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진시황이나 이집트의 파라오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영원한 삶 혹은 아주 긴 삶을 원하는 인간의 욕구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현재 실리콘밸리에서는 현대의 과학 기술을 활용해 영생에 도전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노화와 죽음이라는 운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실리콘밸리의 부자들은 IT기술, 뇌과학, 분자생물학, 유전공학, 나노기술에 부를 투입해 영생 기술을 확보하려고 노력 중이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삶, 그런데 그것은 행복일까? 어쩌면 불행일까? 하긴,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게 여겨질 것이다. 삶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영원한 삶은 행복일 것이고, 삶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영원한 삶은 불행일 테니까.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죽지 않으려 애쓰고, 그래서 정말 아주 오래 살게 된다면, 생태계 차원에서는 꼭 환영할 만한 일일 수 없을 것 같다. 현재도 80억 명이 넘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곳곳을 점령하고 곧 100억 명의 인구를 바라보고 있는데, 우리가 그토록 오래 살며 열심히 생존하고 번식한다면 다른 생명체들은 터전을 잃어버릴 테니까 말이다. 생태계가 파괴된 상황이 온다면,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더 큰 고통을 겪게되지 않을까?
죽음을 피하기보다는 현명하게 죽는 법을 배우고 싶다. 죽음을 피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과도한 집착처럼 여겨져서 오히려 씁쓸하다. 상상해 보라. 죽을 수밖에 없는데, 애써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존재의 마지막을. 집착은 무지와 맹목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수용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것은 죽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기꺼이 자기 앞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는 그 자체로 존엄하게 여겨진다.
38억 년 전 첫 생명체가 만들어진 이래, 지구를 살다 간 무수한 생명체들이 겪은 생의 끝. 그것은 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순간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는 없다. 소풍을 다녀와 낮잠에 드는 아이처럼 가벼운 마음일 수 있다면, 담담히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처럼 평정히 마지막을 겪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