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라는 함정

by 하루


이제는 졸업을 했지만, 그래도 본인이 다녔던 학교가 나름 명문대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나서 가장 뼈 져리게 느꼈던 것은 어쩌면 내가 명문대라는 함정에 빠졌던 것은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느꼈던 것은 명문대가 주는 환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엑셀을 다루고, 얼마나 포토샵을 잘 할 수 있는지였다. 그때 내가 조금은 삶을 다른 방향으로 살았어야 했다는 것을 느꼈다.


다들 알다시피, 한국에서의 젊은 20대에게 성공이라고 여겨 질 수 있는 가장 또렷한 척도 중 하나는 사실 명문대에 진학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강남 대치동 학원에서는 늦은 밤에도 잠 못 이루는 학원 강사와 학생들이 줄을 지어 있고, 집안 대대로 내려온 논 밭을 팔고서라도 자녀의 대학을 위해 헌신했다는 이야기들도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명문대란 일종의 성공의 척도이며,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수단임을 의미한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젊은 나이의 설 익은 성취는 종종 본인에게 함정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과거 조선시대의 사회에서는 인생의 가장 불운한 것 중 하나가 소년급제라고 한다. 이른 20살 혹은, 종종 그보다 어린 나이에 온 사회가 우러러보는 성취는 알게 모르게 본인을 사로잡는 올가미를 드리우게 한다. (사실 대학 입학 자체를 소년급제에 비유하는 이면에서 이미 허영심을 포함한다.)


이러한 올가미는 종종 명문대가 주는 안정감에서 비롯된다.

전투 중에 있는 군인은 생존을 위해 언제나 분주히 뛰어야 하기에 군더더기 살이 붙을 여유가 없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한낱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물론 돌이켜보면, 내 스스로는 이를 자각할 기회가 숱하게 많았다. 한번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사실 학벌이 좋다거나 무언가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되어 있진 않았다. 그러나 대학에서 공부만 하며 보낸 나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활 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그들과는 벌써 일하는 솜씨에서부터 차이가 많이 났다.


특히 포스기 다루는 것은 매순간 공포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많은 주문을 어떻게 그리 빠르고 정확하게 하는지, 또 커피 종류는 왜 그리 많은 지(개인적으로는 세상에 커피는 아메리카노와 모카면 충분한 것 같았다.)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동료들의 삶 그 자체였는데, 비록 이 가게에서 알바를 하고 있음에도 주말이나 혹은 새벽녘에 일하는 곳이 또 있었고, 나와 비슷한 연배의 한 사람은 본인의 가게도 시작했었다. 그때 내가 온실 속의 화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 달 남짓 일한 곳에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나와버렸다. 사실 일이 힘들기 보다는 좀 더 다른 일이 있어서 그런 거긴 한데, 이는 나중에 얘기 해야겠다. 어쨌거나 그러한 일은 책상 위의 공부보다는 현장 속에서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쉽게도 알바를 끝내는 바와 동시에 이러한 깨달음도 손잡고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내 주변에 나와 같은 이들을 꽤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학은 막상 좋은 대학이라고 들어왔는데, 막상 대학 생활에서 배운 것들은 사실 과시적으로 보이지 않고, 비범한 외국어 능력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평범한 소프트웨어조차 사용하기 버거워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언제부터인가 명문대라는 환상이 주는 안정감이 본인이 커 가는 데에 걸림돌이 되었다. 문제는 그것을 깨닫기가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비교하면 안 되지만, 생산적인 발전을 위해 비교하자면 내 주변에는 대학은 평범하지만 본인이 대학생활에서 꾸준히 노력하고 갈고 닦아, 역량이나 경험에서 감히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분들을 많이 보곤 한다. 종종 함께 얘기를 나누어보면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고, 나에 대한 부러움으로 대화가 끝을 맺기도 한다.


내가 무엇이라도 가진 게 있으면 그러한 부러움도 받아주겠지만, 진정으로 그러한 꾸준함과 긴장으로 발전한 그들이 존경스럽고 부러웠다. 내가 좀 더 이를 빨리 깨닫고 실천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사회는 대학에 대해 지나친 무게감을 둔다.

물론 취업 시장이나 그 이후에 여전히 큰 부분으로 차지하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긴 하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미국에서 일 할 때는 이런 것이 전혀 중요치 않았다. 실무적인 능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혹시나, 독자 중 몇몇이 명문대 학생이라면, 부디 명문대라는 환상에서 스스로 한 걸음 나와서 사회라는 현실에 마주치길 바란다. 명문대라는 자부심은 종종 오만과 무지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독자가 명문대가 아니더라도 부디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무적인 능력을 늘리고 자기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한국에서 대학의 간판이 주는 이점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게 전부도 아니다. 대학은 정말 시작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이라는 주제가 워낙 민감해서, 어쩐지 자기검열을 여러 차례 하게 된다. 어쨌거나, 비단 명문대 뿐만이 아니라 본인이 안주할 수 있는 모든 요소에 경각심을 가질 필요는 있다. 그 영어 속담에 보면 쇠는 안 쓰면 녹슨다고 한다고 하니까. 사람도 정말 마찬가진 것 같다. 본인이 꾸준히 갈고 닦고 노력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현실 감각을 가지고 임하는 것이 이러한 본인이 놓인 숱한 함정에 빠지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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