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의 귀환
드디어 보호 시크가 돌아왔습니다.
2000년대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 바로 그 룩! 자유로운 감성과 로맨틱한 무드가 뒤섞인 보호 시크는 보호 (boho = bohemian and hippie 의 합성어)와 세련되다의 의미를 지닌 시크(chic)의 합성어로 Y2K이후 전세계를 휩쓴 트렌드입니다. 벨라 하디드를 필두로 붐이 일었던 Y2K 이후 보호 시크가 2024년 클로에의 FW Collection을 시작으로 다시 패션계의 중심으로 떠오르다니! 정말 트렌드는 다시 돌아오는군요.
지금은 미니멀리즘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은 더 로우(the row)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메리 케이트 올슨과 애슐리 올슨이 발렌시아가의 모터백을 들고 후디에 치렁치렁한 스커트, 웨스턴 부츠, 볼드한 빈티지 주얼리를 걸친 채, 그들이 재학 중이던 뉴욕대의 수업 사이사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찍힌 파파라치 사진들 기억하시나요? 무채색의 미니멀한 의상을 주로 입는 지금의 올슨 자매의 스타일과는 사뭇 다르죠.
당시 주드로와 영화를 찍으며 연인관계로 발전해 신인 배우에서 런던 잇걸로 떠오른 시에나 밀러 역시 보호 시크 룩의 대표주자였습니다. 그녀는 레이어드가 있는 자연스러운 웨이브의 금발 헤어를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두꺼운 벨트, 얇은 스카프, 길게 늘어뜨린 목걸이, 끌로에의 실보라도 백, 다양한 모자를 활용한 보호시크룩을 선보였죠.
그리고 또 한 명! 기네스 팰트로를 이은 '캐주얼의 여왕'이라 창송받으며 많은 이들의 '입고 싶은 룩' 폴더에 저장되었던 키얼스틴 던스트 역시 보호 시크룩을 능수능란하게 소화해냈습니다.
보호 시크는 레이스와 프릴, 자연 모티프의 자수 혹은 패턴, 골반에 걸치는 벨트와 하의, 스웨이드 부츠,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리는 주얼리, 의상에 포인트로 활용하는 모자 등 격식과 근엄에서 벗어나 어딘가 풀어진 자연스러운 실루엣을 추구하며 편안하면서도 개성있는 룩을 대중화시켰습니다. 브랜드로서는 목가적인 룩을 선보였던 마르니(Marni)와 페미닌한 룩을 선보였던 클로에(Chloe)가 큰 사랑을 받았지요.
특히 클로에(Chloe)는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하기 위해 하우스를 떠난 스텔라 맥카트니의 뒤를 이어 크레이티브 디렉터가 된 피비 파일로가 2004년 FW Collection을 통해 보호시크의 정점을 찍는 컬렉션을 발표함으로써 여자들이 가장 입고 싶어하는 브랜드로 한동안 전세계 패션계를 호령합니다.
재미있게도 2000년대 초반의 보호시크가 유행할 때 저희 어머니께서 저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이거 내가 처녀 때 유행하던 건데 유행이 다시 돌아왔네!
그렇다면 보호시크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진정한 아이콘은 누구일까요? 네, 바로 그녀
에르메스에 본인의 이름을 딴 가방이 있지만 그것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진정한 보헤미안 영혼의 소유자. 제인 버킨(Jane Birkin)입니다.
결국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에서 풍겨나온 매력이 결코 끝이 나지를 않아, 보헤미안의 감성을 표현한 룩의 유행이 계속 돌고 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동경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레이스, 프릴, 스카프, 굵은 벨트로 만들어낸 그럴듯한 룩이 아니라 사실은 전세계의 부자들이 웨이팅을 하고도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에르메스 버킨백 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땅바닥에 내려놓고 가방을 뒤질 수 있는 그녀만이 풍길 수 있는 아름다움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또 다시 20년이 지나도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본질 아닐까요?
천만 원이 훌쩍 넘는 가방이어서 아름다운 룩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천만 원이 넘는 가방인들 가방일 뿐인 것이 진정한 보호 시크입니다. 보호 시크가 트렌드라고 괜히 비싼 아이템들에 나를 맞춰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본인에게 미니멀리즘이 잘 어울리면 당당히 미니멀리즘을 입으세요. 유행이 지났다고 Y2K 룩을 주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역시 20년 전 산 옷들, 그리고 틈틈이 해외 사이트나 국내 중고 제품 거래 사이트 등을 통해 모아온 옷으로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입어왔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훨씬 어려서 처음으로 보호 시크의 유행을 맞이하는 분들에게 새로운 무드를 즐길 자유를 뺏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되도록 한 시즌 입고 버려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옷을 구매하기 보다는 한 번 사실 때 20년 뒤를 생각하고 신중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옷을 잘 고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옷을 소중히 다뤄주세요.
저는 이번에 어머니와 만날 때 오랜만에 보호시크를 입고 나가볼까 해요. 새로 구입하진 않고 2004년 빈티지 클로에를 입을까 합니다. 정가로 사지는 않았고 15년즈음 지나서 해외 사이트를 통해 중고품으로 대부분 10만원 안쪽으로 구입하였습니다. 아마 어머니는 저를 보시면 또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요.
'어머, 이게 또 유행이 됐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