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어느 복합 쇼핑몰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일이다. 나는 안내소 직원으로, 쇼핑몰 관련 정보를 방문객에게 알려주거나 편의에 도움을 주는 일을 했다. 이 쇼핑몰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외국인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주요 인기 브랜드와 레스토랑, 문화공간, 엔터테인먼트* 시설 등이 입점했기에 한국 관광 필수 코스로 인기가 식지 않는다.
내가 만난 외국인들은 나에게 주로 길을 물어보았다. 그중에서도 Top2는 기념품샵과 화장실 문의였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기념품을 사는 일과 화장실을 찾는 일은 모두 중대하다
일본인 여성 : トイレ はどこですか?(화장실은 어디인가요?)
미국인 남성 : Where's the restroom?(화장실이 어디예요?)
동남아 단체 관광객 : Cửa hàng bán đồ lưu niệm ở đâu vậy?(기념품 매장이 어디 있어요?)
프랑스 모녀*: Y a-t-il un endroit où je peux acheter des souvenirs?(기념품을 살 수 있는 곳이 있나요?)
여기는 한국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은 한국말로 질문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외국인이 대체로 모국어로 질문을 한다. 만약 모국어를 내가 알아듣지 못하면 영어로 질문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에 오면 왜 한국말을 안 할까?
나는 궁금했다. 왜 외국인 관광객은 한국에 올 때 한국말을 안 배워오는 것일까?한국인들은 외국에 갈 때 보통 그 나라의 말을 배워서 가거나 가이드*가 동행하는데, 대다수의 외국인들은 그렇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의문점. 외국인은 자신의 모국어를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할때, 수많은 언어 중에서 왜 영어로 대체하여 말하는 것일까?
이 두 가지 의문점에 대한 대답은 외국인에게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언어적 환경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 대답 :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어는 난이도가높은 언어이다.
FSI에서 분류한 언어난이도. 미국인 입장에서 한중일 언어가 가장 배우기 어렵다고 한다<jtbc 비정상회담 방송 캡처>
위에 사진을 보자. 미국 정부기관 FSI*에서는 언어의 난이도를 다섯 등급으로 분류했다. 미국인이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울 때 쉬운 정도에 따라 나눈 것이다. 1부터 5까지 숫자가 커질수록 배우기 어려운 언어임을 나타낸다. 가장 낮은 등급인 LEVEL 1은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LEVEL 5에 해당하는 언어는 '공부하기 위한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여야 함'을 뜻한다.
미국인들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덴마크어가 상대적으로쉽다로 느낀다. 하지만 한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중국어는 가장 배우기 힘든 언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 대만인, 이란인 등은 특히 한국말의 숫자와 발음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일본인은 'ㅗ'와 'ㅓ'의 발음이 어렵다. <jtbc 비정상회담 방송화면 캡처>
일본인은 모음과 자음의 차이를 모두 구분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없는 이유가 있다. 일본어는 한국어와 달리 받침이 발달하지 않았다. 또한 두 언어가 소리 나는 원리도 다르다. 그래서 발음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면 홈런을 일본인은 '호무란'이라고 한다. 그리고 크림빵은 '크리무빵'이라고 발음하고, 베이글은 '베이구루'라고 말한다.
일본인은 한국의 모음 중에서도 ㅗ[오]와 'ㅓ[어]'의 발음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어는 모음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오징어, 엉덩이 등 모음이 많이 들어가는 단어의 발음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자음 중에서는 ㄸ[쌍디귿]과 ㅌ[티읕]의 발음이 잘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국인은 통장이라고 할 때, 일본인은 똥장이라고 말하게 된다. 일본인의 시점에서 통풍을 통풍이라고 말하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똥풍으로 발음할 때가 많다.
노르웨이인, 대만인, 일본인은 한국의 숫자표현이 헷갈린다 <유튜브채널 어썸코리아>
또한 대만인, 이란인, 노르웨이인 등은 한국말에서 숫자를말하는 것이 특히 어렵다고 말한다. 한국의 숫자체계는 고유어*와 한자어*를 동시에 사용한다. 순우리말로 숫자를 셀 때는 하나 둘 셋넷으로 이어지고, 한자어로 셀 때는 일 이 삼 사로 이어진다.
시간을 말할 때 3시는 세 시가 되고, 3분은 삼 분이 된다. 나이를 말할 때는 11살이라고 하면 열한 살로 읽고, 11세라고 하면 십 일 세라고 읽는다. 외국인이 시간을 셀 때 세 시를 삼 시로 말하기도 하고, 삼 분을 세 분으로 말하기도 한다. 나이를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열과 십, 그리고 하나와 일의 구분이 어려운 것이다.
위의 사례와 더불어 외국인이 한국어를 어렵다고 느낀 '구체적인 이유'는 또 무엇이 있을까?
잠시 외국인의 입장이 되어보자.
미국인은 다른 언어에 비해 한국어를 배울 때가 가장 힘들다
[사례 1] : 생략된 단어
"여기 자리 있어요"는 자리가 있으니 앉아도 된다는 뜻인 줄 알았어요.
외국인 A 씨 :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앉으려는데 어느 한국인 분이 '여기 자리 있어요'하더라고요. 자리가 있다는 건 빈자리가 있다는 말 아닌가요? 그런데 알고 보니 자리를 맡아놓았다는 뜻이었어요."
-> '여기 자리 있어요'는 '여기 자리 주인 있어요'라는 말이다. '주인'이라는 단어가 생략되면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인들은 숨은 단어를 파악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사례 2] : 복잡하고 긴 문장
"맛이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다"는 무슨 말이에요?
외국인 B 씨 : 저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요.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있어요. "맛이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다"(맛있다는 건지 맛없다는 건지), "갔다 오랬지 오지 말라고 안 했잖아"(가라는 건지 오라는 건지)등등 너무 헷갈려요. "잘하면 못할 듯?"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 한국인은 때론 복잡한 문장으로 의미를 강조한다. '맛이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다'는 결국 '음식이 맛있다'는 뜻이다. 음식의 맛있는 속성을 부각하기 위해 길게 표현한 것이다. 미국인에게 이러한 복잡한 문장들은 헷갈린다.
[사례 3] : 단어의 결합
"학원을 끊었다면서? 그런데 다닌다고?"
외국인 C 씨 : 새로 사귄 한국인 친구가 학원을 끊었대요. 그래서 학원을 그만둔 줄 알았어요. 나중에 친구가 하는 말이 학원을 '끊었다'는 것은 그만둔 게 아니라 다닌다는 의미라고 하네요.
또 다른 한국인 친구는 탄산음료를 끊었다고 했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탄산음료를 먹기 시작했구나"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 더 이상 먹지 않는대요. 한국어는 앞에 어떤 단어가 오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어요.
-> 한국어는 동작을 나타내는 말 앞에 어떤 단어가 오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외국인은 단어의 결합에서 발생하는 의미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사례 4] : 단어의 선택
'여행을 준비해, 대비해, 마련해 이 중에서 어떤 단어를 써야 맞는 거지?'
외국인 D 씨 : 평소 알고 지내던 한국인 부부와 저희 부부는 여행을 가게 됐어요. 그때 제가 "여행을 대비하자"라고 했는데 "대비해" 보다는 "준비해"가 좀 더 자연스럽다고 알려주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대비'는 쓰지 말고 '준비'를 사용하자고 생각했어요. 다음 날, 여행 중에 교통상황에 문제가 생겼어요. 저는 "대책을 준비하자"라고 모두에게 말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대책을 마련하자"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하네요. 저는 '준비하다'와 '마련하다'의 차이를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영어로는 모두 'prepare'라고 하니까요.
->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다수의 한국어가 하나의 영어 단어로 바뀐다. 예를 들어, 준비하다도 prepare이고, 대비하다도 prepare이고 마련하다도 prepare이다. 그래서 준비, 대비, 마련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단어를 선택해서 말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두 번째 대답 : 외국인들은 일상에서 한국어를 접하기가 쉽지 않다.
먼저, 다음의 6장의 사진을 보자.
첫 번째 사진은 뉴욕시내를 걷다 보면 볼 수 있는 거리의 표지판이고, 두 번째 사진은 뉴욕 지하철역 엘리베이터이고, 세 번째 사진은 뉴욕 한 카페의 메뉴판이다.
뉴욕의 거리 / 지하철역 주변의 모습 / 카페 메뉴판.
그리고 이어지는 사진 세 장을 살펴보자.
맨 왼쪽사진은 이수역 주변의 모습이며, 중간사진은 지하철역 안에 있는 표지판이고, 맨 오른쪽은 투썸플레이스 카페 키오스크 주문화면이다.
한국의 거리 / 지하철역 주변의 모습 / 카페 키오스크 화면.
뉴욕의 길거리, 지하철역, 카페의 공통점은 한국어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언어가 영어로 되어있다. 거리의 표지판은 화살표와 알파벳뿐이고, 지하철역 노선도도 온통 영어로 쓰여 있다. 카페도 그렇다. 카페 메뉴판에는 커피가 담긴 잔의 그림과 함께 메뉴이름부터 설명까지 모두 영어로만 적혀있다.
반면 한국의 거리와, 지하철역, 그리고 카페에서는 영어를 자주 볼 수 있다. 표지판은 한국어와 영어가 같이 표기되어 있으며, 지하철 출입구 안내기둥에서 한국어, 영어뿐만 아니라 한자까지 볼 수 있다. 심지어 투썸플레이스 카페의 키오스크 화면에는 미국, 일본, 중국의 국기를 표시하여 메뉴판이 각 국가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미국인은 뉴욕과 한국에서 모두 영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한국은 낯선 곳이지만 어디든지 영어 표기가 잘 되어있으며 이용이 편리하기 때문에 한국말을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의 상황은 어떨까?
일본, 프랑스 시내 표지판
왼쪽 사진은 일본 삿포로의 jr전망대 표지판이고, 오른쪽 사진은 프랑스 나스 공항의 표지판이다. 두 표지판에는 모두 각 국의 언어와 영어가 병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외국인들은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소통할 때, 영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언어가 달라서 생기는 혼란에 대한 나의 생각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각국의 언어는 존중되어야 마땅하지만, 의사소통이 필요한 상황에서 각자의 언어를 고수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둘 다 자신의 언어를 양보하지 않으면 소통의 장벽은 깨지지 않는다. 결국 한쪽은 상대방의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 그게 맞는 걸까? 제3의 언어로 소통하는 것은 또 옳은 것인가? 언어가 달라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언어를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상황도 존재하기에 적당한 답변은 힘들다. 하지만 '언어에 대한 부분은 이렇게 하자'라는 사회적 약속의 명시는 필요해 보인다.
*엔터테인먼트 : 인간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모든 것
*모녀 : 어머니와 딸을 일컫는 말
*가이드 : 여행 안내원. 여행객을 관리 및 인솔하고 통역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FSI : Foreign Servic Institute의 약자. 해외에서 일할 미국 외교관들에게 해당 지역의 언어를 가르치는 정부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