 많이 찾아뵙지 못한 것이 너무 죄송스러웠다.
아직도 할머니의 된장은 우리집에 남아있다. 된장을 먹을 때마다 할머니 생각을 하며 매우 아껴 먹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할머니 된장을 다 먹으면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추억 또한 같이 잊혀 질까봐 너무 두렵다.
내가 할머니의 된장으로 만든 된장찌개를 가장 마지막으로 먹은 것은 나의 수능 날 이였다. 친구들은 냄새 때문에 수능 날에는 된장찌개를 아무도 먹지 않았지만 나는 먹어야 할 것 같았고 맛있게 먹었다. 찌개만 먹었을 뿐인데 할머니가 나를 응원해 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곧 떨리는 마음이 진정되었다. 찌개 한 숟갈에 담겨있는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나를 위로하는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능이 끝나자마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아직 할머니께 된장찌개를 잘 먹었다고 인사드리지 못했다. 나에겐 힘이 됐고 내 몸을 구수히 채워줬던 할머니 된장찌개 덕분에 수능을 잘 볼 수 있었다고 할머니께 꼭 말하고 싶다.
이제는 비어있고 다시는 채워지지 않을 우리 할머니의 된장 장독대. 그 안에 가득히 들어있던 구더기가 쓴 된장이 문득문득 그리워진다. 지금도 가끔씩 마음이 공허 할 때면 할머니가 정성을 담아 가뜩 담아 준 된장 한 스푼 맑게 풀어 맑은 된장국을 먹곤 한다. 그 된장국을 먹고 나면 공허했던 마음이 할머니의 사랑으로 채워지는 느낌이고 따뜻해진다. 지금 남아있는 된장은 할머니를 향한 나의 그리움이 더해져서 더욱이 진한 맛을 내는 것 같다. (내 느낌일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 엄마는 할머니 된장을 보면 방 한 칸 에서 작은 냄비에 끓인 된장찌개에 삼촌 이모 엄마가 서로의 숟가락을 넣으며 다퉜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한다. 특히 엄마의 말씀으로는 된장찌개 중에서도 시래기를 넣고 끓인 시래기 된장찌개가 가장 인기가 많아서 먹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나는 한번도 먹어보지 못해서 아쉽고 궁금할 따름이다. 아무래도 할머니 된장에는 나뿐만 아니라 엄마의 추억도 많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곰취에 밥과 할머니된장을 싸서 먹으면 정말 맛있다. 할머니가 어렸을 적 배고프고 먹을 것이 없을 때 먹던 방법을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근데 나는 그냥 새끼손가락으로 푹 찍어 먹어도 할머니 된장은 정말 맛있다. 시골본연의 된장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밤은 아무래도 할머니의 된장을 먹어야겠다. 할머니의 손맛이 너무나도 그리운 밤이다.
우리가족은 된장찌개를 끓일 때마다 구수한 추억에 젖어든다.
어렸을 적 할머니 댁 근처 계곡에서 놀다가 바위에 긁혔을 때 할머니가 약을 발라주신다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약 대신 된장을 가지고 오셨다. 할머니께 여쭤보니 피부에 상처가 났을 때 된장을 바르면 낫는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상처가 잘 아물었다. 할머니가 사랑을 담아 만든 된장을 호호 불며 발라주셔서 더 빨리 나은 것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나름대로 근거 있는 처방 이였다. 미신이라고만 믿었는데 할머니는 어떻게 아셨을까. 아마 증조할머니도 할머니가 다쳤을 때 된장으로 치료해 주신 것 같다. 어렸을 때는 할머니가 의사인 줄만 알았다.
체 했을 때에도 맑은 된장국을 한 사발 먹고 나면 속이 가라앉곤 했다. 이렇듯 할머니 된장은 나에게 있어서 최고인 사랑의 치료제이자 위안을 주는 음식이다. 몸에 상처가 났을 때 할머니가 그립다면 아직도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 된장을 상처에 발라보곤 한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수록 상처는 더 금방 아문다. 된장이 발효될수록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데 아무래도 할머니 된장은 나의 그리움으로 발효되나 보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날 할머니가 구워주시는 된장떡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단순히 부침개처럼 보이는데 할머니는 된장떡이라고 알려주셨다. 된장떡은 된장을 물에 풀어 밀가루와 매운 고추를 넣어 부치기만 하면 되는데 간단한 조리법이 무색하게 너무 맛있다. 할머니 댁에서 바깥 산들의 경치를 보며 먹는 된장떡은 제일 맛있고 그 순간 나의 최고의 힐링이 되었다. 지금은 많이 만들어 먹지 않는 된장떡. 친구들은 된장떡이 무엇인지 모른다. 할머니 시대에만 먹었던 음식인가. 고소하고 짭짤하지만 할머니 된장향이 듬뿍 나는 맛이다. 어릴 적 내가 엄마한테 꾸지람을 듣고 슬프게 울 때면 할머니는 나를 달래고 된장떡을 구워 입속에 넣어주었다. 그러면 나는 눈물을 뚝 그쳤다.
할머니 된장은 나와 엄마에게는 일상 속에 베어든 음식이다.
된장은 현재에는 매우 구하기 쉬운 음식일 수 있지만 우리 할머니 된장은 아니다.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된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할머니 손맛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매우 드문, 아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음식이다.
할머니가 보고 싶고 그리울 때 먹으면 더 깊게 발효된 된장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나에게 지금 남은 할머니 된장은 그리움으로 계속 발효가 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