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모순> 밀란쿤데라<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
우리는 기나긴 삶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삶은 늘 뜻하지 않은 공백과 무의미함, 그리고 불현듯 찾아오는 불행으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절제하며 평온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그 안에도 불안은 조용히 또아리를 틀고 있다. 완전함을 추구할수록, 우리는 오히려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과 더 깊이 마주하게 된다는 것인데, 양귀자의 소설 <모순>은 그런 삶의 복잡성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행복을 원하면서도 불행에 휘말리고 사랑을 좇으면서도 상처받는 인간의 내면. 그 안에 깃든 수많은 역설과 갈등과 같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그 자체로서 말이다. 어쩌면 행복과 불행, 고요함과 혼란, 희망과 절망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그 ‘모순’의 결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산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씩 배워가는지도 모른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인생은 한 번뿐이기에 시험이 없고, 그러니 선택도 절대적으로 무책임하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은 가벼우면서도 무겁다.” 정말 그렇다. 주인공 토마시처럼 우리 또한 자유를 원하지만 책임을 피할 수 없고, 가벼움을 추구하지만 무게를 감수해야 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는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헌신을 두려워했고, 정치적 신념을 표현하면서도 사회적 지위를 잃는 무게를 받아들였다. 그의 삶은 무책임한 선택처럼 보였지만, 결국 가장 무거운 책임으로 되돌아온다. 이처럼 우리 모두도 선택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큰 자유로움과 동시에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지를, 그 모순을, 매 순간 몸으로 겪으며 깨달아간다.
만약, 사랑하는 애인과 평생을 함께한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했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내가 단 한 사람 만을 구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과연 누구의 죽음이 더 슬플까. 사랑의 종류도, 함께한 시간의 밀도도 다르다. 미래를 함께 설계한 약혼자의 죽음은 그 미래를 송두리째 앗아가며, 단순한 상실감이 아닌 삶의 방향이 무너지는 충격을 안긴다. 함께할 시간을 약속했음에도 끝내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그 자체로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평생을 함께한 친구의 죽음은 어떠할까. 그는 나의 유년과 성장, 기쁨과 고통을 함께 겪은 존재다. 내 과거이자 정체성의 일부이며, 말 없이도 나를 이해해주는 단 하나의 사람이었다. 그런 존재를 잃는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잃는 것과도 같다.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 말로 다할 수 없는 상실감이 밀려올 것이다. 결국 애인의 죽음은 미래를 잃는 고통이고, 친구의 죽음은 나 자신을 잃는 정체성의 붕괴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슬프다고 말할 수 없다. 비교조차 불가능한, 서로 다른 방향의 완전한 상실일 뿐이다. 이처럼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는 선택하지 않은 것의 상실까지도 함께 끌어안아야 한다는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어떤 상실도 단 하나의 감정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삶이란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우면서도,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무거운 모순의 연속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순 속에서 상처받고 흔들리면서도, 결국은 다시 의미를 찾아가며 살아낸다. 결국 그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껴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