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교사] 산의 본모습은 눈이 내려앉아야 보인다

속초에서, 사서교사로 피어나다

by 진영

23년 1월,

중등교사 임용 최종 면접을 마친 나는

춘천 소양중학교를 박차고 나와

곧바로 속초행 버스를 탔다.

기나긴 전투를 마친 장군이 느낄법한 허탈함, 그리고

면접 중 느낀 나의 부족함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당장 털어내고 싶었고,

무엇이든 아무 말 없이 받아주는 바다가 있는 곳,

속초가 떠올랐을 뿐이었다.


버스 차창 밖으로 시원하게 휘몰아치는

겨울 바다가 보였다.

육지 사람인 나에겐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나는 바다가 뚫릴 듯이 고집스럽게 바라보며,

마음속 어수선함을 가라앉히는

고요한 짙푸름을 가슴 깊이 새겼다.




혼자 다다른 속초는 낯설지만 낯설지 않았다.

강원도니까.


원주 토박이인 나에게 강원도는 익숙한 고향이고,

어딘가로 떠났다면 다시 돌아와야 할 집이다.

그러나 터미널 밖을 나온 순간, 속초는 낯설어졌다.

눈에 닿는 모든 곳이 새하얬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내가 속초로 떠났던 그날은 속초에 대폭설이 내린 직후였다.

제설차와 포크레인이 지나간 차도는 정리되어 있었지만,

인도는 그렇지 않았다.

인도를 가로막고 있는 설산처럼 거대한 눈 언덕들이

지난 폭설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본 적 없는 낯선 얼굴의 내 고향을 보고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바짓가랑이를 눈으로 적시며 새하얀 설국으로 나아갔다.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밟으며 청초호에 도착했다.

동해와 이어진 이 석호는 민물 새와 바닷새가 공존하고 있었다.

물 위에 동동 떠 있는 물닭과 흰죽지들.

제법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도망가지 않았다.

고고한 자태로 물 위를 유영하다가,

어느 순간 물속으로 머리를 처박고는

보송한 엉덩이를 물 위로 내밀고 있는 새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물아래에서 힘껏 물을 저어내는 발짓과

먹이를 사냥하는 필사적인 움직임을 생각했다.

자기 몸뚱어리 하나를 건사하며

한 마리 몫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그들에게

대견함과 부러움을 느꼈다.


스스로를 책임지고 자립할 수 있는,

한 사람 몫의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을

‘성인(成人)’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를 넘어 타인과 세상의 몫까지 책임지려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 하나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나는,

언제쯤 세상의 한 부분을 책임질 수 있을지 체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거센 바닷바람에 손발이 아린 추위를 뚫고

근처 식당에 들어가 오징어순대를 포장해 나왔다.

그리고 오늘을 마무리할 척산온천장에 도착했다.

흐르는 물에 몸을 닦아낸 후,

살갗이 데일 듯 뜨거운 온천물에 조심스럽게 발을 담그고

뜨거움에 몸서리치며 온몸을 온천탕 안으로 구겨 넣었다.


타일에 반사되어 푸르게 보이는 온천물을 바라보며,

‘오늘은 여러 물에 신세를 졌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아 있는 모든 시름과 생각을

온천물에 녹이고 흘려보냈다.


목욕을 끝낸 후,

텅 빈 듯이 노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들어와

포장해 온 오징어순대를 하나씩 꺼내 먹었다.

텅 빈 몸이 기분 좋은 포만감으로 채워졌다.

오징어순대를 다 먹은 후,

뜨끈한 온돌방에 누워 솜이불을 목 끝까지 덮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외국 영화의 대사를 들으며

스르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좋은 무언가로 채워져 있을

딱 좋은 온도의 내 몸을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원주행 버스의 창밖으로

눈 덮인 설악산이 보였다.

눈이 빼곡히 내려앉은 새하얀 땅과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든 검은 나무가

대조를 이루며 두 개의 층을 이뤘다.

봄, 여름, 가을에는

무성한 이파리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산의 모양을,

내려앉은 하얀 눈 이불을 따라

눈으로 훑어 내려갈 수 있었다.


가혹한 겨울로 인해 벌거벗은 산을 보며,

산의 본모습은 눈이 내려앉아야 비로소 보인다

는 사실을 알았다.

삶의 냉혹함에

어설프게 입고 있던 이파리들은

떨어져 나가고 결국,

별 볼 일 없는 초라한 자신만 남게 된다.


그러나 언젠가 눈은 녹아 물이 되겠지.

떨어진 이파리는 거름이 되겠지.

땅은 그 물과 거름을 머금고,

땅을 감싸 쥔 나무는

뻗어낸 나뭇가지마다 양분을 올려 보내겠지.

그리고 마침내 다시 잎을 피워 내겠지.

피워 낸 잎을 모조리 떨구고

차가운 겨울바람에 혼자가 되는 날이 오더라도

다시 피어날 나를 생각한다면,

이 부끄러움 또한

지난날에 대한 반추와 성찰의 시간이 되어

또 다른 이파리가 되리라.


새순이 돋아난 푸른 초봄의 설악산을

머릿속에 그려보다가,

창밖으로 눈을 짓밟으며

힘차게 산을 오르는 산양들을 보았다.

금세 검은 나무들 사이로 사라져 버린 산양들을 따라

급하게 시선을 뒤로 옮겼다.


그렇게 나는,

지독하게 새하얗고 숨 막히게 짙푸른 속초를 벗어났다.




약 한 달 후 나는 임용 합격 통지를 받았고,

신기한 인연으로 속초에 발령을 받았다.

이제 나는 어엿한 3년 차 속초 주민이자,

3년 차 사서교사가 되었다.


속초의 겨울은 여전히 새하얗고 짙푸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속초의 다른 빛깔도 알고 있다.

교정의 벚꽃 아래에서 찍은 아이들과의 사진은

설레는 분홍색이고,

더위에 땀 흘리며 아이들과 먹은 아이스크림은

청량한 하늘색이며,

떨어진 낙엽을 주워 아이들과 만든 책갈피는

그리운 주황색이다.


채워지지 않는 교사로서의 부족함에

언제나 부끄러움을 느끼고,

어리숙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의젓한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스파크가 튀듯 번뜩이는 능력을 뿜어내는

아이들에게 연실 놀라고,

아이들에게서 자란 새순이 이파리를 내고

언젠가는 꽃을 피우길 바라며 그저 땅을 도닥인다.

나는 이제야 나뭇가지에 작은 이파리를 피워 낸 사람일 뿐인데,

나의 이 작고 보잘것없는 경험으로

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어느덧 졸업한 제자도 생겼다.

도서관을 찾아온 그 아이와

그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웃었을 뿐인데,

스스로 꽃을 피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모습이

참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선생님이란 말은

아직 내겐 무겁고 버겁게 다가온다.

그러나 짧은 교직 생활과

사랑스러운 아이들로부터 배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교육은 학생만이 아닌 교사도 자라게 한다는 점이다.


이곳 속초라면,

새하얀 추위에도 푸르른 생기를 잃지 않는 이곳이라면,

나의 앙상한 나무에도

크고 작은 이파리들이 피어나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수많은 아이가 나를 지나쳐 가고

그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른이 된 나를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