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가면,
대학교 3학년이 될 무렵, 가슴 속 한켠에 어떠한 아쉬움이 있었다. 좀 처럼 왜 그러했는지 잘 알 순 없었지만, 이렇게 대학 생활을 마치고 싶진 않다는 것과 현재와는 다른 경험을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순 없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어떤 삶을 살게 되던, 많은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서 매일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창가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공부를 끝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밥을 먹으러 가는 모습도, 악기를 다루며 노래를 부르는 동아리 학생들의 모습까지 아름다운 풍경이며, 때로는 지리한 도서관에서의 시간을 환기시키곤 했다. 더는 늦기 전에, 나를 깨우고 싶다는 노랫말 가사처럼 그러한 계기가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때처럼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우연찮게 한 정부 프로그램을 알게되었다. 해외로 보내는 프로램이었는데, 때마침 정부 지원금도 상당해서 어쩌면 내가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여러 우여 곡절 끝에, 마침내 참가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긴 사연을 한 문장으로 표현했지만 정말 합격하는 과정이 내게는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미국에 도착하고 나니, 처음 느낀 감정은 황량한, 외로움, 후회 였다. 지하철에서 만난 아저씨를 뒤로하고서는 함께 말을 나눌 사람도, 나를 반겨 줄 사람도 없었다. 무엇보다 새벽이 었는데, 길거리에 노숙자와 동양인인 내게 가운데 손가락을 거리낌없이 보내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나마 한국에서도 종종 갔었던 카페가 있길래 잠시 들려 몸과 마음을 달래고자 했다. 그런데 아뿔싸. 주문을 할 줄 모르겠다. 비록 영어를 나름대로 공부해서 간다고 했지만, 정작 이러한 실생활에서 필요한 영어를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처음에는 최대한 영어 발음을 한다고 생각하고 '카라멜 마끼아또'를 주문하고자 했다. 그러자 종업원은,
"Could you say that again ?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라면 다시 물었다.
그래 한번은 못알아 들을 수 있으니까 다시 카라멜 마끼아또를 정말 정직하고, 또박하게 발음했다. 그러자 그 종업원 인상을 찡그리면 우리가 판매하는 커피가 맞냐고 다시 물었다. 내 눈 앞에 카라멜 마끼아또가 훤히 보이는데, 그걸 주문하지 못해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발음하기 쉬운 카푸치노를 주문하기로 했다. 카푸치노는 또박 또박 발음해도 잘 이해했다.
그렇게 얼굴이 빨개져서 원치 않은 커피 한 잔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아마 그때가 처음 미국에서 맞닥뜨린 큰 위기였다. 난생처음 당해 본 인종차별이며, 영어도 잘 사용할 수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던 그 첫 날, 그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때 스친 기억 속에, 문득 내가 한 때 2년동안은 대한민국의 군인이었다는 게 떠올랐다. 농담이 아니라, 그때 내가 겪은 고생들과 불안들도 결국에는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러자, 마음을 좀 더 강하게 먹어야 되고,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리에 일어나 다시 종업원에게 가서, 주문을 했다. 카라멜 마끼아토는 아니었지만, 카푸치노 한 잔을 더 주문하며 다짐했다. 꼭 적응해서, 절대 포기하지 말기로. 그리고 어쩌면 여기 미국에서의 고생이 나중에 내게 또 다른 시련을 이겨낼 기억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 이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