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최고의 처세(1)

삶의 축을 여러 개 세울 것

by 재치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보는 요즈음이다. 보통의 날들에도 이러한 고민의 시간을 확보하고 소화가 쉽게 천천히 답을 얻으면 좋으련만, 나는 대개 힘든 일을 겪고 극복하는 과정 중에 급급히 깨닫는다.


첫 번째 깨달음은 직장 상사와의 관계가 힘들어 힘들었던 시기에 있었다. 이전에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당한 적 있는 그 상사가 있는 부서로 인사가 나서 내내 조마조마했는데, 코로나 시기에 신규사업을 치러야 하는 압박감 속에 그는 본색을 드러냈다. 밤낮없이 업무적으로 압박했고, 진행시키고 있는 일을 수시로 번복했고, 나의 태도를 비난했고, 남들 앞에서 나의 무능력함을 까발렸다. 평소에도 워낙 악명 높던 그여서 주변이 들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모두 지나갈 거다 응원해 줬지만 그가 만들어둔 쳇바퀴 속에서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나는 어느새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번 관성으로 누르던 집 비밀번호를 영영 까먹게 될 정도의 우울감과 무력감을 갖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4개월이었다.


이 힘든 시기에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건 나의 가족들과 나의 취미였던 살사였다.




남편(당시는 남자친구)은 나의 우울이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에도 침습했음에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내 곁을 지켜주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는데 서툰 나를 이끌어 불편한 감정덩어리를 문장으로 토해낼 수 있게 나의 마음이 한결 가벼울 수 있게 심리상담사 마냥 도왔고, ‘애초에 그게 네 업무야?’, ‘업무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게 아니라, 감정적으로 너를 대하고 있으시네.’ 등의 뜻밖의 말로 나를 환기해 주었다. 한편, 직장을 다니며 대학원 생활을 병행하는 나의 통학길을 태워다 주시던 아버지는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시더니 특유의 묵직한 목소리로, 영화 속 대사를 말하듯 말씀하셨다. 그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아서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이고, 가진 게 훨씬 더 많은 너는 그딴 회사 그만두고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라고. 너에게는 가족과 능력과 젊음이 있노라고. 맞다. 나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어리광 피울 수 있는 가족의 품이 있었다. 그와 함께하는 순간 매 순간 벼랑에 서게 되는 것 같던 나에게, 가족이란 존재는 내가 혹여 그 벼랑에서 추락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옅은 용기를 안겨주었다.


또 다른 나의 버팀목은 나의 취미였던 살사였다. 주에 한번 살사동호회에서 살사를 배우는 것이었는데, 지자체 프로그램이어서 그랬던 건지 연배가 50대 전후였고, 당시 스물아홉의 나는 유일한 젊은이였다. 그 모임에서 만큼은 나는 에이스였다. 강사님의 말처럼 내 신체가 살사에 제격인 몸이서 그랬던 건지, 그저 젊어서 손의 아귀힘이 좋아서였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중에서는 그래도 좀 추는 편이었다. 그 덕택에 강사님의 파트너 시범 파트너가 되는 일이 잦았고, 리드하는 역할을 하는 수강생은 나와 춤추는 것을 선호했다. 내가 한 주 빠지고 나면, 그다음 주에 ‘고님이 없어서 저번 주에는 재미가 없었어요.’ 등의 으쓱한 인사치레를 들었다. 살사 페르소나인 ‘고(살사 닉네임)’는 꽤나 쓸모 있고, 밝고,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는 또 실수를 할까 한없이 주눅 들어 있었지만, 살사를 출 때만큼은 나는 실수 따위는 겁내지 않고 리듬에 그저 몸을 맡기고, 추워지는 대로 추는 사람이었다. 일주일 168시간 중에 단 1시간이었지만, 이 시간을 보냄으로써 나는 나에 대한 긍정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첫 번 째 깨달음이 있었다. 삶의 기둥을 여러 개 쌓을 것.


내 삶의 기둥이 일 내지 하나의 관계 등으로 밖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하나가 무너지는 순간 나 역시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개의 기둥이 있으면, 한 개의 축이 무너지더라도 다른 여러 개의 축들이 나를 버티게 할 것이다.


약 5년이 지난 지금, 회사가 또다시 사라진다고 하는 지금, 새삼 다시 생각해 본다.


어떠한 크고 작은 축들이 나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가.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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