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2019) 리뷰
학기 중에 근무를 하다 보면, 아이들이 다투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들어보면 별것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작은 갈등의 씨앗을 방치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과 최근 예민해진 학교폭력 관련 이슈와 관련하여 자연치유를 위해 방치하기엔 위험 부담이 따른다. 뭐, 갈등을 잘 해결하는 것도 교육의 일부분이 아닌가.
다툰 채 훌쩍이거나 부루퉁한 아이들을 앉혀놓고 나면, 우선 상황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무슨 경위로 이 사달이 났는지를 듣다 보면 대강 사건이 퍼즐처럼 맞춰진다. 중간중간 비어 있는 부분은, 심층 질문을 통해 채워나간다. 그렇게 상황을 복기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 잘못한 부분을 지적한 뒤에 사과를 종용하면, 아이들은 못 이기는 척 서로의 손을 잡고 사과의 멘트를 날린다. 마무리로 교사의 훈계성 멘트를 몇 마디 날려주면 사건 해결! 생활 지도, 말만 거창하지 참 단순하고 쉬운 일이 아닌가!
물론, 세상은 이렇게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열심히 서로의 잘못한 점을 설명하는 동안, 마지못해 인정의 고갯짓을 하는 아이의 표정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하다. ‘그래서, 내가 빡치는데 어쩌라고.’ 건성으로 사과하는 아이는 그나마 양반이고, 끝까지 억울함을 주장하며 울분을 토해내다 씩씩거리며 자리를 뜨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무력감이 온몸을 지배한다. 게다가, 더 힘 빠지는 일은 십중팔구 수 일 내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서로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다! 목청껏 화해의 가치를 피력했던 나의 노력은 숙취처럼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듯하다.
아이들은 왜 이렇게 과거를 쉽게 잊어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화해할 수 있을까. 답은, 아이들의 시선에 있다. 유년기와 아동기를 거치는 아이들의 시선은 대개 현재를 향한다. 그들에게 하루하루는 새로움의 연속이며, 아직 성장 중인 감각과 지성은 당장 밀려드는 자극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턱없이 바쁘다. 과거와 미래는 그들의 머릿속에 틈입하기에 너무나 미약하다. 아이들에게 있어 어제의 다툼은 오늘의 만남에 의해 밀려나는 것이다. 물론, 자리를 차지한 오늘의 만남 역시 내일이 되면 자연히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가며 우리는 점점 과거를 반추한다. 삶의 주체를 구성하는 질료로서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불안이 점차적으로 커진다. 파편화된 과거에서 기억을 해감하고, 불안한 미래의 파편을 잡아보려 애쓰면서 우리는 현재를 낭비한다. 한쪽 눈이 과거를, 한쪽 눈이 미래를 바라보니 현재를 직시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시간의 늪에서 괴로워하던 어른은, 노년이 되어 다시 유아기의 상태로 퇴행한다. 점차 흐려지는 의식 속, 미래와 과거가 희미해져 간다. 이 말은 곧, 시선의 더께에 자리했던 현재가 다시 두 눈앞에 자리한다는 것이다. 의식의 시간성은 선형이 아닌, 어느 순간 휘어진 채 처음을 향해 다시금 수렴한다.
영화 <결혼 이야기>(2019)는 이러한 시선의 시간성을 잘 드러낸다. 작중 찰리(애덤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이혼 조정 중인 부부다. 처음에는 완만하게 합의하려던 부부는, 어느 순간 각자 변호사를 선임하며 점차 첨예한 대립을 이어간다. 이러한 갈등의 근저에는,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과거에 대한 부부의 서로 다른 해감이 자리한다. 찰리의 집에서 찰리와 니콜이 서로 대화하다 감정이 격해지는 지점은, 영화가 비추는 어른의 갈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는 서로는, 기억의 파편을 부지런히 쓸어모으며 감정을 합리화한다. 조각들이 서로 찔리고 베이며 상처 난 마음을 안고, 급기야 기억의 시작점인 서로의 존재 자체에 욕설을 퍼붓는다. 니콜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외치는 순간, 찰리는 흐느끼며 무너진다. 과거를 부정한 인간에게 남는 것은, 과거의 토양 위에 서 있는 현재의 무가치함이다. 끝내 둘의 현재는 완성되지 않는다. 어른의 현재에는 너무나 많은 과거가 자리하고 있기에.
반면, 찰리와 니콜의 자식인 ‘헨리(아지 로버트슨)’의 시선은 현재에 머무른다. 헨리는 엄마와 하는 비밀 보물 찾기에 열광하고, 아빠와의 핼러윈 행사를 지루해하며 집에 가고 싶어 한다. 찰리는 끊임없이 헨리에게 과거 좋았던 추억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헨리의 마음에 가닿지 못한다. 헨리에게 있어 과거는 너무나 멀다. 발 닿아 있는 현재의 틈 안에 기억이 끼어들 공간은 없는 것이다.
결국 찰리와 니콜은 이혼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정기적인 만남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의 경유지에는 헨리가 자리한다. 과거의 망령인 어른들은 현재의 유산인 아이를 통해 이어진다. 물론, 어제의 다툼을 잊어버린 채 오늘의 만남을 즐기는 아이들처럼 살기에 우리는 너무 멀리 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나름의 시선을 조정한다. 비록 과거의 상처는 끝내 흉터로 남았지만, 굳은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가 여전히 흘러가고 있음을 알린다. 그렇게 우리는 기억이라는 섬에서 미래라는 햇살을 향해, 현재라는 바다 위로 배를 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