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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독서리 Aug 12. 2021

이렇게 쌔빠지게 일하면 뭐하냐

영어도 못하는 내가 미국 롱비치로 화물을 실어나르던 때다. 낮에는 배에 실어 보내기만하면 도착하는 가까운 중국으로 화물을 보내는 일을 했다. 지역 구분이 아니라 화주에 따라 목적지가 달라졌으니 그야말로 복불복이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한 번 실어 보내면 보름 정도는 걸리는 먼 곳으로 보내는 화주가 걸리기를 바랐다. 중간 중간 화주들은 자기 화물이 도착은 했는지, 배는 출항이 된 건지, 심지어 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까지 묻기도 했다. 살다살다 태평양에 배가 잘 떠 있다고  걱정마시라는 말까지  해야했고 그런 고객을 위해 배의 위치를 실제 그림으로 보여주는 선사도 있었다. 어쨌든 낮이고 밤이고 컨테이너들은 그야말로 전세계로 나갔고, 눈꼬뜰새 없이 바빴다. 거기에 악덕 화주를 만나게 되면 인간 인성의 끝과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게 된다. 어쨌든 그렇게 계약기간을 채우고 갑질 화주와 헤어지게 되면 잠시나마 평화가 왔다.


가끔  그렇게 일을 하다 사무실 다른 직원을 보는데 너무나 평화로운, 솔직히 바쁜적이라고는 단 한번도 없는 직원이 있었다. 월급 루팡이라고 해야할지, 지독한 성격탓에 그 어떤 영업사원도 함께 일하기 싫어서 좀처럼 일이 생기지 않는 직원말이다. 롱비치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찾아보고 해외에서 오는 메일에 어떻게 답해야할지 책을 사가며 문장을 외우며 정성을 쏟는 나와는 사뭇 다른 직원을 보는데 현실자각의 시간이 왔다.


쌔빠지게 일해봐야 저 사람보다 덜 받네.


저런게 회사 생활 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나라를 구할것도 아니고 얼굴도 모르는 화주의 화물을 이렇게 정성들여 보낸다 한들 나한테 돌아오는건 없었다. 네이트, MSN, 회사 메신저, 필요에 따라 대기업에서는 그들만이 사용하는 메신저를 설치해서 사용해야 했으니 점심시간이에도 메신저불은 고장난 것처럼  깜빡깜빡 거렸다. 성격탓도 있겠으나 그런 상황에 느긋하게 있을 내가 아니기에 그걸 또 대답하고 확인하고 처리하느라 진을 뺐다. 한번은 겨울에 러시아로 들어가는 화물이었는데  도착은 했다고 확인했으나 계속 화주는 물건을 찾을 수 없다고 소리소리 치는 상황이었다. 알고보니 너무 추워서 항구 근처 바닷물이 얼어 접안을 못하고 화물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든 러시아 날씨가 추워 배가  접안을 못하는 것도 담당자인 내 탓이었기에 이걸 또 죄송하다고 해야했다.


어떤 분의 글에서 잘 돌아가는 회사는 직원들 간에 상대적 박탈감이 없도록 관리하는 곳이라고 했다. 모든 사람이 A는 일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A는 바쁘다고 한다. A에게 C플레이어라는 평가를 주면 A는 억울해한다. 그럼에도 A는 때가 되면 승진도 하고 월급도 오른다. 결국 쌔빠지는건 나요, 지쳐나가떨어지는것도 나였다.


만족하는 직장이 어디있겠는가. 그럼에도 스멀스멀 잊을만하면 오는 현타. 날이 더워 지치고 무기력해져서 그러겠지라는 위안을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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