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back to me>, RM
삶의 모든 편린은 어쩌면 신성한 고통일지도”
제목을 듣던 날, 나는 이 곡을 회귀에 대한 염원으로 해석했다. 떠나간 편린들에 대한 미련과 희구. 최근 나의 머릿속에 기억과 시간이 가득했기에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순간은 감각하는 동시에 과거가 되어버리고, 점차 옅어지다 종내 사라지고 남은 기억은 불완전하다. 과거의 나는 정말 나일까. 지나온 세계는,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관념으로만 남게 되는가. 떠나온 곳에 우리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단절된 세계는 자연스레 미련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그 세계에 소중한 무엇을 놓고 왔다면 더더욱.
곡의 뮤직비디오는, 한 인물의 여정으로 진행된다. 방과 방으로 겹겹이 이루어진 미로 속에서 그는 다양한 삶을 마주한다. 단란한 가정에서 아내와 아이가 졸린 눈을 부비며 양치를 하기도 하고, 분노에 가득 찬 애인이 램프를 쳐들고 죽일 듯 노려보기도 한다. 행복과 안정, 고통과 분노, 질투 등 다양한 삶의 여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그는 이윽고 고요한 방에 도착한다. 방에는 한 여자가 있고, 둘은 비로소 편안한 모습으로 함박웃음을 짓는다.
다시 첫 장면. 사람들이 웃고 그도 이 분위기에 참여한다. 앞서 관조한 삶은 저마다의 평온과 행복을 되찾았다. 환하게 웃는 그의 앞에, 이윽고 그녀가 나타나 손짓한다. 그는 그녀를 따라 밖을 나서고, 닫힌 문이 비로소 열리며 문밖에는 끝없는 방들로 연결된 미로가 펼쳐진다.
단편적인 기억들이 모여 불완전한 삶을 이룬다. 군데군데 빈틈이 즐비한 삶은, 그렇기에 때론 고통스럽고 지난하며, 행복하다가도 공허하다. 그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기억이 될 삶을 지나고 있기에. 시간은 여전히 흐르며 나는 존재하기에.
가사를 다시 읽었다. 후렴 부분의 가사는 ‘I see you come back to me’. ‘나에게 돌아오는 네가 보여.’ 제목은 ‘나에게 돌아오라’는 회귀의 염원이 아니었다. ‘나에게 돌아온다.’는, 필연적인 직면이자 운명적인 진리였다. 기억은 떠났으며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기억이 될 세계는 여전히 우리 앞에 무수히 존재하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지나온 적 없는 그 세계는, 그러나 낯설지만은 않다. 사각형의 문 너머에는 미래가 있고, 그 미래는 또한 과거를 닮았다. 다이달로스의 미로처럼, 과거와 미래는 연결된 채 얽혀 있고, 현재는 그 사이를 부지런히 오간다. 결국 다가오고야 마는 그 모든 삶의 편린을 마주하며, 그는 신성한 고통을 노래한다. 필연적이기에 고통스러우며, 그러나 존재하며 감각하기에 신성한 그 모든 삶의 순간들. 그는 그녀와 함께 문을 열고 떠나간다. 삶을 향해서. 미래이자 또한 과거인, 그 모든 조각난 세계를 향해.
오, 나는 얼마나 경건한가. 나는 매우 경건하다.
<무용수의 몸>, 알프레드 되블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