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is Sagal 감독l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사람들로 붐볐던 공간들이 텅 비어있는 낯선 풍경을 종종 보게 된다. 특히 지난주 안드레아 보첼리가 밀라노 대성당에서 공연했던 Music for Hope 온라인 콘서트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이탈리라를 비롯한 유럽 도시의 휑한 거리 모습은 쓸쓸하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사람은 한 명도 없이 바람에 종이만 날리는 거리의 장면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기억 속에 있는 이미지의 상당수는 사실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겪은 것보다는 영화 등 영상매체를 통한 간접경험으로 축적된 것이다.
지금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영화의 한 장면은 고등학교 때였는지 아무튼 주말의 명화에서 봤던 <The Omega Man>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텅 빈 뉴욕의 거리를 빨간색 오픈카 한대만 돌아다니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핵전쟁 이후 알 수 없는 감염으로 인류의 대부분이 죽고 백신을 연구하던 주인공 Dr. Neville만 스스로 백신을 맞아 항체가 생겨 살아남는다. 감염 후 생존한 사람들은 마치 드라큘라처럼 밝은 빛을 무서워하고 밤에만 돌아다니는 변종이 되어 버렸고 Dr. Neville을 죽이기 위해 공격한다.. 는 뭐 그런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아무 데나 제한 없이 돌아다니고, 차가 고장 나면 다른 차를 그냥 집어 타고 다닌다거나 백화점에서 옷을 아무거나 찾아 입거나, 혼자 극장에 앉아 우드스탁 영상을 보는 장면 등에서 어찌 보면 이 세상에 나 혼자밖에는 없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인간의 욕망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밤에는 변종들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고 있고, 실제로 그것보다도 그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이었다.
종이만 휘날리는 거리를 혼자 달리거나, 중무장한 요새처럼 만든 집 안에서 인형에 모자를 씌워놓고 체스를 두면서 대화를 하듯 혼잣말을 하는 장면에서 이런 주인공의 외로움이 극적으로 표현된다.
당시 영화를 보면서 이 세상의 아무도 없이 나 혼자만 지내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 내가 만약 인류의 마지막 남은 사람이라면? 하고 상상하면서 진저리를 쳤던 것 같다.
이번 한 달이 넘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기간 동안 그동안 아주 일상적이었던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했던 것인지 새삼 깨닫지 않았나 싶다.
다 같이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할 수 있는 예배,
식당에서 친구들과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웃고 즐기던 회식,
사람들이 꽉 찬 극장에서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는 즐거움 등...
영화 <The Omega Man>은 심지어 주인공이 찰튼 헤스턴이다.
원래 Richard Matheson의 1954년 소설 <I Am Legend>가 원작으로 총 3번에 걸쳐 영화화되었는데, 1964년 <The Last Man on Earth>란 흑백 영화가 먼저 만들어졌고, 1971년의 <The Omega Man>에 이어 2007년 윌 스미스 주연의 <I Am Legend>가 세 번째로 개봉되었다.
아마도 윌 스미스의 영화는 익숙할 것 같다.
이 영화들에서 재미 있는 것은 갑작스러운 전염병으로 인류가 순식간에 감염되면서 몰려드는 환자들이 복도의 간이침대에 누워있기도 하고, 치료를 위해서 주인공의 혈청을 이용한 항체치료를 한다고 묘사하는 장면이 지금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게 1954년의 소설임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의료자원이 부족한 곳에서는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는데,
평상시 과잉진료라고, 의료 자원 낭비라고 비난받았던 의료시스템 덕분에, 그리고 자원해서 뛰어간 의료진 덕분에 한국은 대구에서의 갑작스러운 확진자 증가에도 그 충격을 흡수해 낼 수 있었다.
또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료를 위해 중화항체 치료를 시도하고 있다.
영화를 보다보면 개인적 취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화에 등장하는 텅 빈 도시의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모습에 시선을 뺏기고 만다.
64년 영화에서는 <1956년식 Chevrolet Two-Ten Townsman>을 주인공이 시체를 싣고 다니는 용도로 이 용하는데, 이후 두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이 평상시 타고 싶었던 차를 골랐던 것인지 찰튼 헤스턴은 영화의 도입부에 빨간색 <1970년식 Ford XL Convertible>을 타고 가다 쳐 박고 다시 하늘색 <1970년식 Ford Mustang>으로 갈아탄다.
2007년 영화에서는 윌 스미스는빨간색 <2007년식 Mustang Shelby GT 500>을 타고 도심을 달리는데 이 Mustang이라는 차에 대한 미국인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차와는 조금 다른 의미의 용도이지만, 좀 더 현실적인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멸망을 다룬 2000년 TV 영화 <On the Beach>에서는 종말이 가까워지고 각자 죽음을 준비하는 때 남자 주인공이 <1995년식 Ferrari F355 GTS>로 트랙을 최고속도로 도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Mustang이나 Ferrari를 탈 일이 없는 나는 자전거를 타고 성남 아트센터를 찾아가 여느 때 일요일 오후 같으면 공연 관객으로 왁자지껄했을 아무도 없는 묘한 느낌을 즐긴다. 이곳에는 PIGLET이란 이름의 꽤 그럴듯한 레스토랑이 하나 있는데 요즘 같으면 조용히 일하기가 좋다.
사무실이 길 건너편이라 주말에 가끔 찾아가곤 곳인데, 일단 커피가 싸고, 맛도 나쁘지 않고, 게다가 리필이 된다.^^
또 콘서트 홀 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뒷산으로 등산할 수 있는 길로 연결이 되는데 오늘은 그야말로 꽃길을 걸어보았다.
평상시와는 다른 한적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지만 번잡함에 불편하더라고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빨리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