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채용을 포기하면서
신혼여행 중간즈음, 채용 마지막 절차에서 떨어졌던 A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추가합격이 되었다고. A기관은 당장 나의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으면서도 직장문제로 떨어져 지내고 있는 나와 남편이 근미래에 합칠 수 있을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나 역시 정답이라 여겼던 이직자리였다. 당장이라도 내 쪽에서 출근일자를 물을만치 마음이 들떴지만, A 기관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 퇴사, 이사 등 정리해야 되는 문제가 산더미였기에 A기관의 인사 담당자에게는 가족과 상의할 시간을 달라 양해를 구했다. 함께 여행 중이던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하니 그 역시 정말 기뻐했다. 뜻밖의 소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신혼여행 마지막 날, 이직을 트라이했던 두 곳으로부터 '예비 1번(B기관)', '필기합격(C기관)'이라는 결과를 각각 또 전해 들은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냥 다음 수순으로 A기관에 출근날짜를 조율하면 되는 것인데, 나는 어느새부턴가 주저까지 하고 있었다. 그 감정은 단순히 새로운 도전에 앞서 망설이는 차원의 것이 아녔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보내오는 '부정' 내지 '불호'의 신호였다. 이상하다. 두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답은 분명 A기관이었는데.. 이 정답을 위해 결혼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꼬박 반년을 매달리고,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에는 내 삶 전체가 부정당했다 여기며 좌절했었는데..
핵심은 두 달이라는 시간이었다. 그 2개월 동안 나는 좌절을 딛고, 내가 A 기관과 인연이 아니었음을 받아들였다. 또 내가 고용승계된 기관이 시작의 물꼬를 잘 틀 수 있도록 직무급 도입 업무를 자원했고, 내 본연의 직무 중에 하나인 기관의 비전, 경영목표, 경영전략을 수립하는데도 공을 들였다. 남은 동기들과는 우리 기관이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주인'된 것 마냥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편과 합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기 위해 B기관, C기관에도 입사원서를 넣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 현직장의 비전을 봤고, 내가 도전할 수 있는 곳이 A기관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의 생각이, 나의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 부부가 처해있는 당장의 불확실성을 잠재울 대안은 A기관이었다. A기관은 정부부처였고, 5년 정도 근무연한을 쌓으면 지방직 공무원으로 인사교류를 해 제주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또, 집안의 어른들은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는데 공무원만 한 직업이 없고, 공무원으로 입직할 수 있는 이런 기회가 또 없을 것이라며, 내가 이 기회를 잡기를 바라셨다. 나 역시 지역 교류 가능성, 공무원의 신분 이 모두를 고려해 A기관에 지원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지점들마저 나에게 물음표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의 분야를 접어두고 지방직 공무원으로 전직해 오는 게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인가? 나는 공무원이 되고 싶은가?
또,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상황들도 드러났다. 내가 지원했던 자리는 a직무를 하던 자리였는데, 과에 사업 수가 얼마 안 되다 보니 해당 직무가 내 윗 직급으로 배당되고, 정작 내 자리는 서무 일을 하는 자리로 변질된 것이다. 오히려 '성과관리', '경영전략', '경영혁신' 등 조직의 중요한 업무를 주도적으로 수행 있는 지금의 직장보다 일경험의 양과 질이 낮아질 가능성이 커 보였다.
고민에 고민을 더할수록 나의 생각은 어느샌가 '가지 않는다'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나는 내 생각의 방향을 돌리려 과거 홀랜드 인적성검사 결과도 뒤적이고, A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 직장동료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나, 이미 방향을 튼 나의 마음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떠내려가고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전해 듣던 남편은 실망스러워했다. '우리'가 아닌, 여전히 '나' 입장에서 선택하려는 내가 조금은 원망스럽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러고서 하루 이틀 후, 그는 그럼에도 나의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얘기해 주었다. 내가 일하는 분야에 대해서 얼마나 큰 애정을 갖고 있었는지, 나에게 일은.. 그저 일이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큰 요소 중에 하나인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그랬을 거라고 짐작한다. 다만, 그는 우리가 함께하기 위한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함을 주지 시켜줬다. 나 역시, B, C기관에의 이직에 최선을 다할 것이고, 최악의 경우 제주도에 일단은 돌아오는 상황도 고려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충 예상들을 했겠듯이, 결국 나는 공무원 채용을 포기했다. 정답인 줄 알았는데 정답이 아니었던 것을 깨달은 그때의 교훈은 여전히 엄청나다. 오늘의 나는, 언제나처럼 열심히 살지만, 모든 것에 반의 반절만큼은 덜 연연하게 되었다. 반의 반절이라니.. 엄청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