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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호 Feb 17. 2018

#2017. 09.20 델리에서 아그라 가는 길 인이

하루하루 스펙터클 한 인도 생활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 인이: 인도이야기의 줄임말. 다음(daum) 포털사이트에 인이를 검색하면 글이 나옵니다.


델리에서 아그라로 가는 길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체크인할 때 돈 냈잖아”

 “여기 적혀있는 건 네가 돈 안 냈다는데?”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갔더니 직원은 1035루피를 요구했다. 어이가 없어서 직원 얼굴을 뻔히 쳐다봤다. 직원은 계속해서 돈을 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나씩 따지고 있는데 소리가 컸는지 여행매니저가 카운터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말했다.

“헤이 브로 무슨 일이야? 무슨 문제라도 있어?”

“분명 체크인할 때 돈을 냈는데 돈을 또 내라고 하잖아”

그는 장부를 대충 훑어보더니 말했다.

“아 그냥 가~ 괜찮아”

 1분도 안돼서 문제가 해결이 됐다. 가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사진 한 장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사진을 찍을 땐 웃어야 한다는 생각에 웃으면서 엄지를 치켜들고 사진을 찍었다.)을 남기고는 바로 떠났다.


    숙소 앞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뉴델리역으로 향했다. 툭툭의 호객 행위와 신호등이 없는 6차선 도로를 건너니 뉴델리 역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어김없이 큰 전광판 밑에서 짐을 배게 삼아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아기를 안고 잠을 자고 있는 아주머니부터 얇은 모시옷을 입은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 자리를 잡았다. 까치발을 들고 사람들을 피해 플랫폼 안으로 들어갔다. 


    기차를 놓치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 2시간 일찍 도착했다. 기차가 올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어제 쓴 글을 읽고 있었다. 글에 몰두하고 있는데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인도 남자 2명이 내 주변을 계속 서성였다. 때 마침 주위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동행을 감시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을 때 바로 반격을 할 수 있게 몸을 틀었다. 그들은 몇 분간 내 주변을 서성이더니 내 앞으로 왔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바닥에 앉지 말고 저기 밴치에 앉아”

“아니 괜찮아, 바닥에 앉을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계속 거절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의자에 앉으라고 권유했다. 계속되는 권유에 어쩔 수 없이 의자에 앉았다.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며 여유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계속되는 질문 공세에 슬슬 마음이 풀렸다. 그들은 나쁜 의도로 접근한 게 아니었고 외국인에게 호의를 취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페이스북 친구를 맺은 후 헤어졌다.


    시간이 되자 기차는 다행히 제시간에 들어왔다. 드디어 처음으로 소문이 무성한 인도 기차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말하는 바퀴벌레와 쥐는 보이지 않았고 기차 안은 생각보다 깔끔하고 아기자기했다. 내 자리를 찾아 짐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창문을 쳐다봤다. 창문 밖으로는 소 한 마리가 기찻길을 걷고 있었다. 놀란 나머지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소가 맞았다. 소는 기찻길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걸어 다녔다. 창문을 보는 사이 내 옆자리와 건너편 자리에 사람이 앉았고 기차는 출발했다.


      기차가 조금씩 움직이자 티켓 검사관은 돌아다니면서 티켓을 검사했다. 티켓을 보여주고 창문을 다시 보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나타났다. 기찻길 바로 옆 조금 한 공간에는 4인용 텐트 크기의 천막이 줄지어 쳐져 있었다. 천막 앞에는 낡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었고, 애기들은 팬티를 입은 채 기찻길 주변을 뛰어다녔다. 말로만 듣던 불가촉천민이었다. 계속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려왔다. 기차에 앉아있는 인도 사람들을 보니 대수롭지 않게 쳐다봤다. 계급사회가 존재했던 나라였지만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인생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달랐고 신분을 바꾸기에 기회조차 없는 듯 보였다. 그들을 보면서 인간의 욕심은 과연 어디까지 일까 라는 생각에 잠겼다. 자기가 어디서 태어났건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행복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나부터 다시 돌아봤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보다는 나만 위해서 돈을 썼는지, 등을 돌리지는 않았는지 생각을 했다. 내가 오직 할 수 있는 건 인도 여행을 하는 동안이라도 인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과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날씨가 나른한 나머지 창문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옆에 앉아있는 인도 남자 두 명은 소리를 최대한 키고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난 뮤직비디오를 힐끔힐끔 보다가 심심한 나머지 말을 걸었다

“인도 래퍼야?”

그들은 대답을 안 하고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만 끄덕였다. 갑자기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옆 사람에게 한국 랩을 들려준다며 ‘다이내믹 듀오- 거 품 안 넘치게 따라줘’를 틀었다. 옆에 앉아있던 남자 2명은 뮤직비디오를 끄고 내가 튼 노래를 약 10초 동안 경청하더니 말도 없이 다시 뮤직비디오를 틀었다. 세상에서 제일 민망한 순간이었다. 나의 반응은 같이 리듬을 타면서 박수를 원했는데 너무 오지랖을 부렸다. 노래를 바로 끄고 창문을 보면서 이어폰을 꽂았다. 그리고 혼잣말로 “ 다이내믹 듀오를 못 알아보네” 라며 중얼거렸다. 그 와중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옆에 앉아있던 남자 두 명은 다음 역에서 내렸다.


    기차는 5시간 동안 달려 아그라 역에 도착했다. 역 밖으로 나오자 진풍경이 벌어졌다. 툭툭 기사들과 택시기사들은 나를 태우겠다며 몸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연예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들에게 미안하지만 난 기차 티켓을 사야 한다며 바로 티켓 창구로 향했다.


     1시간쯤 걸려 티켓을 사고 나오자 툭툭 기사 5명 정도가 나를 또 둘러쌌다. 그리고 동시에 어디 가냐며 물었다. 숙소 정보를 보여주면서 한 명씩 눈을 똑바로 보면서 “100루피 Ok?”라고 말했다.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다행히 마지막 한 명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수락했다. 다행히 마지막 툭툭 기사는 숙소 위치와 정보를 알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기에 더욱 신뢰가 갔다.


    툭툭을 타고 숙소로 가는 길에 툭툭 기사는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계속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질문 공세에 들어갔다. 한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부터 몇 살인지 까지 세세하게 물어봤다. 난 핸드폰을 보면서 맞게 가는지 보고 있느라 대답을 잘 해주지 못했다. 지도를 계속 보고 있는데 숙소를 지나쳐 앞으로 직진을 했다. ‘유턴을 하겠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앞으로 계속 직진했다. 분명 툭툭 기사는 숙소를 안다고 했지만 숙소를 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난 핸드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너 숙소 지나쳤어, 이거 핸드폰 GPS인데 너 유턴해야 돼”

“아 유턴해야 돼? 어떻게 가는지 알려줘”

출발하기 전에 위치를 아냐고 3번이나 물어봤지만 잘 아는 곳이라며 호언장담 한 툭툭 기사다.  아마 툭툭 기사는 나를 비싼 호텔로 데려가 커미션을 받을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길을 알려주면서 기사의 얼굴을 봤는데 얼굴이 싹 바뀌었다. 처음 선해 보이는 얼굴과 다르게 눈빛이 날카로웠고 매서웠다.


    지도에 나와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툭툭에 내리려 하자 툭툭 기사는 유턴을 해야 한다며 내리지 말라고 소리쳤다. 유턴을 하고 난 후 툭툭에 내렸다. 지도에 표시돼있는 위치에 숙소가 보이지 않았다. 툭툭 기사는 나를 계속 지켜보면서 숙소가 어딨냐며 물어봤다. 숙소가 없으면 자기가 원하는 숙소에 나를 데리려고 가려는게 뻔히 보였다.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등에서 땀이 주르르 흘렀다. 에라 모르겠다 라는 마음에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기로 했다. 바로 앞에 있는 골목에 들어가 건물 앞에 서니 어떤 우연인지 바로 옆 건물이 숙소였다. 게스트하우스 간판은 아주 작아서 보이지 않았었다. 툭툭 기사는 안타까워하는 눈치를 보내며 돈을 받고 떠났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체크인을 하고 침대 배정을 받고 샤워를 바로 했다. 샤워가 끝나고 큰 수건으로 몸만 가리고 나왔는데 아시안 남자가 나를 뻔히 쳐다보면서 웃었다. 이름은 ‘에이고’였고 일본 남자였다. 남자는 짐 정리하는 내 옆에 앉더니 한국 돈을 주면서 말했다.

“인도 오기 전에 한국에서 여행을 했는데 한국돈 쓸 곳이 없어. 네가 가져”


      그 이후로 우리는 서로 밥을 같이 먹고 서로 가까워졌다. 밥 먹는 사이 숙소 주인 “아쉼” 이 들어왔고 셋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쉼은 몰래 숨겨 뒀던 위스키를 꺼냈고 우리도 가방에 뒀던 과자를 꺼내 분위기를 이어갔다. 술을 마시면서 에이고는 한 가지 고백했는데 샤워하고 나온 나를 보고 웃는 이유가 있었다. 남자를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면서 알아차렸지만 일부로 말은 하지 않았다. 우리 셋은 술을 마시며 서로의 문화를 소개하고 인도 여행 계획을 공유하며 저녁을 보냈다. 

+ (그날 에이고 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4일간 인도 여행을 하면서 몇몇의 사람들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특히 호객 행위와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잘 못 믿었던 것도 사실이고 무엇이든 의심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저녁에는 서로 믿었고 진실이 통했다. 서로의 국적과 피부색이 달라도 진실은 통했다. 힘든 일 뒤에는 좋은 일이 따라왔다. 

 너무 재미있는 저녁이었고 다른 곳에서도 이런 행복한 추억들을 있기를 바랐다.


 From. Toronto

Instagram : Jooho92



델리에 있는 숙소 나오기전 찍은사진


기차 기다리는데 다가와서 사진 찍자는 인도남자


기차안의 모습
기찻길을 돌아다니는 소의 모습
아그라역에 내리기전 사진찍는 주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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