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렸다. 추적이는 비는 점점 거세지더니, 어느덧 바닥에 웅덩이를 드리웠다. 아이들은 제 몸만 한 우산을 손에 들고선 잔뜩 젖은 바지춤을 올리며 집으로 향했다. 업무와 회의를 끝마치고 털레털레 반으로 돌아온 나는 켜진 모니터를 바라보며 내일 있을 계기교육 자료를 훑었다. 화면 속에는 10년 전 뉴스 영상과 더불어 각종 보도 자료와 인터뷰가 섞여 있다. 영상 제목엔 저마다 공통된 단어가 눈에 띄었다. ‘기억’
‘기억’. 10년 전, 열일곱이던 나의 기억은 동아리방 모니터로 향한다. 커다란 배의 침몰과 전원 구조라는 안도의 헤드라인. 그리고, 곧이어 절망. 생기를 잃은 학교는 당시 대한민국의 모습이기도 했다. 색채를 잃어버린 세상은 사월의 봄비와도 같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긴 장마 속에서, 우리는 사소한 웃음에도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서로 알았다면 친구였을 나이의 소년은, 10년 후 교단에 서서 당시에 태어난 아이들을 마주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그날의 사건들은 기억 밖의 일이다. 물론, 자라면서 무수히 들어왔을 말들로 인해, 아이들은 그날의 슬픔과 고통을 그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다.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인 초등학생들이기에, 아이들은 영상 하나하나에도 어느새 눈물을 머금곤 한다. 타인의 슬픔이 곧바로 나의 슬픔이 될 수 있는 것은 아이만의 능력이다.
자료를 둘러보던 중, 나의 기억을 돌이켜보았다. 비극이 주는 충격과 더불어, 또래를 허망하게 보냈다는 슬픔은, 역시 감수성이 풍부하던 사춘기의 아이들로 하여금 굳은 결심을 하도록 했다. 절대 잊지 않으리라. 노란 리본을 가방에 매단 채로 추모의 물결에 주저 없이 앞장섰던 당시의 우리. 기억은 뼈를 깎는 고통처럼 영원하리라 여겼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교사가 된 지금. 그 시대를 살지 못한 아이들에게 전할 말들을 찾아 헤집은 기억은 생각보다 흐릿했다. 당시의 분위기와 구체적 장면들을 떠올려봤지만, 멀어진 기억은 마음과는 달리 쉽게 형상화되지 않았다. 불완전한 기억을 지닌 교사와 기억 너머에 있는 학생들. 화면 속 글자는 내게 질문했다. 당신들은 추모의 자격이 있는가. 추모란 무엇인가.
화면을 껐다. 의자를 젖히고 눕듯이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약해진 빗줄기는, 그럼에도 여전히 땅바닥에 생채기를 낸다. 매년 봄, 이맘때가 되면 비가 내리는 듯하다. 물론, 불완전한 기억은 그 진위를 확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색채와 냄새, 추적이는 소리와 물결은 당시의 사건과 맞물려 감각된다. 배가 물에 잠기고, 삶과 죽음의 진실이 무질서하게 뒤섞이던 그 봄은 비를 닮았다. 그리고 그건, 기억의 흔적이 아니었다. 바깥으로 손을 내밀면 느껴지는 차가움, 빗물이 옷깃을 스칠 때 스삭이는 소리. 잿빛 먹구름의 색감. 그 봄과 비는 감각의 영역 안에 공존했다. 인간의 불완전함은 고통의 기억을 점차 잃어갔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한 느낌은 몸 안에 명징하게 남아 있다. 슬픔과 먹먹함, 고통과 그리움. 10년 동안의 추모는 기억이 아닌 감각의 과정이었다.
기억은 경험한 자들만의 공유재이다. 그러나, 그 기억 또한 완전하지 않다. 누군가 평생을 이고 갈 기억을, 누군가는 밀려오는 삶의 파도 속에 점점 놓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자 다른 시공간을 살아내던 이들이 한데 모여 행하는 추모에는, 비극에 대한 공유된 감각이 자리한다. 그 날짜가, 노란 리본이 그리도 마음을 흔드는 이유는 우리가 그날의 사건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에서 빠져나와 가만히 봄비를 느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줄기와 어디선가 밀려오는 듯한 그리움의 잔향들. 어쩌면 나의 역할은 이 느낌을 전달하는 게 아닐까. 모니터를 켠 후, 자료 파일을 열고 뉴스를 재생했다. 기억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그날의 감각을 다시 데려오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