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매클린톡과 마리 퀴리를 떠올리며
어린 시절부터 나는 과학과 과학자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자들은 호기심이 많아 보였다. 대상에 집중해 실험하고 탐구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은 흥미로운 모험처럼 보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인지는 몰라도, 어릴 적 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며 흥미가 점점 예술로 기울면서, 나는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래도 문득문득, 일 년에 한두 권 정도의 과학 서적을 읽었다. 논리적이면서도 체계적인 과학적 방법론과 우주와 자연 현상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과학의 세계는 일상적 시각을 벗어나 내 존재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다.
과학자들의 생애와 관련 에피소드를 찾아보는 것도 유익한 지적 자극이다. 냉철해 보이지만 그들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은 인간임을 확인하며 친근감을 느끼기도 하고, 과학자들을 통해 내게도 존재하는 호기심, 탐구심, 과학적 성향을 일깨운다.
무엇보다 내가 선호하는 것은 과학 자체의 태도였다. 편견 없이 대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실험하며, 검증하여 무언가를 발견해 내는 논리적이면서도 창의적인 태도. 그 태도는 내게 묘한 안정감을 주었고, 대상을 정확하고 깊이 이해하려는 사려 깊음으로 느껴졌다.
오늘 오전, 커피숍에서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흠모하는 여성 과학자 두 사람을 떠올렸다. 바바라 매클린톡과 마리 퀴리.
평생 옥수수 유전자를 연구한 매클린톡은, 특정 유전자가 옥수수 안에서 서로 다른 위치로 이동한다는 현상을 처음 관찰하고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나는 그녀의 일생을 담은 책, 『생명의 느낌』을 읽고 깊이 반했다. 맥클린톡은 자연과 생명을 진심으로 사랑한 과학자였고, 연구를 마치 예술처럼 수행했다. 직관을 총동원하여 마치 자신이 옥수수가 된 듯 옥수수를 이해하며 연구하는 모습은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독창적일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매클린톡의 연구 과정을 통해 과학적 태도와 직관이 융합될 때, 인간은 특별한 몰입의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무엇보다 생명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연구 속에서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마리 퀴리는 처음으로 본받고 싶다고 생각한 인물이었다. 어린 시절 읽은 그녀의 전기 때문이었다. 그림책 속에서 마리 퀴리는 놀라운 강인함을 보여주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영양실조를 격는 극도의 가난 속에서도 공부에 몰입했고, 당시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넘어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학자로서 연구를 완성해 나갔다. 라듐을 발견한 후 연구와 추출 방법에 대해 특허를 내지 않고 무료로 공개한 점은 인류와 사회에 대한 깊은 기여로 다가왔다.
오후에 접어들 때까지 나는 매클린톡과 마리 퀴리를 떠올렸다. 전기를 읽었던 당시의 감동이 다시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비록 과학자는 아니지만, 과학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경험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호기심으로 자신과 세상을 탐구하고, 섬세한 관찰과 실험, 검증의 과정을 거쳐 정확도를 높이고, 작은 발견이라도 그것을 세상과 나누는.
과학자는 아니지만, 태도만큼은 과학자를 닮아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