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내가 보고 가장 놀랐던 것은 길거리에 많은 홈리스 들이었다.
한국 말로 하면 노숙자라고 할 것이다. 미국 동부나 서부 할 것 없이, 길거리에는 항상 홈리스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물론 미국에 오기 전에도 미국이 잘 사는 나라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그동안 책으로 읽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세계에서 막강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백악관의 바로 옆에서 홈 리스들이 아무렇지 않게 서성인 것을 보고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놀라웠다. 한국에서는 사실 이렇게 많은 수의, 당연한 듯이 지나치는 홈리스들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홈리스들이 되었는지 의문이 들게 되었다.
하루는 친한 친구인 로버트 에게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홈리스들이 되는지 물어보았다.
운이 좋게도 친하게 지내는 지인인 로버트는 홈리스들을 위한 집을 찾아주고, 상당수 정신 질환을 갖고 있는 그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로버트에 따르면 과거 상당 수 전역한 군인들이 홈 리스들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평생을 전장에서만 살다가 막상 돌아오니 잘 적응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약물 중독을 시작으로 점차 삶이 나락으로 빠지고 정신 질환을 앓는 것으로도 진행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도 보인다고 하였다.
로버트는 과거 본인이 젊었던 30년 전과는 다르게 홈리스들이 급격하게 더 늘었다고 생각한다.
가파른 집 값 상승과는 상반된 최저 임금의 정체는 상당수 보통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은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폭락을 했지만, 이후 다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였고, 2008년과는 다르게 거품이 아닌 수요에 비한 공급의 부족으로 이가 더 재촉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하여, 일상 생활을 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월세를 구하지 못하여 거리로 내 몰리고 있다.
경제 호황에도 불구하고 홈리스들은 증가했다.
작년 국제 회계법인 딜로이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금융 위기에 이따른 급격한 홈리스 증가 이후 여러 비영리단체의 노력과 경제회복에 이따라 전체적인 홈리스들은 급격하게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최근 3년 간은 경제 회복에도 불구하고 홈리스들의 수는 정체되어 있고, 오히려 최근에는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홈리스들이 급증하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미국 홈리스 인구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전역에 약 250~350만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 )
현재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곳도 캘리포니아인데, 이른 아침에 운동 삼아 근처를 돌아보면 육교 아래나 도로 곳곳에 주차된 차들이 많다. 아무리 이른 아침이라도 늘 상 사람들이 안에 있는 데, 사실 대부분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홈리스들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격리는 사실 정부의 행정력이 미쳐야 가능한 부분인데, 홈리스들에게 정부의 힘이 미치기는 사실 상 힘들고, 힘 때문에 미국 정부에서도 고심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국인들은 그들을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선뜻 생각하기에, 홈리스들은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들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 데, 그도 그럴 것이 모두들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싶지만 비싼 렌트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거리로 나 앉는 것이다. (물론 부정적으로 사람도 꽤 있긴하다. ) 그래서 미국인들에게 세상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어렵지 않게 그들에게서 '홈리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내게는 지구 온난화나, 기아 문제, 핵 문제가 중요하다고 여겼는데, 그들에게는 그 만큼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가 바로 홈리스 문제였다. 미국 사회에서 자란 그들에게는 이는 심각하고 누구나 처해질 수 있는 문제였다.
논제에는 많이 벗어난 이야기지만, 간혹 한국인의 정치인들은 미국의 홈리스 문제를 두고서 한국 사회가 이를 반면 교사 삼아 보다 많은사회 복지 정책을 많이 펴야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미국과 한국은 같은 자본주의이지만 이미 너무나 다른 모습의 사회 체제를 구축하고 있어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나의 생각에는 한국은 헌법에서 부터 북한과의 전쟁을 치른 이후 였음에도 상당수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미국의 사회주의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이러한 문제를 방치하게 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차이가 작금의 문제에 대한 발단이 되지 않았나 생각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많은 대중들은 이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있고 공감한다.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곳에서도 홈리스들이나 그러한 위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집을 찾아 주는 일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친한 친구인 로버트에서 부터,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푸드 뱅크 등 모두가 한 마음으로 홈리스들을 도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화려한 뉴욕에서도 그러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는 데, 타임 스퀘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거리의 구석에 나 앉아 있는 홈리스들에게 말을 걸어와 그의 말을 경청하던 여성 분의 모습이었다. 미국인들에게 이들은 이웃이자 불쌍한 이웃이었다.
최근 일어난 바이러스와 그로 인한 실업은 집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홈리스인 사람들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한 집주인은 월세를 대신하여 성관계를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보고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비록 그들에게는 외국인인 내게도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모습은 어떠한 사회를 지향하느냐의 작은 시점의 차이가 수 십년이 지난 후, 얼마나 큰 결과를 보여주는지 내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지금의 한국은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과거의 세대가 지향하고 만들어온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미래 세대는 현재 우리가 재단하고 지향하는 사회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단순히 홈리스의 문제를 보면 우리는 미국 보다 낫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늘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영역에서 우리 사회에서는 어려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살다보면 우리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보고서 무심히 지나치곤 한다.
"내가 저렇게 안 살아서 다행이야" , "우리는 행복하니까 좋아"
그러나 우리는 이럴 때일 수록 어려운 이웃, 사회의 약자들의 삶에 대해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지 무시하고 지나쳐도 될 대상이 아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해주느냐가 미래 나의 후손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 우리 사회가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한 사회가 성숙하고, 건강한 사회인지는 그 사회의 약자에게 어떠한 대우와 도움을 주는지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약한 사람을 돌보고 함께 사회를 구성해가려 노력해야한다. 개개인의 작은 결심 하나가 모여질 때, 사회의 지향점이 달라질 것이며 그러한 결과는 미래 우리 세대가 그려갈 사회를 재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재 미국의 홈리스 문제를 눈으로 보고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