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컬러로 기록된 20 세기 뉴욕의 풍경, 그리고 겨울
겨울이 이별을 하기 싫은지 다시 추위와 눈을 뿌리며 앙탈을 부리고 있다.
얼마 전 남산 자락에 위치한 피크닉 뮤지엄에서 사울 레이터 (Saul Leiter, 1923-2013) 사진전을 볼 기회가 있었다.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 말이 있는데 가끔은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나 선입견, 즉 전문가들의 평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비전문적이지만 나만의 시선으로 감상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사울 레이터에 대해서는 40년대부터 초기 컬러 필름으로 뉴욕의 풍경을 담았고, 평생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80이 넘은 2000년대 중반에야 세상에 그 가치가 알려져 20세기 대표적 사진작가 반열에 오른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이번 전시회의 포스터로도 사용된 동화 같은 느낌을 주는 예쁜 사진, 뉴욕의 거리를 빨간 우산을 들고 눈보라를 헤치며 걸어가는 사진이 내가 알고 있었던 사울 레이터의 유일한 사진이었다.
이번 전시회의 작품을 둘러보니 사울 레이터는 사물을 직접 선명하게 촬영하기보다 뿌옇게 이슬이 맺힌 창문을 통해 비친 사람을 찍거나 일부러 아웃포커싱을 한 사진을 많이 남겼다. 1층 전시의 입구도 일부러 간유리에 전시회 제목을 써 놓았는데, 간유리로 다른 관람객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비치면서 마치 사울 레이터 사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현장에서 느끼게 해 주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그가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한 시선은 일반적인 인물사진이나 풍경사진처럼 대상을 집중해 촬영한 것은 아니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담은 것이었는데 창의 커튼에 살짝 가린 거리 풍경이나 거울에 비쳐 반사된 인물들, 혹은 2층 베란다나 창가와 같은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이 많았다.
영화에서 이런 하이앵글은 피사체의 미약한 존재감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데, 반대로 아래에서 높여 찍는 로우앵글은 피사체의 강력함을 나타내는 기법이다. 공포영화에서 희생자가 무서운 방에 들어갔을 때 하이앵글로 잡고 반대로 살인마가 어둠 속에서 등장할 때는 로우앵글숏을 사용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에서 주인공이 건너편 건물의 여인을 훔쳐보는 것 같은 관음적인 시선이 아니라 작가가 사랑하는 도시에서 자연스럽게 눈에 띄는 평번한 일상을 담아낸 것으로 보인다. 마치 길을 걷다가 아주 귀여운 아이를 보면 한참 쳐다보는 것처럼 그 시선의 따뜻함을 사진에서 느낄 수 있었다. 또 그의 사진이 지닌 가치는 우리가 생활하는 익숙한 공간인 산업화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컬러 사진으로 유명하지만 (전시회에서 대부분 아름다운 컬러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나는 그가 찍은 흑백 사진도 상당히 좋았는데, LIFE 지에 실리기도 한 꽤 주목받았던 작가였던 것 같다. LIFE 지에 실린 그의 작품은 구두닦이가 대상이지만 그가 닦고 있는 반짝이는 구두가 아니라 그가 신고 있는 초라하고 낡은 구두를 찍은 색다른 시선의 작품이었다.
그의 사진은 수직이나 수평으로 면이 나누어진 작품이 많았는데, 특히 1층의 흑백 인물 사진에서는 선, 유리 등 다양한 요소가 인물이 나누고 있는 사진이 많았다. 자신이나 자신의 그림자를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경우도 있어서 혹시 자기 분열적인 표현을 한 것인가 하고 어설픈 해석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더 작품을 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엉켜 살아가는 대도시에서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해 내야 하는 현대인들, 즉 한 사람이지만 여러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쌍둥이 같은 수병을 찍은 사진을 보고 나니 어쩌면 이 도시에는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나와 그들이 모여 우리가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사울 레이터는 그저 누군가의 창문을 찍을 뿐이라고 말한다. 사진을 보는 내가 쓸데없이 과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닐까?
선으로 인물을 나누기도 했지만 화면을 크게 분할해 많은 부분을 단색의 물체가 차지하게 하고 관심이 되는 피사체는 아주 좁게 잡은 작품도 여럿이 있었는데 마치 뉴욕의 어느 카페에 앉아 식사를 하다 고개를 살짝 돌렸을 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같았다.
창밖에서 몸을 움츠린 사람들이 눈이 쌓인 겨울 거리를 지나가는 작품을 휴대폰으로 찍다가 문득 검은색 커튼에 반사된 내 모습을 발견해 나도 그 사진의 주인공이 된 듯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기보다는 그저 좋아서 사진을 찍었던 사울 레이터는 생계를 위해 Haper's Bazaar라는 패션잡지의 사진작가로 일했는데 이때 찍은 사진들도 독특한 느낌이었다. 벌써 수십 년 전 어릴 때 누가 버리고 간 논노라는 일본 잡지 한 다발을 뒤적거리면서 이렇게 멋지게 사진을 찍을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최신 유행의 사진이라면 패션 잡지일 텐데 사울 레이터는 이런 상업적인 사진에서도 단지 옷을 중심으로 찍은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색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을 남겼다.
사울 레이터는 칼라 필름을 아주 초창기에 사용한 선구적 작가로 유명하다. 당시 4-50년대에는 주류 사진작가들은 칼라 필름이 정확하게 색을 담아내지 못하고 왜곡을 한다고 생각해서 칼라고 사진을 찍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아주 early adapter였던 사울 레이터는 그 당시에 최신 기법의 소재로 사진을 찍었던 셈인데 사울 레이터는 인화는 할 수 없었지만 필름 현상을 맡기면 슬라이드로 만들어주는 것이 편해서 칼라 사진을 계속 찍었다고 말한다.
사실 내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이곳에 올리기도 했고, 또 검색을 통해 그의 작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겠지만 이렇게 보는 사진은 매우 왜곡된 이미지이다. 인화 되어 걸려있는 그의 작품을 직접 감상해보기를 권유한다. 아무리 미디어와 인터넷이 발달하더라도 미술은 여전히 현장에서 맨 눈으로 봐야 하는 그런 특성이 있다.
수십 년 전 누구보다 최신 필름을 이용해 찍었던 그의 작품은 선명한 고해상도 사진과 4K 이미지들이 넘쳐나는 현대에는 화소 낮고 색이 바랜 빈티지 작품이 되고 만다. 지금의 시선으로는 과거이고 예스러운 느낌이 사울 레이터의 작품을 감상할 때 아련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80이 될 때까지 유명해지지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꾸준하게 하면서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낸 한 사진작가의 삶과 작품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겨울 오후였다.
사울 레이터 하면 빨간색 우산, 펑펑 내리는 눈이 전체를 차지하는 크리스마스 엽서 같은 컬러 사진이 유명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 유난히 빗속을 바쁘게 걸어가는 여인을 찍은 사진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왜 그럴까 했는데 아마도 나의 최애 앨범 중 하나인 Sonny Clark의 Cool Struttin' (1958) 앨범 표지가 연상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자, 그럼 멋진 사진 작품을 보고 왔으니 전설 같은 재즈 뮤지션들이 참여한 Cool Struttin'을 한번 감상해보자.
Sonny Clark (Piano), Jackie McLean (saxophone), Art Farmer (trumpet), Philly Joe Jones (drum), Paul Chambers (b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