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외국인, 몸이 불편한 이들
한 사회에 익숙해져있다보면 어느 덧 본인 주변이 어떤 모습으로 생겼는지 잊게되곤 한다.
특히 평생을 한국에서만 살다가 낯선 해외에 처음 나가보면 많은 분들이 왜 한국과 이토록 다른 교통 체계, 문화, 치안을 가지고 있는지 그 나라에 대한 부러움보다는 불평을 하게 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평소에는 10일 이하의 단기 여행을 주로 갔는데, 어쩌다 기회가 되어서 7-8개월 가량을 미국에서 거주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걸쳐 거주한 미국에서의 삶은 조금은 색다른 렌즈를 끼고서 한국인의 모습을 바라보게 해줄 기회를 가지게 해주었다.
한국 음식 만큼 맛있는 음식을 찾기 힘들었다.
어쩌면 지극히 한국 음식을 수십년 동안 먹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해외에서의 어떤 진귀한 음식을 먹어보어도 한국의 음식 만큼 맛있는 음식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종종 한국에서 새로 생긴 미국 브랜드의 버거 체인점이나 음식점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곤 한다. 이색적인 음식이 주는 매력과 접근성이 쉽지 않다는 희귀성 탓에 그러한 버거는 보다 맛있게 느껴지고, 그러한 기회 비용 탓에 맛있어야만 한다고 느끼는 듯 했다. 그러나 그러한 버거 집과 이색적인 음식점들이 즐비한 곳에 몇 개월을 살다가 돌이켜보면 한국 음식들만큼 맛있는 음식도 잘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해외 음식이 맛 없거나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에서 불어난 내 체중을 생각하면 전혀 그럴 수 없다.) 다만 지나치게 해외, 특히 미국에 대한 동경이 한국인들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듯 했다. 음악에서도 미국의 트렌드, 공부에서도 미국에서의 유학, 음식도 미국식 버전을 많이 동경한다. 물론 지금 이렇게 나열해보니 거의 대부분의 트렌드에서 미국이 앞 선 분야임은 사실이지만, 어쩐지 이러한 동경이 지나치게 우리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불연듯이 들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뉴욕이 가기 힘든 곳이 되었지만, 당시 필자가 여행을 하러 갈 때만해도 뉴욕은 어디든 사람들이 여유롭게 거리를 거니는 곳이었다. 모처럼 미국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과 뉴욕을 여행했다. 현지에서 유명한 베이글 집과 맛 집들을 돌아다니가 뉴욕 근처에 있는 한국인 거리를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한 순두부찌개 집을 찾게 되었는 데, 그때 먹은 순두부가 아이러니하게도 뉴욕에서 먹은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한국에서는 너무 흔하디 흔한 이 순두부찌개가 뉴욕에서는 내가 선정한 가장 최고의 맛집이었다. 아무튼 한국식 뚝배기만큼 내 따뜻하게 마음을 채워주는 음식은 없었다.
많은 외국인 친구가 말하는 한국의 불편한 민낯 중 하나는 인종차별이다.
성격이 내성적인 필자는 운이 좋게도 미국에서 미국인 친구들을 여러명 사귈 수 있었다. (평소 내 성격을 생각하면 이는 기적이었다.) 사실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었는데, 그 중에는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한 친구들도 있었다. 하루는 친구들에게 미국에서의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미국에서의 인종차별 문제는 여전히 심한 정도가 아니라, 극심했다. 그러다 불연듯 한국의 모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처음 친구들은 좋은 얘기만 해주었는데, 어쩐지 내게 무언가를 계속 숨기는 것 같았다. 그러자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 한국도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인종 차별이 적지 않아. 우리 대부분이 인종차별을 경험했어."
그 친구가 들어준 한국의 모습은 조금은 낯설었다. 흑인(African-American)이었던 그 친구는 대체로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있었지만, 미국에서의 기준으로는 인종 차별로 여길만한 대우를 종종 받았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도 인종에 상관없이 저마다 자신들이 겪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작게는 편의점에서 줄을 서면서 겪은 알바생의 조금은 남다른 대우(아마 이는 영어 울렁증으로 그런 것 같았다.), 크게는 길을 가다 만취한 사람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일까지 있었다.
그 중에서 내 머리 속에서 큰 여운으로 남은 얘기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외국인들의 대한 풍자가 희극의 소재로 이용된다는 것이었다. 여러 희극 장르를 보면 외국인 노동자의 어눌한 말투나, 흑인 모습을 짙은 화장을 통해서 묘사하고 웃음의 소재로 활용한다. 물론 희극인들이 인종 차별을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행태 자체는 과거 미국에서 인종 차별이 극심할 때부터 행해진 일 들이었다. (특히 과거 미국에서 인종 차별이 극심할 시, 흑인을 묘사하는 짙은 화장은 여전히 한국 희극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과거에도 몇몇 연예인들의 흑인 분장 행동이 논란이 되었고, 대중들은 이에 대한 시선이 갈렸지만, 이러한 희극의 소재는 다름이 아니라 잘못된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럽게도 나 역시도 이에 대해 떳떳할 순 없을 것 같았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한국인의 기준은 그 사람의 피부 색깔로 정해진다는 암묵적인 우리 내의 사회 편견이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한국은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
미국에서 발견한 다소 놀라운 점은 사회 곳곳에 장애인들을 배려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미국은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모습이라서 자칫 장애인에 대한 배려나 관심이 그렇게 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뜻 밖에도 한국에서보다 정말 몇 발자국 더 앞서간 미국의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을 볼 수 있었다.
하루는 워싱턴에서 친구를 만나러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에 버스보다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느라 버스 승하차 시스템이 어떻게 되는지 몰랐다.(하차 태그 없이 승차할 때만 교통 카드를 찍으면 되는 것 같았다. ) 그래서 시간도 때울 겸 버스를 유심히 관찰했다. 승객을 가득 채운 빨간 버스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고 난 뒤, 갑자기 버스가 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난 처음에 바퀴에 펑크가 난 줄 알았다. 이윽고 기울어진 버스에서 나온 것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승객이었다. 한국에도 저상버스가 있었던 것 같은데, 사실 그렇게 자주 보기도 힘들었고 어쩐지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편리하다는 생각도 들진 않았던 것 같았다. 무엇보다 버스 기사가 직접 장애인을 위해 휄체어에 안전 고리를 채워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경험했던 한국 버스 기사님들의 다소 난폭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이는 분명 기사님들의 말도 않 되는 장기간 노동의 피로로 인해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사님들께 늘 감사드린다.)
한편, 또 다른 일도 있었는 데, 내가 거주했던 지역은 사실 다소 집 값이 저렴한 대신 치안이 그렇게 좋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다보니 다소 불량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피하게 되었다. 사실 필자는 동양인이고 체격도 왜소하다보니 인종차별을 워나 자주 당해서 그런 곳을 더 피하게 되었다. 마약 냄새도 워낙 많이 났다는 것은 덤이다. 어쨋든, 그러한 곳에 휠체어를 탄 분이 지나가게 되었다. 나는 선뜻 불량해 보이는 그들이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뜻 밖에도 한 불량해보였던 청년이 나아가 그 휠체어를 탑승한 분을 도와주며 직접 버스까지 탑승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 순간 머리를 크게 얻어 맞은 듯 했다. 그 외에도, 코로나 방송을 하면서 늘 항상 볼 수 있는 것은 수화 통역사며,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든 자동차 등을 보면서 여러모로 이런 점은 미국이 선진국이라는 이유가 있구나라고 느꼈다.(한국도 물론 좋은 면과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글이 너무 길어졌다.
원래 이외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느꼈던 색다른 점들이 즐비하다. 어쨋든 글을 다 써놓고 보니, 조금은 한국 사회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이야기가 많았는 데, 사실은 긍정적인 모습들도 굉장히 많았다. 그러나 칭찬은 조금 뒤로 미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늘 지향해야 할 점은 이제는 우리 사회가 보다 타인을 위해 포용해야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나 싶다. 나 역시도 외국인에 대한 문제, 몸이 불편한 이들에 대한 문제를 잘 안다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이러한 논제가 우리 사회에 보다 중심으로 들어와서 함께 논의되면 좋을 것 같았다. 아마 그 때가 된다면, 우리 사회가 해외의 유명 버거 집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들이 사회 내에서의 인종 차별과 장애인들의 불편한 삶에 대해 어떤 해결 방향을 가지고 임했는지가 더욱 관심이 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