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스럽지만 행복이 넘치는
제주에서는 여전히 돌잔치를 하는 편이다. 한정식집에서, 삼계탕집에서, 경양식집에서, 고깃집에서, 호텔에, 마을회관에서 등등.. 제주의 돌잔치는 장소도, 손님들께 대접하는 메뉴도 가지각색이다. 적어도 첫째 돌잔치는 국룰이라고 하는 이 동네에서, 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전부터 손님들을 초대하는 돌잔치는 하지 않겠노라 마음을 먹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내 아이의 첫 번째 생일을 진정으로 축하할 수 있는 이들과만 이 시간을 기념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나와 가까운 친구일지라도 그들은 '나'의 친구이지, '내 아이'의 친구인 것이 아니기에 귀찮고, 부담스러운 감정이 섞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아직 미혼인 친구들에게 괜한 복잡 미묘한 감정을 떠안기고 싶지 않았다. 둘째로, 골드메 트렌드에 반발심이 들었다. 육아메이트의 아이가 10개월째 정도였을 무렵 돌스냅을 예약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빨리 정했다 싶었는데. 웬걸.. 사진을 찍고 보정하고 받는데 한 달 넘게 걸리니 스냅을 예약하는 건 얼추 두 달 전에 마무리를 해야 돌 시기에 무리 없이 완성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착장, 인원, 콘셉트 등 요소 하나하나마다 플러스되는 추가금에... 돌잔치용 엄마드레스, 60만원이 넘는 돌상까지..! 결혼식 스드메의 관행들이 이 쪼꼬만한 아가들의 생일에도 내려온 것 같아 씁쓸했다.
그리하여 난 직계가족만 초대하는 셀프 돌잔치를 치르게 됐다.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돌잔치를 굳이 열지 않은 이유 중에는 결혼식을 준비하던 그 번거로운 과정을 생략하고 싶은 게으른 마음도 한몫을 했었는데, 그 이유는 아주 무색해졌다.
우선 준비해야 할 소품이 한 무더기였다. 상, 테이블보, 떡(백설기, 수수경단, 송편), 과일, 명주실, 꽃, 범보의자, 범보의자천, 가랜드, 화병, 각종 접시, 돌잡이용품, 한복, 버선, 엄마아빠 돌착장, 답례 떡 용기..... 등등
당근, 쿠팡, 지인찬스를 넘나들며 체크리스트 상 소품, 준비물품을 채비해 가며 나는 이따금 되새겼다. 내가 손수 돌이벤트를 준비하려고 했던 건 우리답게 또 더 기쁘게 아이의 돌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사진은 나의 지인에게 부탁했다. 나의 20대 시절을 기억하고, 우리 부부의 역사를 알고, 우리 가족의 추억을 렌즈로, 또 렌즈 넘어 그 기록하고 그 스스로도 기억해 줄 이에게!
돌 전날은 가히 전쟁 같았다. 돌상을 놓고 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하얀 배경을 마련하기 위해 소파를 부엌에 붙이고, 식탁에 올려둔 각종 물건들을 치우고, 식탁을 옮기고, 아이 가드를 해체하고, 놀이매트를 걷어내고, 양가 어른들이 앉을 의자자리를 마련하고.. 손님들이 집으로 오니 화장실 청소를 하고, 밀린 빨래를 돌리고, 가족사진을 인화하고 앨범에 정리하고, 집에서 간단히 드실 빵을 굽고, 차 마실 종이컵을 준비하고..
어휴.
그리고 마침내 수박이의 돌잔치 날이었다.
사진작가님 보다도 먼저 도착한 건 우리 친정가족들이었다. 전전날에도 내가 손수 돌상을 차리는 게 번거롭고 힘에 부칠까 이제라도 돈을 주고 스튜디오를 대여하는 게 어떻겠냐 걱정 어린 전화를 했던 어머니였는데, 조금이라도 먼저 도착해 우리를 도와주려 했던 것이다. 아이 밥을 든든히 먹이느라 엄마아빠는 미처 채비를 못 마친 상태였는데, 친정가족 찬스로 귀걸이도 채우고 남편 눈썹도 정리할 수 있었다.
이후에 작가님이 도착했고, 수박이 독사진 그리고 수박이, 나 그리고 남편 세 가족 돌상사진을 연이어 먼저 찍었다. 사진을 찍는 와중에 시어머님, 시아버님이 도착하셨고, 이어서 시가 가족 돌상사진, 친정 가족 돌상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시가, 친정 온 직계가족 돌상사진을 찍었다. 돌상사진을 폭풍 같았지만 무탈히 찍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후부터는 내가 소소하게 준비한 순서대로 진행했다.
돌상 사진을 찍고 난 이후에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순서는 수박이의 장기자랑 시간이었다. 수박 이를 유아의자에 앉혀두고 그간의 수박이 터득한 장기를 어른들에게 보여주는 시간이었는데 아주 성공적이었다. 어른들도 까르르, 어른들의 까르르에 아가도 같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는데 넘치는 행복에 내 마음이 벅차오를 정도였다. 수박이가 시도한 장기자랑은 무려 10가지였다. (1)안녕 (2)도리도리 (3)갸웃 (4)인디언밤 (5)엄마 (6)쩝쩝 (7)인형 안아주기 (8)까꿍 (9)짝짝꿍 (10)깜빡. 이중에 수박이는 무려 7개를 성공했다.
다음은 내가 손수 만든 수박이의 성장영상을 온 가족과 함께 시청했다. 가족들은 영상을 한번 보고, 현재의 수박이를 또 한 번 번갈아보면서 "많이 컸다. 많이 컸다."를 연신 되뇌었다. 아가도 화면 속 사람이 본인이라는 걸 인지하는지, 보채지 않고 집중해 보았다.
10여분의 영상 시청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수박이의 돌잡이 시간이 왔다. 돌잡이 용품은 나무쟁반이 아니라 수박이가 더 어렸을 때 누워 놀곤 했던 제주 육아용품 아기구덕에 흩뜨려 두었다. 아이가 잡았으면 하는 것을 앞에 놓자고 하셔서 어른들의 말씀에 청진기랑 마패를 구덕 앞쪽에 두었는데, 수박이는 내가 아이가 운동하다가 다칠까 염려되어 유일하게 멀찍이 놓았던 축구공을 기어이 잡아들었다. 자식이 커가는 게 부모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그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은 순간이었다. 아이는 두 번째로 청진기를 잡았고, 세 번째 물건을 잡을 때에는 아예 구덕 안으로 들어가서 놀다가 판사봉을 집어 들었다.
돌잡이를 하면서 아기가 바닥에서 놀게 된 김에 우리는 부대 이벤트로 아이를 자유롭게 두었을 때 누구에게로 향하는지 겨루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엄마, 아빠가 껴 있으면 엄마, 아빠에게 달려들 소지가 크기에 엄마, 아빠 따로, 또 나머지 가족들 따로 해서 겨뤄보기로 했다. 먼저, 엄마, 아빠 1차전에서는 아기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나에게로 왔다. 그리고 이어서 친정엄마, 친정아빠, 시어머님, 시아버님을 거실 끝에 두고서 아이가 찾아가게 했는데, 아이는 칭얼거리다가 몸을 돌려 결국 나의 품에 안겼다. 나는 아이가 슬슬 피곤해 칭얼거린다 여겼는데, 꿈보다 해몽이라고 시어머님, 친정엄마는 아기가 현명해서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가지 않기를 선택했다며 대견해하고 기특해했다.
그렇게 수박이의 첫 생일잔치는 끝이 났다. 와주신 가족들에게는 바깥 호텔 뷔페에서 식사를 대접했다.
그래서, 만족했냐고? 100프로의 만족이었다. 그렇지만 '만족'이라는 단어보다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하루였다. 부모님들이 웃었고, 아기가 웃었고, 작가님도 웃었고, 나도 남편도 신나게 웃었으니깐! 이 세상 모든 아기가 이 다정한 시선과 사랑을 기억하고 어른이 된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오래오래 행복할 텐데.
나의 마음은 괜히 또 다짐을 한다. 첫 번째 생일잔치만 유난이 되지 않게 너의 두 번째, 열 번째, 열일곱 번째 생일, 너의 스물다섯, 서른넷, 쉰다섯, 일흔.... 인생의 굵직한 마디와 그 마디마디 사이의 소소한 일상들에도 네가 사랑을 실감할 수 있게, 너의 행복력이 성장할 수 있도록, 서툴지언정 꼭꼭 사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