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라이팅에 대한 환상

Good enough writing

by 옥빛 경


"완벽주의자는 이미 끝낸 일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느라 개미지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앞으로의 시대에서 지향해야 할 것은 '완벽'이 아니라 '완료'다.

눈 앞의 업무를 빠르게 끝내고 나면 다음으로 넘어가라.

이미 끝난 일은 돌아보지 마라.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려면 더더욱 '완료주의자'가 되어야한다."

<생각 망치_호리에 다카후미>



당장 당신이 영어권 국가로 수출해야하는 글로벌 앱, 서비스 혹은 상품을 번역한다고 생각해보자.

이 때 소스언어는 한국어, 타겟언어는 영어다.


여기서 소스언어는 번역이나 로컬라이제이션 작업에서 기준이 되는 원래의 언어다.

만약 영어 원문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경우 소스언어는 영어, 타겟언어는 한국어가 된다. 어느 국가에 진출할 것이고, 어떤 모국어를 사용하는 상품 기획자(혹은 프로덕트 디자이너, 프로덕트 플래너 등 자유롭게 불리는게 이 업계 특징같다.)가 썼는지에 따라 소스언어와 타겟언어는 달라진다.


나는 현재 '여러' 개의 SaaS 서비스의 소스언어인 한국어 감수를 맡고 있고, (보안은 중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 개로 표현하겠다. 회사를 존중하며 다니는 편이다.) '여러' 기획자와 감수를 하다보니, 3C원칙이라는 '일관성,간결성,정확성‘이 지켜지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UX 라이터는 담당하는 서비스의 성격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단일 앱 & B2C와는 달리 트리플멀티로 일해야한다.) 서비스 국가도 '여러'개인 글로벌 상품인지라 로컬라이제이션까지 진행하고 있는데,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한국어 리소스를 줄이는 것이 우선 순위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시작한 것이 AI를 활용한 UX 라이팅 기획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번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제 내용이 아니라 태도임을 밝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과 베이스에 직군 변경으로 관련 지식도 전무한 상황이었던 내가 생성형 AI의 작동 원리나 LLM에 대한 기술 지식 등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까?

아니다.

그걸 왜 해야하는가?

내가 의도한 결과값이 잘 뽑혔는지에만 집중하면 될 일이다.


역사와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허점까지 파헤쳐서 생성형 AI의 장인이 되고말겠단 식의 태도는 '성실한 훈련과 기초만이 성공을 뒷받침한다'는 전통적인 고정관념의 함정이다.


호리에 다카후미의 생각 망치에 나오는 깊이 공감하여 무려 밑줄 친 대목이 있어서 공유한다.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착각

예전에 엑스(트위터)에 '초밥 장인이 되려고 몇 년씩 수련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글을 올렸다가 크게 논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가 단지 달걀말이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몇 년씩이나 시간을 낭비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략)

프로그래머의 세계에는 "굳이 바퀴를 다시 발명하지마라Don‘t reinvent the wheel"는 유명한 말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미 바퀴라는 편리한 도구가 존재하는데, 굳이 처음부터 자신의 힘으로 바퀴를 개발하는 것 만큼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일은 없다는 의미다.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이 되어야 뭔가를 할 수있다는 착각과 망설임에 빠져있었다면, 여전히 ’공부‘를 핑계로 시작조차하지 못했을 것이다.


금년 상반기 업무 키워드는 효율화와 자동화였고, 이것에만 집중했다. 갓 입학한 대학교 새내기처럼 전공 지식을 먼저 배우는 게 아니라, 일단 뭐라도 시작해서 부딪히다보면 필요한 지식은 알아서 따라온다.


그래서 맨땅에 헤딩식으로 문헌과 히스토리 자료를 찾아 데이터 베이스를 직접 만들고 프롬프팅을 쥐어짜내 테스트를 돌렸고, '생성형 AI를 활용한 UX 라이팅 시스템'이라는 거창하지만 나름 쓸만한 뭔가를 만들어냈다.그리고 이 주제로 무려 발표를 했다. 어찌저찌 차후 잘 디벨롭할 것이라는 포부와 함께.



꼼꼼함이 반드시 필요하고 미덕이 되는 분야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기업의 경우 효율성이 제 1 원칙이다. 효율이 곧 돈이기 때문에. 본인이 몸담고 있는 사기업의 목표가 이윤 창출이라는 것을 잊으면 곤란하다.

(반대로 내 삶의 가치관이 효율 뿐이라면 그것 또한 곤란하다. '정성을 다함'이라는 노력은 본인의 여가 혹은 자아를 이루는 관계에서 찾아볼 일이다. 아무리 내가 효율 인간이라고 해도 그것에 만큼은 진중해질 필요가 있다.)


평균수명 백세시대에 가능한 오랫동안 경제 활동 인구로 존재하고 싶다면 '완벽'보다는 '완료'에 가치를 두는 편이 정신 건강에도 좋다.


그러기 위해서 이미 오픈AI가 잘 만들어 놓은 Wheel 인 AI도구를 활용하고, 다음 과제를 위한 빠른 '완료'를 위해 인간의 지적 능력을 이용하여 결과값을 '잘' 선별해 사용하면 될 일이다.


완료한 결과물이 별로라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AI가 내가 할일을 다하게끔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고야 말겠어!'는 내 맘 속 장기 비전으로 잡으면 된다. 현실적으로 60%, 혹은 50% 라도 능률이 올랐다고 판단된다면 훌륭한 성과다. AI가 실수를 하든 할루시네이션을 하든, 이번 phase에서 기대했던 그만큼의 효용만 생각하면 된다는 말이다.


허점과 피드백은 겸허하게, 하지만 심각하지는 않게 받아들이면 된다. 별로라는 말을 들으면(공격받는 것을 두려워하지말자. 최소한 내가 걔보단 더 잘 안다.)

"헉스, 저 진짜 무용지물 쓰레기를 만들었네요."라고 과하게 송구스러워할 필요도 없다.

"네, 그렇네요, 그래도 안 쓰면 손해죠."라고 하면 된다.(사실이니까.)

오히려 좋다. 넥스트 과제가 생겼으니까. 지적이 있어야 보완도 있고 성장도 있다.


이 태도로 매사를 대하면 엉성하더라도 시작을 한다. 참고로 타격 운동은 한 번도 해본적 없지만, 최근 복싱을 시작했다.


답 없는 과제를 하면서 '이게 될까? 이게 되네!'를 여러번 경험하면 자신감이 붙는다.


완벽함보다 ‘완료함’에 방점을 두면

사실은 치열하게 굴러서 얻은 결과물인데도,

막상 구르는 과정에서 별로 고통받지 않고 일이 잘 풀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최소 노력 최대 결과 지향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 기분 째짐 max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성취감과 칭찬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한동안 이 도취감에 빠져 살다가, 또 느슨해 질 때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과제를 찾아나서는 (미친)짓의 굴레를

멋드러지게 표현하면 '커리어 성장'아닐까.


다음 글은 프로젝트 회고 겸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대해 가능한 선에서 자세히 풀어볼 생각이다.

모든 월봉 받는 직장인은 경력기술서 혹은 포트폴리오 업데이트를 게을리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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