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의 의식은 생명을 위해 진화해 왔다. 신체의 에너지 예산을 관리하고, 움직임을 조율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등 의식의 모든 기능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생존과 유지를 위해 발달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는 일은 생명체인 우리의 본성이다.
하지만 한때는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입밖에 꺼내기 부끄러웠다. 나보다 남을 사랑하는 태도가 타인의 미움을 사지 않을 것 같았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라고 오해받을까봐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태도는, 결국 타인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확장된다는 것을. 내 안의 다양한 모습을 인정할수록, 타인의 다름 또한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나에게 나만의 맥락이 있듯이,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맥락이 있고, 그들 자신도 자신을 돌보며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면 타인에 대한 존중은 자연스럽게 생긴다.
건강한 자기애는 존재의 기반이다. 자기 생명에 대한 존엄과 경의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집착하고 매몰되는 자기 집착과는 전혀 다르다. 자기 집착은 겉으로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신을 통제하려는 시도이다. '이래야만 한다.' '저래야 가치 있다.'는 차가운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대며, 지금 이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열과 갈등의 상태. 그 밑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지금의 나는 불완전하고, 충분한 가치가 없다.'는 불안. 그래서 '완벽하고 이상적인 나'를 만들어내고 그 이상에 집착한다. 지금의 나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흠집낸다.
집착의 본질은 결과를 통제하려는 것이다. "나는 더 완벽해야 해."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와야 해." 하지만 현실에서는 결과가 통제되지 않을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때문에, 집착은 내적 갈등으로 이어진다. 편도체는 통제되지 않을 수 있는 불확실성을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경계 태세를 취해버린다.
그 결과, 자신에게 몰두하면서도 자신과 연결되지 못한 채, 갈등상태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내는 역설에 빠지게 된다.
반면, 건강한 자기 사랑은 통제가 아니라, 이해이다. 자신을 억지로 조작하거나 바꾸려는 태도를 놓아버리는 것이다. 결과에 집착하는 대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관찰하고 이해하며 유한한 시간 속에서 자신과 다정하게 연결되는 것이다. 지금의 자신이 싫어서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좋은 습관을 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품은 채 조금씩 성장해 간다.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나의 속도를 존중한다. 외부의 시선보다 자신의 내적 진실을 더 신중히 대한다. 자신에 대한 돌봄과 배려는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확장되어, 존중과 평화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자기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존중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태도이며, 뇌를 평화롭게 조율하는 의식적 삶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