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라는 습관

by 하루
시간이 흘러가면서 대학교 시절의 낭만보다는 사회라는 현실에 보다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풋내기 학생처럼 생각하는 일들은 여전하지만,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이제는 조금씩 그러한 때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기임을 자각하곤 한다. 그래도 좋은 것은, 주위에서 좋은 직장을 가졌거나 자신의 인생 향로가 뚜렷한 친구들의 소식을 들으면 시기나 질투보다는 축하하는 마음이 앞 선다. 물론 여전히 마음 한 켠에는 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나쁜 습관이 여전히 있긴하다.


비교라는 습관. 언제 부터인지는 내 자신을 돌아볼 때마다 한 가지 드는 생각은 '난 왜 이것밖에 못하지' 였다. 주위에 보면 정말 잘 된 사람들이 많다. 공부를 열심히 하여 대학원에 가게 된 친구, 취업을 정말 끝내주는 곳에서 하는 친구, 나아가서 어쩌면 저렇게 좋은 이성 친구를 두었을까라는 친구.

사실 생각해보면, 이러한 비교라는 습관은 나 하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특히나, 한국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유난히 관심이 많다. 이러한 점이 한국 사람이 외국에 나가면 때로는 무례하게 보이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사람 지금 어디 취직했어, 돈은 얼마나 벌어, 결혼은 했어' 등등 생각해보면 굳이 몰라도 되는 질문들을 너무나 당연한 듯이 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질문의 근본적인 배경은 우리의 행복은 타인의 행복과의 비교를 통해 체감할 수 있다고 여김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나 자신만의 삶과 여유,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게 보다는 그 친구 보다 얼마를 벌고, 그 사람보다 얼마나 여유를 갖고, 혹은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독특한 취미를 갖는 가에 따라서 행복을 저울질 한다. 나라고 별 반 다를게 없지만, 그래도 이러한 삶이 결코 자긍심을 갖거나 삶의 깊이를 누릴 만한 태도는 아닌거라는 것은 자각하고 있다.


자신의 삶과 타인 삶을 현명하게 분리해보는 건 어떨까.

사람마다 인생의 단계와 이야기는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삶은 수학이 아니기에 또렷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암기해서 풀 수 있는 문제들도 아닐 것이다. 굳이 떠올려보면, 이런 일이 벌어질려나 하는 정말 말도 안될 것 같은 소설이 우리의 일상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타인의 행복을 존중해주고, 나는 내 인생을 사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행복해 질 수 있는 일이다. 참다운 종교인들의 삶 자세도, 사실 돌이켜보면 이러한 규범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워싱턴의 한 지하철에서 만난 40대 아저씨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자기의 여느 자기 친구들과는 다르게 본인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아왔다고 했다. 학생들을 가르쳐도 보고, 농사도 지어보고, 세계 각국을 여행도 해보고 있단다. 불혹이 넘은 나이임에도 수익이 좋은 직장도, 안정적인 터전도 없었던 그가 선뜻 행복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그의 친구들은 모두 사회가 정해준 성공의 잣대에 기대어 살아왔다가, 지금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본인이 잘못된 삶을 살고 있음을 털어 놓곤 한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런 그의 삶의 여정을 들으면서 과연 나는 올 바른 잣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다시 돌아와서, 비교라는 습관은 자기의 삶을 한 단계 높여주는 날개의 역할도 하지만, 대개는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짐과 같다. 긴 여행 속에서 몇 가지 마음 속의 짐은 좀 내려두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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