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일 차, 아이의 뒤집기 순간을 포착했다. 아이가 잠을 잘 때 두세 번 뒤집혀있던 적이 있어서 슬슬 뒤집기를 하는가 싶기는 했었는데 그날 내 두 눈으로 아이가 뒤집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여보!" 소리를 쳤고, 새벽 수유 당번였던 여파로 늦잠을 자고 있던 남편은 잠결에 오고 가며 "정말?, 정말!" 맞장구를 쳤지만, 정작 그 완벽한 타이밍은 보지 못한 채 다시 침실로 향했다. 고로, 그 순간은 수박이와 나만의 환희의 순간이었다.
콩닥콩닥 뛰는 감정의 기세를 몰아, 이 작은 아가가 이뤄낸 성취에 덧붙일만한 다른 의미들은 없는지 마구 검색했다. 수박이가 꽤나 빨리 뒤집기(통상 3~5개월에서 뒤집기를 시작)를 한 것이라는 호들갑거리를 발견하고, 영상을 여러 각도로 찍고 그중에 제일 괜찮아 보이는 영상을 골라 친정가족에게, 또 시부모님께 보내드리며... 아기가 실은 꽤 빨리 뒤집은 것이라는 사실을 으쓱히 덧붙였다.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 호들갑을 떨고 나니, 다시 고요 속에 아기와 나의 시간이 왔다. 매일매일이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들이었는데, 오늘은 ‘뒤집기’라는 이벤트로 여러 생각들과 감정이 오고 간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 앞에서는 전혀 뒤집지 못했던 아이가, 오늘은 되집어주면 뒤집고 되집어 주면 뒤집는 오뚝이로 단번에 진화를 한 것이 어이가 없어 허허 웃게도 되고, 막상 열심히 뒤집고 나서는 뭘 해야 될지 몰라 멀뚱히 있는 걸 보니 귀엽기도 하고, 뒤집은 후에 아직은 목에 힘이 달려 낑낑거리다가 겉싸개 위에 머리를 콩콩 박는 것을 보고 걱정할게 하나 늘었다는 생각에 작은 한숨도 내쉬었다.
그렇게 한참을 수박이가 뒤집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아가, 아가, 기특한 우리 아가, 이렇게나 잘 뒤집고, 나중에 무엇이 되려나 우리 아가. 나중에 우주비행사가 되려나?”
말을 내뱉고서는, 내가 흠칫 놀란다. ‘우주비행사’란 단어 때문이다.
우주비행사는 내 첫 번째 꿈이었다. 7살 즈음 영어학원에서 직업에 관련된 영단어를 몇 개 배우고, 장래희망을 이야기하는 “I want to be a/an 명사” 표현을 배웠는데, 난 그중에 “astronaut”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었다. 배운 단어들 중에 가장 어려운 단어였어서, 학원 선생님이 기특해주었던 것이 인상에 남아 기억을 한다.
영어단어로 ‘astronaut’을 골라서 내 꿈이 우주비행사가 된 건지, 원래 내 꿈이 우주비행사였던 건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어 꿈이 ‘성우’, ‘교사’ 등 보다 현실화되기 이전까지는 나의 장래희망은 단연코 ‘우주비행사’였다. 심지어, 20대 초반까지도 내가 내 전문분야에 힘쓰고 체력관리만 잘해두면 언젠가 우주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꿈꿨으니, 나름 진지한 꿈이었다. 원피스 루피가 ‘해적왕’이 되고 싶었듯이, 나에게는 아득한 공간에서 유영하고 새 차원의 세상을 탐험하는 ‘우주비행사’가 진지한 낭만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그 평범함 속에서도 꽤나 만족해하며 사는 나에게 그 단어는 어느샌가 잊혀져 있었는데, 수박이의 뒤집기를 보고서 무의식에서인가 그 단어가 튀어나온 것이다. 뒤집고 나서도 중력에 어쩌지 못하는 아기의 서툰 몸짓이 지구에서의 움직임과 사뭇 다른 우주비행사의 제한된 몸짓과 겹쳐 보인다고 느껴서였을까..
이유가 어찌 됐건 이제 '우주비행사'류의 꿈은 나에게서 이 아이에게로 옮겨간다는 것을 느낀다. 난 오래간만에 나의 옛 꿈을 떠올려보고, 수박이의 꿈을 궁금해한다.
조금 서운하고, 대체로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