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이 다가오다 보니, 가끔씩 청승 맞게 예전에 내가 했던 일들을 떠올리곤 한다. 소심했던 나는 많은 기회들을 놓치기도 했고, 가끔은 용기를 내서 잡은 적도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 일은 ‘장애학생도우미’를 한 일이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친구와 같이 수업을 듣고, 이동을 도와주면서 학교 안에서의 장애인의 삶이 매우 고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루는 그 친구가 내게 책을 하나 빌리고 싶다며 같이 도서관에 가자고 했다. 당시에는 조금 바빠서 혼자가면 될 텐데 왜 내가 필요할까 싶었다. 그래도 같이 가기로 했다. 도서관에 도착하고 나니 그제서야 그 친구가 나랑 같이 가자고 한 이유를 깨달았다. 도서관에 들어오니 막상 휠체어를 타고서 책을 고를 수 없었다. 어쩌다가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서가 사이를 발견하더라도, 책을 찾은 후 다시 나오려면 서가(書架) 전체를 돌아야 했고, 그 마저도 모퉁이가 너무 좁아 휠체어가 돌 수 없었다. 이러한 경험은 장애 학생들이 도서관을 쉽게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라는 인상을 안겨주었다. 왜냐하면 장애인은 도서관을 혼자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한 교양 수업에서 프랑스의 ‘샹 리브리 도서관’이라는 곳을 접하게 되었다. 이 도서관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도서관 입구에서부터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모퉁이가 없었고(Barrier-Free), 시각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는 오디오 시설(오디오 북 공간)도 있었다. 그 중 무엇보다 내 눈에 띈 것은 낮은 서가(書架)였다.
서가가 낮으면 우선 도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경우 타인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원하는 책을 알아서 고를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장애인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동정(同情)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아니나, 생각을 한 단계 올려서 장애인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지향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정보의 접근권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은 장애인의 존엄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몸이 불편한 친구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기보다는 본인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을 더 바라곤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의 건물들은 장애인이 홀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기보다는, 그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여기고 그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시설을 건축하는 듯하다. 보호 시설에 대한 투자에 비해 점자 도서관 등과 같은 정보의 접근성에 대한 지표는 매우 낮거나 거의 증가가 없는 상태이다. 만일 우리가 사회에서 진정으로 장애인을 약자라는 이름으로 배제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려면 그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이러한 도서관의 설치는 첫째로는 면적 대비 서적 용적의 비효율성을 유발하고, 그에 따라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을 수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선 서가 용적의 경우, 도서관 근로 학생으로 일해본 결과에 의하면 도서관 내부 보존 서고에 많은 양을 보관함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책은 대개는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으므로 이를 부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느꼈다. 비용의 측면에서는 이제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의 가치에 대하여 새로운 정립을 할 필요가 있다. 서글프게도, 개발 경제의 시기에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처우에 대한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현재는 GDP 및 세계의 위상 속에서 한국은 좋든 싫든 선진국의 위치에 도달했다. 그러나, 선진국이란 GDP의 요건만 충족하는 것이 요건이 될 순 없다. 이는 사회 약자들에 대한 권리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부여하고, 구성원들이 함께 얼마만큼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하는 데에 더 큰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볼로냐 프로세스를 통하여 장애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프랑스는 CDAPH라는 부서를 통하여 이들의 교육과 건강을 전담하고 있다. 반면, 과거 2018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장애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24%이다 (우리나라 총 대학 진학률 70%).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정보의 접근권이 훼손된 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그들의 빈곤은 심화되고 사회에서 더욱 더 소외되고 말 것이다. 그러한 사회가 과연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인지는 다시 한 번 되물어 봐야한다. 높은 서가 대신, 낮은 서가를 하는 것은 어려운 디자인이 아니며 오히려 만들기 쉬운 디자인이다. 그러나 쉽게 볼 수 있는 디자인이 아니다. 이러한 디자인에 대해서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보다는 그 사회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와 불편함을 감수하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결심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낮은 서가는 단순히 정보의 접근권에 대한 의미만을 함의(含意)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한 공간에서 어울리는 공간의 제공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서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턱을 허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들은 이웃이지 나와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만일 휠체어를 탄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책을 읽으며, 차별과 편견없이 자란다면 그것만큼 우리 사회에 귀중한 가치가 어디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