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돈<브레이브 뉴 휴먼>
한달을 주기로 매회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장기가 하나 있다. 평생을 안먹던 진통제까지 먹어가며 발악하는 그 존재를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 수순도 이제는 익숙해져버렸다. 바로 자궁이다. 자궁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명칭에 대해서도 그간 많은 의문이 들었었다. 여성의 생식기관을 뜻하는 자궁(子宮)에 여자라는 의미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자궁이 아니라 포궁(胞宮)이라 명칭을 변경해야한다는 페미들의 주장도 가끔 마주하게 되는데, 언어적 관성으로 품는다면 자궁이라는 명칭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자궁을 가진자, 그 무게를 버텨라. 항상 들어왔던 말이기도 하다. 성인 여자라면 누구나 매달 반복되는 정상적인 생리기능이 때론 수치스럽고 역겹고 일정을 완전히 망치기도 하는 계륵 같은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경험을 한다. 또한 막연한 임신 혹은 난임 그리고 고위험 출산 등의 가능성을 마주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있는 여성들도 다수다. 젊을 때는 생리와 생리통이라는 이름으로, 나이가 들면 갱년기와 폐경이라는 이름으로 옮겨가는 여자의 숙명, 벗어날 수 없는 짐짝 같은 이미지가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나 이 모든 걸 소중한 생명을 품을 수 있는 고귀한 존재로 여긴다면 자궁이 주는 여러 고통은 그 무게가 천근 만근이라도 버텨낼 근간이 된다. 모든 여성들은 암묵적으로 그렇게 배겨내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인공자궁 개발이 성공했다는 일본의 소식이 들려왔다. 출산에도 혁명이 찾아온 것일까. 아주 정교한 투명 인공자궁 속에서 양수와 유사한 액체를 순환시켜 탯줄 장치까지 연결해 완전히 사람 몸 밖에서 배아를 키우는 것이 가능하게 한 기술이라 한다. 자가호흡이 가능한 27주 이상의 태아만이 이용가능한 인큐베이터와는 영양과 산소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체외수정 뿐만 아니라 체외 임신까지 가능해진 시대가 되어버린 건가. 번뜩이는 기술변화에 막연한 불안감이 스민다.
인공자궁은 그간 SF소설의 다양한 재료가 되어왔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영화 <아일랜드>, <매트릭스>가 대표적이다. 한편 최근에 읽은 정지돈의 <브레이브 뉴 휴먼>에서는 이런 인공자궁 시대의 이후를 그리고 있다. 이는 저출산시대에 국가가 관리하는 대규모 인공자궁시설에서 태어난 체외인의 이야기다. 인공자궁에서 태어난 자와 인간의 몸에서 태어난 자들의 계급 구도, 그리고 그 속에서 계급에 순응하는 자들과 용기 내어 타파하려는 자들의 심리 구도도 아주 재미있다.
특히 이 소설에는 인간의 가치와 본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여타 인공자궁 SF와는 구별된다. 여기서 의미하는 인공자궁은 내가 선택할 수도 고를 수도 없는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선천적 소속의 개념을 벗어나 완전히 자유로운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존재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매개체이자, 출산과 양육에만 포커싱된 여성의 생식적 압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대체제라는 지점에서 의미가 있다. 가족의 개념과 여성생식의 회의적 탈피로 시작된 정지돈의 인공자궁은 역설적으로 현대인의 출산과 양육의 무게들을 보다 직접적으로 실감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